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은 전문가는 대중에게 고개를 숙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최근 화제가 되는 백종원 셰프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요리사라는 이 사람에게서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치고는 참 만만해 보인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에게 슈가보이니 애플보이 같은 별칭이 붙게 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설탕을 많이 넣는다는 얘기 때문에 ‘슈가보이’라고 불린다는 건 셰프로서는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다. 물론 실제로 백종원 셰프가 ‘설탕성애자’는 아닐 것이다. 방송에 비춰 모습이 그렇다는 것일 뿐. 그래서 자신은 설탕성애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과 옥식각신하진 않는다. 그는 대중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오히려 대중에게 더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다른 출연자들도 네티즌의 의견에 귀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일일이 답해주고 반응을 보여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시청자에게 지적받으면 즉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애플보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전문가가 비전문가의 지적에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여주고 사과하는 것 역시 간단해 보여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항상 네티즌의 의견에 수긍하고 사과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투덜대기도 하고 살짝 화내기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선생 같지가 않다. 그냥 우리 옆에 있는 요리 좀 한다는 아저씨 정도랄까.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이, 또 자기만의 비법과 전문분야를 가진 전문가가 이렇게 만만해 보이니 이를 보는 시청자는 기꺼이 그와 소통하고 싶어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요리의 꿀팁들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만일 이 선생이 자신이 가진 것으로 어떤 권위를 내세우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지금처럼 많지 않을 것이다.

요즘 방송가의 트렌드 중 하나는 전문가가 어떤 전문영역의 정보를 알려주되 가르치는 티를 안 내는 것이다. 복잡할 것 같은 국제정세도 <비정상회담>같이 자유로운 토론을 지켜보면 저절로 각국 문화에 대한 식견이 생긴다. 시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썰전>에서 김구라가 앉아 엉뚱한 비유를 써가며 시사 문제를 건드리면 시청자는 이것이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만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전문가들이 전문지식을 무기로 권력을 잡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선생님조차 권위를 내려놓지 않으면 ‘꼰대’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한 30, 40년 더 살았다고, 그만큼 더 어떤 분야를 공부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고 말할 수는 없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그건 오십보백보일 뿐이다. 이제 위에서 아래를 보고 가르치는 시대가 아니라 서로 손잡고 앞으로 나가는 시대다. 그래서 백 선생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선생이라면 오히려 손을 내밀 수 있는 낮은 자세는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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