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2003)』- 펄벅/문예출판사 -

『대지』의 주인공인 왕룽은 중국 북부지방 시골의 가난한 농부다. 그는 황 씨의 계집종과 결혼하기 위해 읍내 대갓집인 황 씨 댁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왕룽은 많은 양의 아편을 피우며 사치를 부리는 그 댁의 노마님을 보게 된다. 그 풍족한 모습에 분노를 느낀 그는 돈을 모아 황 씨 댁의 땅을 모두 사겠다고 다짐한다. 이내 북부 지역에는 심한 기근이 생기고 사치에 많은 돈을 써버린 황 씨 집안은 파산 지경에 이른다. 시간이 흐른 뒤 왕룽은 그 집안의 땅을 점점 사들여 많은 토지를 거느리게 된다.


『대지』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조명하지 않은 채 한 농부의 삶을 통해서 특정 시기의 중국과 그들의 삶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즉, 구체적인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나오지 않아 독자가 중국의 어느 시기일지 추측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언제, 어떤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걸까?


이를 위해서는 대갓집의 노마님이 중독된 ‘아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아편을 피우면서 점점 말라가고 온종일 몽롱한 상태로 지낸다. 이후 돈이 없어 아편을 살 수 없어지자 땅을 팔라고 하인을 윽박지르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보인다. 왕룽의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역시 아편에 중독돼 노마님과 같은 상태로 변해가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아편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때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 말기다. 귀족, 상인, 하층민 등 신분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아편을 피웠다. 실제로 청 말기인 1830년대 말에는 아편 중독자 수가 500만 명이 넘었고, 1780년 무렵 약 1,000상자에 불과했던 아편의 수입량은 1840년에 4만 상자 정도로 늘어났다. 무려 300만 톤에 육박하는 무게였다.


당시 서양에서는 청나라에서 만든 비단, 차, 도자기의 수요가 많았다. 특히 그 당시의 영국은 차 마시는 문화가 선풍적으로 유행해 청에서 차를 대량으로 수입 했다. 하지만 청나라는 그에 비해 서양 상품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영국은 돈으로 통용됐던 은을 대량으로 청나라에 보내야 했다. 이를 못마땅해 하던 영국 정부는 청으로부터 은을 다시 얻기 위해 아편을 몰래 파는 방법을 선택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책 후반에서 아편을 파는 점원이 “요즘엔 아편을 대놓고 팔다가는 법에 걸린다오. 만약 돈도 있고 사고 싶은 마음도 있다면 은화 한 냥을 내고 가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청은 아편을 불법으로 지정했으나 암암리에 계속 거래된 것이다.


청나라는 아편 거래를 막기 위해 관료였던 임칙서를 파견했다. 그는 아편을 판매한 외국인을 잡아 판매중단 서약서를 쓰게 만드는 등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지만 유통은 쉽게 중단되지 않았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식민지화된 인도를 통해서 아편을 수출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무역은 청나라와 영국만 거래하는 ‘편무역’ 형태였다. 그런데 동인도회사가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한 후 상인을 통해 중국 근거리 해역으로 운반하면서 몰래 반입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임칙서는 아편 교역을 완전히 차단하고자 영국 배에서 나온 아편을 몰수해 불태워 버린다. 마침 청나라의 강경한 아편무역 금지 조치를 없애고 싶어 했던 영국은 불태운 아편을 ‘대영제국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전쟁의 빌미로 잡는다.


결국, 빌미를 잡은 영국군은 최신식 배와 무기를 갖춰 광둥 앞바다에 쳐들어와 ‘아편전쟁(1840)’을 일으킨다. 이에 재래식 범선과 낡은 장비를 가지고 있던 청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진 청은 일방적으로 영국과 난징조약을 맺게 돼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준 것은 물론, 영국 군함이 드나들 수 있게 5개의 항구인 광둥‧하문‧복주‧영파‧상해를 강제로 개항해야만 했다. 이후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게 된 청은 다른 서양 세력과도 불합리조약을 맺는 여지를 남기게 됐다. 『대지』에는 한 농부의 인생만을 표면적으로 그려냈지만, 청나라가 유럽 열강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힘을 잃어버리게 된 과정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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