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의 형성 :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1999)』- 김진송/현실문화연구 -

우리가 과거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를 앎으로써 현재의 우리 모습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진송의  <현대성의 형성 :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속에 나타난 1920-30년대 사람들의 삶에서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다수 발견되는 것은 자못 놀랍기까지 하다.

1920-30년대라면 일제의 식민 지배가 공고한 틀에 당대인들의 삶을 꼼짝할 수 없이 가둬 놓았던 시기이다. 그러한 시기에 <삼천리>라는 잡지에 실린 다소 당돌한 글의 제목이 바로 이 책의 부제가 됐다. 그 글은 1937년에 레코드 회사 문예부장, 끽다점(찻집) 마담, 기생, 영화배우 등이 연명해 서울의 경무국장에게 서울에 댄스홀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한 일종의 공개 탄원서이다.

저자는 그 글이 지닌 의의를 일상 속에서 당시의 현대 문화를 형성해 나갔던 인물이 다름 아닌 기생, 다방 마담을 비롯한 새로운 대중문화 생산자들이었다는 것에 둔다. 그리고 그들이 현대화를 향해 투쟁했던 대상이 식민 통치 세력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또한,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현대화의 준거가 서구(혹은 일본)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 당대의 지식인 다수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패배감과 냉소주의에 빠졌을 때, 오히려 일군의 직업여성들과 같이 천대받던 이들이 대중문화의 전면에 나서 현대적 관념의 확산에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시답지 않게 보이거나 시시껄렁한 것으로 취급되는’ 자료를 중심으로 현대성에 대한 논의를 펼친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다. 자료들이 그 어느 것보다 현대성을 풍부하게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의 모더니티에 대한 담론들처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저자의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각 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글과 사진, 삽화는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무척이나 흥미로울 뿐 아니라 당시 사람의 생각과 행동 양식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로 인해 지금 우리의 현실이 당시 사람들이 경험한 현실과 긴밀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고 때에 따라서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기에는 충분하다.

이 책은 이렇게 20세기 전반기에 현대성이 자리 잡아 가는 모습을 당시 출간된 잡지의 기사 자료를 통해 날것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제1장은 1930년대 ‘모던’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 제2장은 문물과 과학을 통해 새로운 인식적 범주가 확산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제3장은 지식인 문화의 성격 중 특히 룸펜(Lumpen)과 데카당(Décadent)으로 불리는 문화 현상과 모더니티와의 관계, 제4장은 스포츠와 영화, 유행가 등 대중문화가 형성되는 과정과 그 양태를 나타낸다. 제5장은 현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인식 변화와 사회적 역할, 제6장은 도시화의 과정과 도시적 감수성의 형성, 제7장은 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모던 보이’와 ‘모던 걸’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간의 등장을 다루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은 현대화와 그에 따른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우리가 아닌 타자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에게 현대화란 바로 서구화였고, 우리는 그에 걸맞은 토대를 구축할 만한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서구화의 거센 조류에 휩쓸려 들어갔다. 게다가 그 과정마저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일본이라는 제3자에 의해 왜곡된 형태로 진행됐다. 오늘날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목격하고 있는 각종 부조리의 근원을 캐어 가다 보면 그 뿌리가 당시에까지 이어져 있음을 발견하고 문득 아연할 때가 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어 가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고 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 책은 사진과 삽화가 많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듯하지만, 뜻밖에도 술술 잘 읽히는 책은 아니다. 따라서 사진과 삽화를 한번 훑어본 뒤 문서 자료, 저자의 해설 순으로 읽는 것이 전반적인 이해에 도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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