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집단이나 개인 사이의 불평등은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칼 마르크스는 집단의 갈등과 이와 관련된 과정이 근본적으로 공통점을 갖는다는 점을 인식한 최초의 학자이다. 이 같은 갈등은 한쪽의 악의나 나쁜 성격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한다는 그의 인식은 사회학 이론을 진일보시켰다. 마르크스는 모든 집단 갈등은 근본적으로 계급 갈등이며 이 계급 중 하나가 경제적 권력의 기회를 독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풀리지 않은 집단의 갈등이 현재에도 여전히 산재해 있다.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간에 일어나는 권력 차이에 관한 논의는 주로 거시 사회학적으로 계급, 신분, 계층의 분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조명됐다. 그런데『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는 권력이 한 집단의 응집력에서 나온다는 점과 그 권력의 차이가 인간성의 차이로 변형되는 기제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하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잔잔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 인종 갈등 심지어 흔히 주변에서 목격되는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편 가르기 등이 사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기제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윈스턴 파르바라는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권력 관계를 통해 증명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응집력 높은 한 집단이 응집력이 약한 다른 집단에 가하는 배제와 낙인찍기가 그 집단을 얼마나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를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들어 보여준다.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원주민들이 북쪽에서 온 정복자들에게 서서히 종속되면서 시작된다. 정복자는 피정복 민족을 마을 밖에 살게 했고 종교예식에서도 배제했다. 희생제물과 기도로부터, 또 그로써 신의 축복으로부터도 제외했다. 정복자는 원주민을 자신들의 집단 카리스마와 규범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무질서하게 보이는 위치로 몰아넣었고, 동시에 자신들의 규범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멸했다. 기득권 집단은 아웃사이더 집단 중 가장 저질인 일부 사람 즉 무질서한 소수의 나쁜 특성을 그 집단의 특성으로 낙인찍으며 기득권자인 자신들에게 반격할 수 없게 무력화시켜 나갔던 것이다. 단지 권력에서 배제됐을 뿐인 아웃사이더 집단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열등한 사람의 집단으로 규정되고, 시간이 흐르면 이 통념은 기정사실이 된다.

  저자는 소설 <앵무새 죽이기> 속 흑백 갈등의 사례를 통해 기득권자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정의나 진실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백인 변호사 핀치는 백인 여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흑인 톰 로빈슨의 무죄를 믿고 그를 변호한다. 하지만 핀치와 그의 가족은 백인끼리의 두터운 유대 관계를 부쉈다는 이유로 다른 백인들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이 책의 관점으로 보면 변호사 핀치와 그의 가족이 당하는 고통은 당연한 것이다. 핀치가 아웃사이더 집단의 편을 들거나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기득권자의 규범을 파괴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은 직업이나 소득에서 별 차이가 없는 노동자들의 주거지역에서 왜 어느 집단은 누구나 살고 싶은 부자 동네라는 명성을 얻고 한 집단은 거기서 배제된 가난한 동네라는 낙인이 찍히는지를 미시 사회학적으로 고찰한다. 기득권층은 집단적 유대와 공동의 정체성, 규범의 공통성을 형성해 결속력이 강하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부자 동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아웃사이더, 즉 가난한 동네사람을 배제·외면함으로써 그들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웃사이더 집단이 기득권 집단의 응집력이 만들어낸 자신들의 불리한 지위를 대개 큰 반발 없이 수용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동안 거시 사회학적 관점만으로는 풀리지 않았던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인종 갈등, 우리 사회의 지역, 정당, 진보와 보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갈리는 집단 갈등의 원인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줬다는 점이다. ‘왜 인간은 무리지어 끊임없이 다른 집단을 핍박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은 독자라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신원선(교양교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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