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작품은 그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현대 예술사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상업적인 의도를 가진 예술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그. 하지만 우리는 앤디 워홀이 남긴 작품 세계를 다 알고 있진 않다. 앤디 워홀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앤디 워홀 라이브>는 다음 달 27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다.


앤디 워홀, 그는 누구인가
신후 : 전시에 앤디 워홀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정말 많았어. 앤디 워홀의 연혁부터 시작해 ‘Ladyboy(복장도착자)’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까지 있어 그가 당시 갖고 있던 고민까지도 알게 된 것 같았지. 사실 나는 이름만 알았지, 그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거든.

소정 : 나도 연혁을 보고 비로소 그를 알게 됐지. 단순히 상업디자이너인 줄만 알았는데, 참 다양한 일을 했더라고. 패션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기도 했고,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어. 앨범 자켓을 디자인하기도 했고 아직까지 발행되고 있는 <인터뷰>라는 잡지를 창간했지. 이런 경험들이 그의 예술적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

신후 : 맞아. 그에 대한 평가가 너무 상업적인 면만 강조된 것 같아. 팝아티스트로 이름을 널리 알린 것처럼 이번 전시 역시 상업적인 의도로 제작된 작품이 강조됐기도 하고, 가장 많기도 했지. 이 부분이 좀 아쉽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해.


예술과 상업의 벽을 깨다
신후 : 또 여느 전시보다 좀 더 다가가기 쉬웠던 것 같아. ‘앤디 워홀’ 하면 마릴린 먼로가 떠오르잖아. <마릴린 먼로 두 폭>이 대중에게 익숙하기도 한데 역시나 이 전시회에서도 그 작품이 빠지지 않았지. 그 외에도 우리가 많이 봤던 ‘캠벨 수프’도 종류별로 전시해놨잖아.

소정 :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보통 다른 화가의 전시회를 가면 대표작품 한두 개 정도만 아니까 전시가 어렵고 지루하지. 이해하기 어렵달까. 근데 앤디 워홀은 달랐어. 눈에 익은 작품이 여러 개 있으니까 끝까지 흥미롭게 볼 수 있었어. 대중과 소통하려는 앤디 워홀의 가치관과 부합한다고 생각해.

신후 : 대중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참신한 기법을 많이 사용했지. 사진 여러 장을 실로 꿰매서 나열하기도 하고 스텐실이나 실크스크린을 이용한 작품이 많았어. 예술작품의 대량생산을 도와준 방식이라고 볼 수 있지.

소정 : 나는 타임캡슐이 인상적이었어. 그 안에 잡지에서 일했을 때 소설가를 인터뷰했던 것이 적힌 원고와 앤디 워홀이 썼던 화장품 공병, 향수병 등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서 그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고, 인생도 엿볼 수 있었어. 물건들이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아.

신후 : 자신과 가족, 연예인들 즉 자신의 뮤즈들을 오직 폴라로이드로만 찍었다는 것도 신기했어. 이 또한 그 나름의 예술작품을 만들어가는 방법이지 않았을까?

소정 : 대중적인 예술작품만 있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앤디 워홀은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굉장히 실험적인 장면이 많았지. <잠>은 인물이 잠만 자서 다소 지루했는데,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내장이 나오는 등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있었고 <외로운 카우보이들>과 같이 외설적인 장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어. 이걸 보고 앤디 워홀이 마냥 상업디자이너는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전시회장을 나오며…
신후 : 모처럼 지루하지 않고 볼거리가 많은 전시였다고 생각해. 특히 입장하기 전에 관람객이 직접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기법을 체험해보거나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게 구성해놓아서 즐거웠어.

소정 : 그런 점이 좋기도 했지만, 전시가 좀 극단적이었던 것 같아. 대중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곳에서는 다소 가벼운 작품만이 즐비했고, 영화와 관련된 곳은 성인만 입장이 가능한 만큼 내용이 이해하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보는 것조차 힘들었어. 중도가 있었으면 좀 더 풍성한 전시가 되지 않았을까?

이신후 기자 sinoo__@naver.com
이소정 기자 gisele_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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