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야심 차게 기획된 ‘인간게놈 다양성 프로젝트(Human Genome Diversity Project)’는 본래 인간의 진화과정을 살펴보는 것에 기본목적을 두고 있었지만, 그 방식에 있어 소수민족들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일종의 ‘생체식민지주의(biocolonialism)’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 논란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도 전에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다. 바이오테크 산업, 의료 유전학, 제약산업 등의 분야에서 인간게놈 데이터베이스를 조직화하고 관리하는 컴퓨터 기술과 네트워킹 기술을 포함하는 생체정보공학(biotechnology)이 DNA, 게놈, 유기체들을 연구하는 유전체학(genomics)과 긴밀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해나갔던 것이다. 소수집단의 게놈연구를 통해 질병 퇴치방법을 개발한다고 천명하기는 했지만, 이들에 대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사람들의 게놈 정보들을 전 지구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시킬 가능성을 열어 놓았으며, 경우에 따라 특정 권력집단에 의해 조절되고 통제될 발판을 마련했다. 문화비평가 택커(E. Thacker)에 따르면, 생물학적인 물질들이 디지털 형태로 인코딩됨으로써 지적 소유권이 보장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 산업이 이득을 얻게 되고, 디지털 형태가 리코딩됨으로써 바이오 정보공학, 데이터베이스 경영, 컴퓨터 네트워킹 등에 의해 바이오 정보가 광범위하게 유통되며, 최종적으로 디지털 형태가 생물학적 물질성으로 디코딩됨으로써 소비메커니즘에 의거하여 생물학적 정보는 다시금 육체로 체화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바이올로지와 정치경제학 간의 긴장관계”로서의 생물학적 정치경제학은 글로벌리제이션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식민지주의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생물학적 정치경제학은 현대의 리버럴리즘과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리버럴리즘을 ‘지불수단과 재화의 자유로운 유동인 동시에 인구, 기대수명, 건강 등과 관련하여 경제과정들과 복잡한 관계를 가지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조절’로 규정했는데, 이는 부와 재화의 자유로운 유동에 의존해있는 생체적인 것의 자유로운 조절에 다름 아닌 것이다. 현대의 생체정치적 메커니즘은 개개인의 육체적 상태를 국가의 상태 및 부와 구조적으로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 개인에 대한 ‘자유로운 조절과 통제’를 구현하는 새로운 권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끊임없이 양산되는 새로운 정보에 적응하기만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할까? 아마도 현재로써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생체정치적 리버럴리즘에 힘입어 자유로이 유동하는 정보의 권력이 개인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마련해 줄지 아니면 저항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작용할지 비판적으로 곰곰이 성찰해 보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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