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매체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이제는 디지털 매체의 시대가 왔다.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태블릿 PC, 전자책 단말기 등 디지털 기계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종이를 만지지도 않고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서는 종이 매체의 위기가 온 것이 아니냐고들 하지만, ‘종이’에는 사람들이 간직하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문화전문지 <PAPER>도 마찬가지다. 읽다 보면 어딘가 감수성을 톡톡 건드리는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혹은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을 주는, 감성지라 칭해도 아깝지 않을 <PAPER>. 이를 만들고 꾸려나가는 김원(58), 그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화전문지 <PAPER>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PAPER는 1995년 11월에 세상에 태어난 월간지로서 올해로 창간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초창기의 3년 정도는 대학가의 카페를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갔는데, IMF 금융위기를 맞게 돼 ‘유가지’로 바꾸게 됐어요. 무가지였음에도 탄탄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아내는 매체였기에 당시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PAPER가 관심을 두는 대상은 모든 분야의 예술 장르라 할 수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음악과 아티스트, 문인과 예술가, 여행과 고단한 삶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 주류의 문화보다는 비주류의 문화에 조금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곤 합니다. PAPER는 끈질기고 집요한 인터뷰와 매달 한 차례씩 특별한 주제로 여러 명의 필자가 이야기를 풀어냈던 특집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절복통 중구난방의 좌담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코너입니다. PAPER는 기본적으로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책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PAPER>를 발행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저는 그림을 전공한 미술학도였습니다.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그랬으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생계유지를 위해 출판미술과 편집 쪽을 기웃거리다가 결국에는 한 신문사에 속해 있는 출판국에 입사해 디자인 작업을 하는 회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연봉이 아주 좋은 회사였으므로, 행복한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7년쯤 계속하다 보니 저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그런 이유로 고민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그림공부를 하러 떠났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세웠던 원대한 계획은 이루지 못했고 유학생활 2년 만에 실패를 인정하고 귀국하게 됐죠. 이제 막 두 살이 된 아들과 아내와 함께 떠난 유학이었기에 공부에 몰입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이곳저곳으로 많은 여행을 할 수 있었기에 어쩌면 그것이 공부가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웃음)

서울로 돌아와 2년쯤 프리랜서로 건들거리며 출판 미술 쪽의 일을 하며 살다가 기존의 형태가 아닌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월간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PAPER를 창간하게 됐습니다. 제가 출판 미술 쪽 일을 하다가 만나게 된 황경신 씨가 편집장을 맡았고, PAPER가 ‘매우 특이하고 재미있는 문화전문지’로 자리를 잡은 데에는 황경신 씨의 역할이 컸습니다. 
    
<PAPER>는 매 호 잡지를 아우르는 ‘테마’가 있는데요. 이를 정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어놓은 후에 한 닷새쯤 휴식을 취하며 다들 나름대로의 엉뚱한 짓을 하며 살다가 월말쯤에 모여 다음호를 위한 기획회의를 하게 되는데…. 그 기획회의라는 게 그저 각자가 그동안 쉬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을 아무런 부담 없이 쏟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겠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그달의 특집 주제로 정하게 되는 거죠.

이 대목에서는 편집요원으로 참여하는 인물들이 과연 얼마나 잘 공감대가 형성되는가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한데, PAPER 집단은 상대적으로 그 하모니가 잘 이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PAPER의 기획회의는 1시간에서 1시간 반 사이에 끝나곤 합니다. 그것도 단 한 차례의 회의로 명쾌하게 끝나죠. 그만큼 모두와 호흡이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결과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타 문화잡지와는 다르게 문화현상에 대한 기사보다는 주제에 맞는 위원의 ‘글’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PAPER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책을 편집하고 그러는 인물들이, 대상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오히려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의 인물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잡지를 읽다 보면 인디 뮤지션이나 소설가 등의 인터뷰도 등장하는데요. <PAPER>만의 인터뷰이 선정 기준이 있나요
인터뷰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랍니다. 저희끼리는 ‘PAPER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PAPER스러운’, ‘PAPER다운’이란 의미로 해석하시면 될 거예요. 그러니까 PAPER가 선정한 인물로 잘 어울릴만한 인물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한다는 이야기이지요. 작가 중에서도 그 삶의 행태가 엉뚱한 사람들, 자기 세계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사람들,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자신이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 죽어라 투쟁하는 사람들, 세상을 따뜻한 품으로 감싸 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저희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는데요. PAPER에서는 기본적으로 인터뷰 진행시간을 4시간 이상 할애해주는 대상하고만 인터뷰를 합니다. 4시간 이상 인터뷰를 해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원칙은 창간호를 낸 이후로 꾸준히 지켜오고 있답니다. 
 
손글씨, 글, 사진 등이 <PAPER>에 실리고 특히 캘리그라피는 상징으로도 자리 잡게 됐는데요. 재능이 상당히 많으신 것 같아요. 원래의 꿈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제 꿈은 어릴 적부터 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대에 진학했고 그림공부를 위해 유학도 다녀왔지만, 현재의 시점으로 봤을 때 아직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 꿈을 꾸고 있고, 요즘도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 꿈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온종일 그림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웃음)
 
잡지의 마지막을 한 때 ‘백발두령이 발굴한 내 인생의 키워드’란 코너로 장식했던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선생님의 ‘내 인생의 키워드’ 16개를 꼽아보신다면 무엇일까요
실제로 저 자신을 대상으로 <내 인생의 키워드>를 진행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16가지가 무엇이었는지는 또렷이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아마도 술, 그림, 음악, 친구, PAPER, 여행, 꿈, 돈, 가족, 필기구, 녹음기, 몽상… 등이었던 걸로 기억되는군요. 
 
앞으로 <PAPER>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선생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보다 빠르고 현란한 디지털의 세상 속에서 PAPER가 기존의 아날로그 타입을 유지한 채로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 그리고 그 방식을 유지하는 것.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생존’이겠네요.

그리고 저의 꿈은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삶을 유지하는 것. 또 제 주변의 친구들과 더불어 황홀한 생각과 따뜻한 가슴을 나누며 이렇듯 절절히 살아있음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그 모든 이야기는 제가 얼마 전에 펴냈던 『봄날을 지나는 너에게』라는 제목의 책 속에 모두 요약하여 담았습니다만… 딱 한마디로 요약해서 이야기한다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오늘 당장.”이랍니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오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란 오늘이 그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이니까요.
 
 
 
 
 
 
 
 
 
 
 
 
 
 
 
 
 
 
 

글 이신후 기자 sinoo__@naver.com
사진 김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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