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돈만 펑펑 쓰라는 정부

가끔 가던 동네 커피전문점이 문을 닫았다. 이사 오던 날, 이삿짐을 풀고 우연히 들렀던 이 가게는 흑백 톤의 내부 장식이 깔끔해서 계속 방문하게 됐다. 매번 갈 때마다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손님이 없어도 되나 싶더니 결국 문을 닫았다. 어디 이 집뿐인가. 지난 2년 새 많은 식당이 문을 닫았다. 그만큼 소비가 정체됐다는 얘기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 총소득 증가율은 3.7%이다. 그런데 민간 소비 증가율은 1.8%다. 소득 증가율보다 소비 증가율은 턱없이 뒤처진다. 사람들은 왜 지갑을 닫았을까? 이에 정부는 지난해에 세월호 사건을, 올해는 메르스 탓을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정체된 소비 구조를 해결하겠다며 각종 소비 진작 정책을 내놨다. 자동차와 명품에 붙는 개별소비세를 깎아주고, 코리아 그랜드세일의 대상을 내국인에게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과연 이에 소비자들이 화끈하게 지갑을 열까? 그러나 정부가 내세운 경제 활성화 방안에도 소비는 축소됐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 실패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정부와 기업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인건비 삭감’과 ‘원화절하’ 정책에 모든 것을 걸었다.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돈을 적게 주고, 여차하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무책임한 정책을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저환율 정책을 썼다. 예컨대 1달러가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다고 가정해보자. 예전에는 10달러짜리 물건을 팔면 1만 원의 매출이 발생했는데 이젠 환율 덕에 5,000원만큼의 추가수익이 난다. 이에 원화로 결산하는 수출회사와 저임금, 저환율로 운영되는 수출 기업의 경영지표가 급속히 좋아지면서 가격경쟁력도 좋아졌다.


반면, 세상에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환율이 상승하면 물가는 인상된다. 즉, 예전에는 10달러짜리 제품을 1만 원에 구매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1만 5000원이 필요하다. 소비자 관점에서 여전히 돈은 없는데 물가가 오르니 당연히 구매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면서 미래가 불안해졌다. 자신이 언제 잘릴지 모르니 소비는 더욱 움츠러들 것이다.


소비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구상대로라면 수출로 돈을 번 기업이 수익을 국내에 환원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임금과 법인세 인상이다. 하지만 기업은 저임금을 유지했고 정부도 법인세를 계속 깎아줬다. 결국, 깎은 임금과 절세한 법인세는 기업의 곳간으로 들어가게 돼 정부가 기대하는 ‘낙수효과’는 없어졌다.


이 외에도 정부의 실책은 또 있다. 바로 부동산 부양이다. 정부는 부동산이 살아야 경기가 산다며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금리를 내렸다. 이에 내려가던 집값이 상승 반전하기 시작하면서 저금리는 전세를 없애고 월세로 주택임대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오히려 월세와 전세가 치솟고 집값이 상승해 국민은 주거비 부담에 허리가 휠 지경이 됐다. 또한, 정부는 대학생에게 반값 등록금보다는 학자금 대출을 택하게 했다. 학자금 대출액은 4년 만에 3배가 늘어나 2014년 기준 학생 1인당 빚은 704만 원에 이른다. 돈을 빌린 학생은 빚을 갚기 위해서 취직을 해서도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


내수시장은 국가 경제의 안전망으로 불린다. 대외환경이 변덕스럽게 바뀔 때 탄탄하게 버텨줄 데는 이곳뿐이기 때문이다. 미국, 독일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수출국인 일본도 내수시장 비중이 더 크다. 결국, 소비를 살리려면 수출 일변도의 정책을 바꿔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규직은 늘리고, 최저임금은 적정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특정 기업과 개인에게 몰린 과도한 부는 세금으로 걷어 저소득층에 분배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가 제안한 불황 탈출의 해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는 ‘쉬운 해고’를 노동개혁이라며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과연, 정부는 소비 축소를 탈출하기 위한 의지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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