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이용한 범죄 5년 만에 8배 증가

 

지난 7월, 홍익대학교 홍문관의 여자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이하 몰카)가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카메라가 화장실 내부 문에 전등 스위치와 유사한 형태로 설치돼 있어 쉽게 눈치를 채기 어려웠다고 한다. 카메라는 정면에 있는 양변기 쪽을 향해 촬영돼 많은 여대생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유출됐다. 홍익대학교에 재학 중인 조예진(경영 13) 씨는 “자주 홍문관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내가 그 피해자 중 한 명이 됐을 것이라 생각하니 무섭다. 이 사건 이후 선뜻 교내 화장실을 이용하기가 꺼려진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최근, 곳곳에서 몰카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이를 이용한 범죄가 2009년에 807건에서 지난해 6,623건으로 5년 만에 8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전체 성범죄 비율 중 22.4%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여대생이 살고 있는 원룸에 이웃 사람이 무단 침입해 카메라 설치 후 적발됐다. 또한, 원룸 문 앞에 CCTV를 가장한 소형 카메라를 둬 자택 비밀번호까지 유포됐다. 이처럼 몰카는 단순한 성적쾌락과 호기심 충족을 넘어 개인정보 유출 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 범죄는 짧고 얇아지는 옷에 맞춰 여름철에 더욱 기승을 부린다. 지난 8월에 유출된 ‘워터파크 몰카’는 사태의 심각성을 공공연히 알리게 된 사건이었다. 워터파크 내 여자 샤워실에서 촬영된 동영상에는 다수 여성의 나체뿐 아니라 얼굴까지도 그대로 노출돼 있다. 25일 검거된 용의자 최 씨는 7월 16일부터 8월 7일까지 서울 한강공원 야외수영장과 전국 워터파크의 여성 샤워실을 돌아다니며 200여 명 여성의 나체를 찍었다.
몰카 범죄가 기승부리는 이유
경찰서로 압송된 후 최 씨는 범죄를 저지른 경위에 대해 “실직으로 돈벌이가 없던 상황에서 채팅으로 만난 한 남성이 영상 촬영 당 일정 돈을 준다고 제의했다”라고 밝혔다. 그녀는 그 대가로 영상 촬영을 사주한 강 씨로부터 총 130만 원을 받았다.
이와 같은 사례처럼 경제적인 이윤 창출이 범죄의 첫째 동기로 꼽힌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영상은 무조건 사겠다”라며 몰카 촬영 영상을 대놓고 구매하려는 글이 게시됐다. 또, 개인 블로그에 자신이 찍은 영상을 판매한다며 구체적인 금액까지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백기종 경찰대 교수는 B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몰래 촬영한 영상을 유료사이트에 전해주면 건당 천만 원 이상씩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영상은 중간 브로커를 거쳐 성인사이트 운영자에게 판매되거나, 파일 공유 사이트로 업로드 된다. 촬영자가 영상을 통째로 사이트 업자에게 넘기고 정해진 금액을 받는 경우도 있고 다운로드 숫자에 따라 금액이 정해지는 계약도 있다. 평균 다운로드 횟수가 수십만 건에 이르기 때문에 경제적 빈곤에 처해있는 사람에게는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있다. 또한, 파일공유 사이트에서는 본인이 촬영한 영상을 공유하면 다운로드 수만큼 포인트를 받게 되는데, 이 포인트는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
관음증 역시 또 하나의 범죄 동기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몰카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사회에 부적응한 정신이상자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은 범죄가 드러나기 전까지 건실한 직업을 가진 정상인이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들의 범죄 행위를 심리적, 기술적 이유로 설명한다.
심리적 요인을 먼저 살펴보면 흔히 인간은 타인에 대해 알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면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여성들을 먼발치에서 훔쳐보는 양반과 동자승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엿보기’ 성향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것이지, 지금 들어서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란 소리다. 하버드대의 교지 ‘하버드 크림슨’에서도 사람이 어느 정도의 관음증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심리학과 교수는 ‘몰카’ 행위가 성도착증 중 하나인 관음증이라 판단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생활을 훔쳐보려는 욕구가 몰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적인 본능을 바탕으로 피의자들이 호기심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을 왜 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관음증은 하나의 질병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관음증이란 자극적이거나 도착적인 방식에 물들어 기형적인 형태로 욕구불만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몰카’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욕구를 해소하는 일이 잦아져 문제가 된다는 입장이다. 청소년과 성인을 가리지 않고 몰카가 성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많이 유출된 악질적인 영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몰카’가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본능에 따라 가지는 ‘관음증’과 실제 상황을 원하는 ‘관음증’의 문제는 다르며, 후자는 본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학습의 결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호기심은 호기심에서 끝나야 한다. 기술적 요인으로는 IT기술의 발달로 볼 수 있다. 인터넷,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대중은 은연중에 자극적인 콘텐츠를 수시로 접할 수 있게 됐다. 접근성이 좋아지다 보니 음란물에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도 사람들은 본능적 호기심에 SNS로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살핀다.
범죄를 늘어나게 하는 또 다른 이유에는 손쉬운 촬영과 유통이 있다. 기술이 발달되면서 카메라는 점점 작아졌고, 범죄에 이용되는 카메라 형태가 안경형, 볼펜형, 자동차 키형 등으로 나날이 다양화, 첨단화돼 쉽게 분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동영상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도록 휴대폰 속 화면을 위장하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엄청난 피해를 만드는 이러한 수단을 누구나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적발될 염려도 적어 정말 마음만 먹으면 ‘몰카’를 찍을 수 있다.
게다가 이렇게 촬영한 영상을 유포하거나 구하는 것은 훨씬 더 쉽다. 이들은 자신이 찍은 것을 과시하듯 올리기도 하지만 원하는 수요자에게 돈을 주고 팔기도 한다. 영상은 중간 브로커를 거친 후 성인사이트로 판매되거나 파일 공유 사이트로 가게 된다. 거래는 주로 텀블러나 토렌트와 같은 외국 사이트에서 진행돼 특정 개인이나 주소를 알 수가 없다. 돈벌이 수단이 되자 더 많은 몰카 행위를 부추긴다. 하지만 어떤 경로든 한 번 인터넷상에 올라가면 순식간에 영상이 퍼지므로 이것이 한 개인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여기에 CCTV도 한 몫하고 있다. 범죄 예방 등을 위해 설치했지만 사실상 CCTV가 몰래카메라가 돼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의 한 유명 피부과에서 탈의실을 겸하고 있는 피부관리실에 CCTV가 설치돼 있어 이를 발견한 환자들이 항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당 병원은 1층에 CCTV 안내판을 설치했지만, 실제 CCTV는 9층에 있었다. 9층에 안내팻말이 없어 CCTV가 없을 거라고 판단한 환자들은 CCTV 앞에서 옷을 갈아입게 된 셈이다.
CCTV의 설치 목적, 촬영 범위, 시간 등을 자세히 알려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강제성은 전혀 없어 잘 지켜지지 않는다. 길거리에만 나가도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CCTV에 노출되지만 실제로 안내판이 설치된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기준 국내에 설치된 CCTV는 400만 대가 넘었으나 이들 중 안내판 없이 엉터리로 설치된 경우에는 몰카가 돼버리기도 한다.
여전히 미비한 처벌제도
피해자에게 크나큰 정신적 피해를 안겨주는 데 비해 실제 가해자들이 받는 처벌은 미미한 실정이다. 영업 목적으로 찍어 배포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혹은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하지만 워터파크 몰카 가해자인 여성은 촬영만 했을 뿐이라며 유포하지 않았다며 잡아떼고 있다. 이런 경우 처벌 수위는 7년에서 5년 이하의 징역으로 낮춰진다. 지난 2일, 지하철에서 여성 승객들의 치마 속 등 몰카를 찍은 혐의로 기소된 범인에 대해 벌금 300만 원 형이 내려졌다. 가해자는 전동차 안에서 하루에만 다섯 차례에 걸쳐 여성의 신체를 촬영했지만, 재판부는 범행횟수가 많지 않으며 촬영물 내용 등이 비교적 중하지 않고 우발적 실수였을 것으로 판단했다. 게다가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으며 초범인 사실과 더불어 결혼을 앞뒀다는 개인적인 사정을 참작해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200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한 워터파크 몰카의 경우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데 있어 법률적 지원을 해 민·형사 모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처럼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데 비해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람들의 불안감은 날로 증폭되고 있다. 스스로 내 몸은 지키자는 생각에 몰카 탐지 의뢰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보안업체 의뢰 건수는 지난해보다 15-45% 증가했으며 온라인쇼핑몰에서 판매되는 몰카 탐지기 구매 건수도 23-40%가량 늘어났다. 관련 업체 관계자는 “기존에는 기업 위주의 의뢰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고시텔, 원룸촌 등에서 의뢰가 늘어났다”라고 밝혔다.
고정식 몰카 같은 경우에는 주파수를 이용해 카메라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탐지기가 효용성이 있다. 하지만 ‘워터파크 몰카’에 사용된 소형 카메라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몰카 탐지기로는 전혀 감지해내지 못했다. 특히 안경, 모자, 펜 등 생활용품에 SD카드가 내장된 몰래카메라의 경우에도 역시 적발해내기란 쉽지 않다. 아직까지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으므로 탐지기를 무작정 구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범죄학연구원 김복준 연구위원은 “카메라 구매자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주는 방법도 좋다. 근절시키기는 어렵지만, 총기처럼 경찰서에 가 등록·신고해 허가를 받는 방식이나 황산, 염산 등 유해 화학물질을 구입할 때처럼 최소한 구입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정도는 기재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창피하다는 이유로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적극적인 신고만이 범인을 잡는 데 가장 도움되는 해결책이라며 이번 워터파크 몰카 역시 신고자의 진술로 날짜 등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소정 기자 gisele_2@naver.com
강연희 기자 yhadella@naver.com
이지은 수습기자 unmethi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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