폼을 잡으며 앞치마를 펄럭이고, 하늘 높이 팔을 뻗어 소금을 뿌리는 등 허세에 가득 찬 셰프가 나타났다. 마치 멋있어 보이려 애쓰는 듯한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주방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는 180˚ 달라진다. 남의 냉장고 속 자투리 재료로 완벽한 레스토랑 요리를 만들어 내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독창적인 요리를 완성하기도 한다. 이렇듯 맛과 멋으로 시청자들을 동시에 사로잡아 한창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허셰프, 최현석(43) 셰프를 만나봤다.


교수, 총괄셰프, 방송인 등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네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요즘은 방송이 있어서 불규칙해졌지만 그전에는 식당에만 있었죠. 출근하면 가장 먼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영업준비를 합니다. 점심시간에 몰려오는 손님을 응대하고 나면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져요. 이때 인터뷰를 하기도 하죠. 웬만하면 매장에 계속 있으려고 해요. 셰프는 레스토랑에 있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후 저녁 시간 전에 참신한 메뉴를 개발하려고 연구하고, 저녁 손님 응대 후엔 퇴근한답니다. 가끔은 운동도 하고요.


  오늘은 학교에서 강의가 있어요. 이후에 업체와 회의도 하고 다시 강의에 들어가야 해요. 매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행사가 있어 레스토랑에 갔다가 퇴근해야죠.

 

형 손에 이끌려 이탈리아 요리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다른 요리를 하고 싶진 않았나요
  전 지금 요리로 인정받고 있잖아요. 그래서 전공에 대한 후회는 더욱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전공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한 적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요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었거든요. 그냥 직업으로 선택한 것뿐이죠. 요리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고 나서야 요리사가 제게 맞는 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뒤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등 이 직업에 열정을 쏟았죠.

 

셰프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은 뭔가요
  ‘음식으로 장난치지 말자’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돼요. 그러면 정말 위험해지죠. 요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식재료로 장난을 치다가 주방에서 쫓겨난 적이 있어요. 밖에서 서있는데 추운 것보다 창피함이 더 컸어요. 그때부터 요리로 장난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접시에 담아내는 요리가 내 얼굴이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필요해요. 부끄럽지 않아야 하니까요. 저는 무엇이든지 상위 5%는 취향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해요. 취향은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인데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누구나 다 좋은 것이라고 인정하게 되죠. 그래서 항상 자신의 요리가 상위 5% 안에 들 거란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요리해야 합니다.

“요리는 안 해서 못하는 것이지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던데 그 이유는 뭔가요
요리는 정말 쉬워요. 막상 해보면 다들 잘할 거예요. 계란 프라이 만드는 게 어렵나요? 삼겹살 구워먹기도 쉽잖아요. 이런 게 다 요리예요. 또, 라면 끓일 줄 알면 소스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다들 시도하기도 전에 재료도 사야하고 어질러질 게 뻔하다며 지레 겁먹죠. 그런데 그럴 필요 전혀 없어요. 익숙해지면 쉬워질 거예요.
요리사라는 직업은 변호사, 의사와 달라서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돼요. 맛있는 음식 먹는 거 좋아하거나 남에게 요리해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요리사가 될 수 있어요.


요리 인생의 슬럼프는 언제였나요
  3번 정도 있었어요. 모두 인간관계와 관련된 것이었죠. 3년 차 때에는 선배가 절 많이 괴롭혔어요. 왠지는 모르지만요. 솔직히 열 많이 받았죠. 또 10년 차 때 퇴사와 관련해서 오너와의 갈등이 심했었고, 13년 차 때는 오너랑 소송까지 갔었죠. 사람과의 관계 유지는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요리하는 행위 자체에 슬럼프가 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는데 역할마다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교수의 위치에 있는 저는 멘토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때문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노하우를 알려줘야 하죠. 이건 이 정도 위치에 오르면 그만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거죠.


  레스토랑을 총괄하는 셰프로서의 저는 리더입니다. 표리부동하거나 부화뇌동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죠. 굳건하고 일관된 모습으로 직원을 이끌어가야 해요.


  방송인으로서의 저는 재미있는 방송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일단 시청자가 즐거워야 방송이 성공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망가지기도 하고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가장으로서의 저는 가족과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못해 항상 미안해하는 마음이 커요. 잘 챙겨주고 함께하고 싶지만, 직업상 여건이 쉽진 않으니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로서의 자애로움과 남편으로서의 의젓함을 보여주지 못해 참 가슴이 아프죠.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앞으로 가족과 추억을 공유할 기회를 만들려고 해요. 올해 안으로 꼭 가족 해외여행을 갈 거랍니다.

학창시절의 셰프님이 궁금해요
  남을 웃기는 걸 좋아했어요. 또, 평범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했죠. 학교에서 비행기를 만들었을 때, 친구들은 모두 정석대로 만들더라고요. 저는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설계를 따로 해서 새로운 모양으로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원반에다가 프로펠러를 달았어요. 제 비행기를 보려고 다른 반 친구들까지 구경 오기도 했죠. 모두 똑같이하는 걸 저는 싫어했어요.

 

이런 성향이 여전히 남아있네요
  그럼요. 계속해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고 있으니까요. 남들과는 다른 요리를 해보고 싶은 거죠. 괜히 크레이지 셰프라고 불리는 게 아니에요. 문화는 다양해야 해요. 무엇이든지 한쪽만 발전한다는 것은 좋지 않아요. 편향된다는 뜻이죠. 이는 다양성을 해치고 그 분야의 전반적인 성장을 저해해요. 예를 들어보죠. 걸그룹이 범람하면 저는 좋죠. (웃음) 저처럼 좋아하는 사람들 많을 거예요. 하지만 걸그룹 문화만 발전한다면 발라드, 트로트, 포크 등 다른 장르는 침체하고 말겠죠. 이는 절대 발전이 아닙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다양한 음식을 하는 셰프가 많아야 식문화가 발전하겠죠. 이게 제 지론이기도 하면서 제 강점이기도 합니다.

 

본인이 개발한 가장 첫 번째 요리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바로 차가운 파스타를 처음 탄생시켰답니다. 7-8년 전에 냉 파스타에 바질페스토를 비비고 그 위에 캐비어를 올렸어요. 지금은 익숙한 요리지만 저 당시만 해도 굉장히 신선했거든요. 주변에서도 무척 특이하지만 정말 맛있다고 얘기해줬죠.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죠. 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릴 방법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다양성을 매력으로 보여줘야 해요. 현지의 요리와의 퓨전요리를 개발하면서 한식을 익숙하게 하고 그 이후에 전통요리를 함께 소개하는 거죠. 일단 외국인이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사람들이 한식에 자긍심을 가지고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죠. 또한, 한국의 셰프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식을 소개하는 방법이에요. 스토리텔링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게 구성해야 합니다. 무작정 전통만 강조하거나 역사만 소개하는 방식으론 어림없어요. 식재료 하나에도 의미부여가 필요하죠. 예를 들면 청양고추를 말려 고춧가루를 만드는 작업을 3대째 하고 있는 집안의 장인이라든지, 찹쌀을 독특한 농법으로 재배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든지. 사실 사람들은 맛 구분 못 해요. ‘좋다’라고 느낄 뿐이죠. 하지만 이런 스토리를 곁들이면 사람들은 쉽게 넘어가요. 그러면 실제로 이런 스토리를 가진 장인이 늘어나야겠죠.

 

한식대첩3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각오가 궁금해요
  프로그램을 더 잘 진행하기 위해 작년 시즌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할 거에요. 작년에는 식재료에 집중해 평가하곤 했는데 올해는 결과물에 집중할 예정이에요. 식재료에 대한 공부와 함께 한식에 대한 이해도도 높이는 게 목표입니다.


  지역에 대한 특징을 잘 아는 백종원 대표, 한국의 전통요리와 고급스러운 궁중요리의 대가인 심영순 선생님,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면서도 한식을 이해할 수 있는 제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 보다 완성도 높은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요리 인생에 대한 소망과 앞으로의 계획은요
  제 요리를 세계 곳곳에 알리는 거죠. 모든 사람이 제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뉴욕과 상해에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이 제 계획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명문 요리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표예요.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요리학교요. 학사학위를 주는 건 아니지만, 이 학교 출신이라고 얘기했을 때 인성까지 갖춘 셰프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대중에게 어떤 셰프로 기억되고 싶나요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고 그냥 ‘셰프’로 기억되고 싶어요. Just Chef. 수식어를 하나 붙이자면 Crazy 정도겠죠. 요리에 미쳐있는 셰프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20대 학생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요
  꿈을 이루는 방법은 정말 다양해요. 지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꿈이 확고하다면 분명히 이룰 수 있죠. 다만 그 길이 멀고 험할 수도 있어요. 조금 돌아가더라도 길은 길이에요. 현실의 장벽이 높다고 해서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해외에서 요리학교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유명한 요리사가 되는 게 아니에요. 자기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른 거죠. 고졸 출신인 저도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잖아요.
 

  포기만 하지 않아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거예요. 모두 자신만의 길을 찾아 앞으로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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