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당선작

 
 
맹그로브
 
박세진(국어국문14) 
 
 
 당신, 물 위에 떠있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지
상상은 쉬우니까, 처음에는 얻어맞은 것처럼 흐물거리는 나무를 떠올렸다. 물 가까이 사는 식물들이 으레 보여주는 부드러운 곡선이나 감벽색의 그림자들이 머릿속에 차례로 지나갔다.
그러나 탁한 강물 위로 꼿꼿한 줄기들이 서로 몸을 한껏 붙이고 있었다. 만원 지하철에 탄 승객처럼, 팔다리가 꺾인 죄수처럼. 배가 전진하며 수면에 원을 그릴 때마다 뿌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무서웠다. 아무리 봐도 나무로 보이지가 않아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나무를 보고 있었던 걸까요?”
오히려 나무가 나를 보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맹그로브 숲을 보고 있던 캄보디아의 배 위, 내 옆엔 권이 있었다. 우리는 함께 배의 난간에 기대고 물 위에 자리 잡은 숲을 봤다. 권은 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생각보다 괜찮지 않아?
나는 그때 큰 수술을 치르고 병원에서 갓 퇴원한 참이었다. 위로 여행, 힐링 캠프. 방송국 예능 피디들이나 좋아할 명목을 차례로 대며 권은 캄보디아를 들이밀었다. 손목까지 부어 숟가락질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내게는 시련처럼 다가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권은 나와의 결혼을 꿈꿨다.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그 계획에 동참했다. 우리에게도 유모차에 탄 아기를 보며 가슴이 부풀어 오르던 때가 있었다. 가구점이나 가전제품 매장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쇼윈도를 들여다보던 때가 있었다. 권과 나는 둥지를 트는 새처럼 결혼 자금 준비에 한창이었다. 
권의 아버지는 경기도 비닐하우스 지대 인근에서 성냥 공장을 운영했다. 벼락 맞을 부자까지 되지는 않지만 아들의 학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수입이었다. 아들 앞에서 다방에 납품할 성냥갑은 꺼내지도 않을 만큼 고지식한 면도 있었다. 아이엠에프와 중국산 라이터에 꿈쩍도 않았던 것은 그 성격 때문이리라. 
라이터가 먼저 맹그러졌는데 인천 사람들은 성냥을 들여오지 않았냐? 권의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뒷물은 성냥을 밀어냈고, 권은 학자금 대출을 갚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성장했다. 그 세대의 여느 직장인처럼, 월급 외에 돈을 구할 구석이 없던 권은 말레이시아로 해외 전근을 신청했다. 숙소는 현지인들과 함께 콘도에서, 비행기는 회사에서, 보험도 식비도 걱정할 것 없이 짐만 싸면 됐다. 권은 물갈이도 하지 않고 캄보디아의 계절을, 긴 여름을 지냈다. 
권은 현지인들의 관리인이 됐다. 납품 수주를 받고 물량을 채우고 직원들의 휴일을 조정했다. 돈이 나갈 구석이 없어 결혼 비용은 척척 쌓였다. 그때쯤 나는 호르몬 약을 먹기 시작했다. 보통의 롱디 커플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낮에는 근무를 밤에는 긴 통화를 하며 곁을 그리워하는 날들이었다. 
괴로운 것은 더위였다. 갱년기 여성처럼 호르몬이 과잉과 결핍을 반복했다. 이유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열이 올랐고 그럴 때마다 신경질이 도졌다. 지뢰라도 되는 듯 언제 열이 오를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내 속도 모르고 권은 더위 타령을 했다.
날씨가 맑으면 맑을수록 좋지. 뜨거워서 아무 생각 하지 않아도 되거든. 푹푹 찌면 느긋하게 밤을 기다리는 거야.
권은 내가 동남아의 날씨를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권에게 더위는 결혼을 보증해주는 육체적 시련이었다. 시련 뒤엔 신혼 생활이 기다리는 달콤한 보증이었다. 추운 나라에 가고 싶어. 권은 업무 중 메신저로 보낸 투정을 묵살했다. 바쁘다는 핑계였다. 그즈음 의사는 결국 수술을 권했다. 사무실엔 병가를 냈다. 권이 캄보디아 여행 계획을 짜는 동안 나는 병실에 누워 수술을 기다렸다. 
 
퇴원 후 첫 여행이 캄보디아 패키지여행이라니.
수하물을 부치느라 긴 줄에 꼼짝 않고 서있는 권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비를 생각했다. 특별히 커플 패키지여행을 예약했다며 여행사 직원을 찾는 권을 따라가는 내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여행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내 주변에 남녀 한 쌍으로 이뤄진 여행객들이 바글거렸다. 신혼의, 중년의, 황혼의. 그들이 서로 결혼한 사이인지, 얼마나 만났는지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번지르르한 직함을 과시하고 사는 곳을, 나이를, 우리의 관계를 캐물었다.
나와 권을 보고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남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간다며 쑥덕대기도 했다. 개중에는 대놓고 골프 불륜이라고 써 붙인 커플들도 있어 역으로 질문을 해볼까 하다가 관뒀다. 권이 부부라고 둘러대지 않았다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내내 ‘남자따라 외국 갔다가 혼삿길 막힐 여자’라는 딱지를 달고 있었을 거다.
부부라고 대답하기 무섭게 자녀 계획을 물었다. 가이드는 선상에서 열심히 지역의 이름, 전설, 특산품 등 갖가지 것들을 설명했다. 다들 난간에 서서 강물과 나무를 보며 기념사진을 찍느라 딱히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았다. 여행객들은 끼리끼리 모여 계속 신상을 헤집고 있었다. 아기라.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을 상대로 일일이
저는 최근 자궁적출수술을 했고, 장기간의 호르몬치료로 몸이 말이 아닙니다. 몸이 안 좋아서 휴식 차 남자친구, 그러니까 결혼을 약속했지만 예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남자와 겁도 없이 캄보디아에 왔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불쾌한 표정으로 뱃전만 보고 있는 나와 달리 권은 내 허리에 손을 올리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딸이 좋을까요, 아들이 좋을까요? 
하며 웃었다. 몸이 딱딱해졌다. 떨렸다. 권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권의 손을 몸에서 떼어내며 아무렇지 않으려 애쓰며 맹그로브 군락을 카메라에 담았다. 권이 귓가에 대고 작게 사과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사람들의 움직임은 배를 조금씩 움직이게 했다. 배 주변으로 파동들이 조금씩 깊게 새겨졌다.
 
“빨가벗고 하기엔 우스운 감상이네. 그치?”
그가 말한다. 그와 나는 맨몸으로 누워있다. 내 곁에 권은 이제 없다. 권과의 기억을 ‘우스운 감상’이라고 표현하는 그만 있다. 그의 옆에는 여성용 정장이 축 너부러져 있다. 한때는 나의 옷이었던 것이다. 그가 발가락을 움직여 리모컨의 버튼을 누른다. 에어컨이 짧은 오르골 소리를 내며 켜진다. 저도 덥다는 듯 한참을 더운 숨을  뱉는다. 
물 위에 떠 있는 식물들. 식물의 군락을 떠올리자 나도 몸이 더워진다. 맹그로브 사이사이에 돋아난 수풀은 삼라만상을 그린 불화를 연상시킨다. 고통 속에 몸을 까뒤집는 죄인이 풀로 자라나는 과정이 그려진다. 오싹한 기분이 들어 몸이 긴장한다. 식물들이 바짝 세운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언제나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는 배 위에 스타킹을 올려놓고 손을 집어넣는다. 스타킹은 그의 손 모양대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나름의 놀이처럼 보인다. 의식일지도 모른다. 의식 바깥의 행동일지도 모른다. 나일론 섬유가 만드는 촘촘한 질감과 반짝임이 그의 손을 감싼다. 내 시선을 느끼고 그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여자 친굴 하나 사귀었는데, 군 제대하고 바로 만나서 꽤 오래 사귀었던 친구였어. 그런데 짓궂다고 해야 할까, 성격이 좀 괴상해서. 내가 화장실을 가면 가방을 들고 도망가거나 내 양말에 구멍을 뚫어놓고 좌식 식당에 가서 낄낄대는 걸 즐기던 여자애였어. 그 애가 그럴 때마다 싫지는 않았어. 무척 좋아했으니까, 깔깔대는 웃음도 귀여웠어. 오싹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창피하면서도 그 애가 좋았어. 그 애의 장난은 사랑스러워서, 오늘은 어떤 장난을 칠까 기대한 적도 있었지.”
어느 날은 낙엽등반이라는 명목 하에 설악산에 갔다. 물론 속셈이 뻔한 지라 당일치기는 아니었다. 당시의 그는 여전히 군 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날 만큼 군대물이 덜 빠진, 숫기 없는 복학생이었다. 그는 자연의 기가 필요하다느니 뭐니 하며 쓸데없이 부연설명을 늘어놓으며 여자 친구에게 여행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여자 친구는, 
가서 남자 기나 받아올까?
하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횡재다 싶어 그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연락했다. 서로의 지갑 사정을 잘 아는 터라 친구는 싼 숙소를 추천해줬다.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연수원 숙소였다. 그러나 등반 후 찾아간 숙소는 생각보다 낡고 더러웠다. 여자 친구의 눈치를 보던 그는 숙소의 중대한 결함을 발견했다. 난방이 안 된다는 점이었다. 보일러는 텅텅거리는 소리만 내고 제 기능을 못했다. 여행까지 와서 이게 뭐람…… 분위기는 글러먹었고, 잠이나 겨우 잘까 싶었다. 
그러나 옆에 누운 여자 친구는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그는 애가 반송장이 됐나 싶은 마음에 괜찮냐고 물었다.
“조금 쌀쌀하긴 한데 잘만 해. 하고 바지를 걷어서 내복을 보여주더라? 그 애는 자기 것만 챙겨왔고, 나는 안 챙겼으니. 뻔하지. 벌벌 떠는 신세였다. 그래도 남자라고, 그 추운 날에 벽에 붙어서 암말도 않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그애가 나를 부르는 거야.”
자기야. 뭣하면 이거라도 입을래?
숫기가 없던 복학생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찡그렸다.
이거 엄청 따뜻해. 여름엔 땀띠도 난다?
연인의 웃음소리가 벽을 부딪었다. 그는 사방으로 흩어진 웃음 조각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때처럼 팔딱대는 심장을 꺼내서 보여줄 듯 그가 웃으며 말한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내가 대합실에 딸린 매점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더라. 너도 알지? 판타롱 그거.”
 
그는 내 옷 무더기를 파헤친다. 예전에는 그 옷들이 어울렸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호르몬치료로 살이 빠진 후에는 남의 옷을 훔친 것처럼 그렇게 어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예전에 입었던 옷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어때, 이거 나한테 어울릴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나 그걸로 남자 많이 후렸어.”
인터넷 중고 카페에 못 입는 옷을 무더기로 올렸다. 티 원피스 져지 스커트 여러 가지 팔아요 살이 많이 빠져서 못 입는 옷들입니다. 헌옷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려고 세탁도 하고 다림질도 했다. 옷마다 번호를 매겨서 구체적인 치수도 게시했다. 게시하기 무섭게 댓글이 달렸다.
저한테 시집 보내세요.
“내가 지금 남자 만나려고 이런 옷 입는 것 같아?”
그가 얼굴을 찡그린다. 첫 판매 때는 상대를 여자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연상작용의 결과였다. 중고로 여자 옷을 파는데 상대방이 남자인 경우는 드물 테니까. 우리는 댓글로, 카페 쪽지로, 핸드폰 메시지로 연락을 했다.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택배 부치고 송장번호 보내드릴테니 그때 입금해주세요. 답신에 적힌 주소는 택배비가 아까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냥 직거래 하실래요?
“난 여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
직거래 장소에 나온 것은 통통한 체격의 여자가 아닌 중년 남성이었다. 복잡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 그는 멀리서부터 느리게 걸었다. 옷이 많아서 아내 대신 나온 걸까? 직접 입는다고 하면 안 팔겠다고 해야 하나? 아니 입을 사람이 누구든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동시다발적으로 질문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냥 예쁜 옷을 입은 내가 좋은 거야.”
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보니까 제 사이즈랑 님이 예전에 입으시던 사이즈랑 맞던데. 다른 옷은 더 파실 생각 없으세요? 거래 후 그가 보낸 첫 문자였다.
호르몬 치료는 내 몸의 지방들을 강탈하듯 가져갔다. 갈취를 당할수록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늘었다. 몸이 가벼워졌다는 거짓말을 했다. 얼굴과 목 색깔이 흙빛으로 변했다. 팔꿈치나  무릎처럼 접히는 부분도 까맣게 변했다. 몸이 안 좋아 어혈이 낀 거라고 가족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처럼, 나도 내 몸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거울 안의 나는 전과 외모부터 분위기까지 너무 달라서, 낯설음 이전에 불쾌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다.
호르몬 치료에 얻어맞기 전 나의 사이즈는 그의 것과 비슷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기에 접어들어도 예전 체형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는 평생 다이어트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데, 나는 그 걱정은 덜었다. 우스갯소리를 해도 가족들은 웃지 않았다. 거울 속에는 형편없는 모습의 내가 있었다. 아파보이고, 불쌍해보였지만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내 몸은 쪼그라들었다. 팔다리에서부터 가슴과 엉덩이까지 모두 수분기없이 말라갔다. 볼품없었다. 자궁이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버려서,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울고 싶었다.
그의 비밀 취미는 설악산애인과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됐다. 그가 직장동료와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 아들을 둘 때까지 비밀을 간직한 평화로운 일상은 유지됐다. 그는 들킬 리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취미 생활은 철저하게 일상과 분리하기로 했다. 그가 색다른 옷을 입는 곳은 집에서 먼 동네의 고시원이었다. 
그는 가끔 사진을 찍어 익명으로 크로스드레서 카페에 게시하기도 했다. 얼굴을 가리고 무의미한 조합으로 완성시킨 닉네임은 그를 아름답고 매력있는 크로스드레서로 만들어주었다.
비밀과 공존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나잇살도 늘었다. 그는 나이가, 술이, 담배가 그의 육체를 흉하게 만들 것을 걱정했다. 그는 회식에 빠졌고, 은단을 샀다. 야식도 줄였다. 아름다운 평화를 위해서는 일상의 사소한 위안들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밀은 평화를 단조로움으로 착각했다. 조용함을 지겨워했다.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아내와 함께 미용실에 간 날이었다. 헤어스타일을 상의하려고 아내에게 핸드폰을 건네준 것이 화근이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핸드폰 사진첩을 아내가 본 것이다. 
이년 어떤 년이야 이 미친 새끼야?
아내의 목소리가 주말 오후 미용실 바닥 타일을 타고 머리카락처럼 흩어졌다. 진부하게도 상자는 열려버렸다. 그년이 나야…… 미용사의 따가운 시선에 그는 제대로 대답할 수조차 없었다. 그 순간, 엉뚱하게도 그는 설악산애인을 떠올렸다.
아내는 그의 취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바람을 피우는 게 더 낫다는 입장이었다. 그니까 내가 어떤 종류의 변태랑 산거야? 당신 아들도 생각해야지! 아내가 뺨을 후려칠 때마다 방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아들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아내는 친정으로 아이를 보냈다. 변태에게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의 예상대로 그는 이혼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자신의 아들을 본 적이 없다. 
그때를 계기로 그는 크로스드레서 카페에 얼굴을 공개했다.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갔다. 어차피 망한 인생,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자신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블로그에 일상생활도 포스팅했다. 인터넷으로 그를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 여자 옷을 입지 않은 ‘정상적인’ 그를 보고 사람들은 돌싱이라고 불렀다. 여자 옷을 입으면 변태였고 때때로 다양한 욕이 수식어로 따라붙었다.
“일전에 어떤 촬영 스태프한테 섭외 전화가 왔었어. 새내기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를 촬영하는데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중간에 주인공이 첩보원들한테 쫓길 때, 우리처럼 분장을 해서 속이는 장면을 찍겠다는 거야. 그때까진 이렇게 예쁜 옷 입는 게 내 만족이고 취미였지, 돈을 받는다는 건 생각도 못 했거든. 돈을 받게 되면 많은 게 달라져. 이름부터 취미에서 직업으로 바뀌는 거지. 책임감에 마음은 조금 무거웠지만, 너무 신나서 평소에 꾸미던 것보다 훨씬 예쁘게 하고 촬영장엘 갔지. 그랬더니 감독 표정이 너무 안 좋은 거야.”
“왜요?”
글쎄, 내가 너무 예뻤나 보지. 그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그랬으면 좋겠을 텐데. 자기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라면서. 수정을 좀 해야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건 좀 징그러우니까 저희 측에서 준비한 옷을 입어주세요. 라고.”
“준비했다는 옷은 어떤 옷인데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의상이었어. 한마디로 코스프레 하라는 거였지.”
코스프레를 하라는 감독의 제안에 그는 반발심에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의상을 준비했다고 말부터 했더라면 기분이 덜 상했을 텐데. ‘그건 좀 징그러우니까’ 라니. 그는 일상과 취미를 철저하게 분리한 생활을 했지만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해 주겠지. 아들도 알아줄 거야. 그게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내가 여자 옷을 입으면 징그러운 거고, 애니메이션 캐릭터 분장을 하면 웃기고 보기 좋은 건가. 그러나 함께 촬영하기로 한 카페 동료들이 강하게 영화 출연을 주장했다. 결정적으로 준비된 의상이 너무 예뻤고 쉽게 구하기 힘든 고가의 의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동료들과 함께 ‘예쁘지만 그나마 징그럽진 않은’ 코스프레이어로 분했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한 관심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여자보다 예쁜 여자’라며 SNS에 전파된 사진 때문이었다. 2D 캐릭터가 모니터에서 튀어나왔다며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들이 활동하는 카페 방문자수는 평소의 열배로 뛰었고 그에게 팬이라며 응원하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그냥 여장하면 사람들이 수군대는데, 코스프레를 하니까 신기해하고 팬도 생기더라.”
그는 징그러운 자신과 징그럽지 않은 자신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남들 눈에 보기 좋게 끼워 맞춰진 나와,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나. 사람들이 나를 자꾸 분리시켰어. 그 전까지는 나와 나 사이에 간극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분장한 그를 상상한다. 노란 가발을 쓰고 딱 붙는 플러그슈트를 입은 그. 양갈래로 머리카락을 묶고 세라복을 입은 그. 그의 모습은 언젠가 놀이공원에서 본 퍼레이드 쇼의 공주님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외모와는 거리가 먼, 이질적인 생김새의 외국인 공주님들. 퍼레이드가 시작하고 공주님이 입을 뻐끔거릴 때에 들리는 것은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이다. 선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 그녀들은 기계적으로 입을 뻐끔거렸다. 미리 녹음된 한국인 성우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그것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헷갈리지 말고 들어. 나는 남자야. 예쁜 옷을 입은 남자. 화병에 꽂혀있다고 그게 다 생화겠니?”
 
“자세가 불편해보여.”
실제로도 불편해요. 나는 구부정하게 몸을 말고 있다. 그가 나를 걱정스럽게 훑어본다. 엎드리면 더 편할 것 같지만 배에 압이 높아지면 안 된다고 의사가 주의를 줬다. 뱃속의 태아처럼, 내 몸이 소중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몸을 구부린다. 에어컨의 냉기가 발가벗은 몸을 감싼다.
“배가 아파?”
나는 모로 눕는다. 팔다리를 배 쪽으로 끌어당기는 몸을 만다. 허벅지와 팔뚝의 살갗이 닿으며 서로의 질감을 확인한다. 같은 몸인데도 다른 온도와 질감을 가진 두 부분. 인간의 살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곡선이 맞물린다. 나의 몸은 점점 둥글어진다.
그는 천장과 수평을 이루며 납작하게 누워 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스타킹을 벽 쪽으로 던진다. 스타킹은 힘없이 축 늘어져,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다.
“왜 아픈 거야?”
“생리통이요.”
수술했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가 상체를 들어 올리며 묻는다. 그러다 멈칫, 자신의 질문이 실례일거라는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굳어진다. 그가 의문을 갖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가 당황하지 않게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내던져진 스타킹을 빤히 바라보기로 한다.
내 몸도 자궁이 없는 걸 까먹는가봐. 나도 내가 여자라고 생각하는데, 내 몸은 얼마나 어색하겠어요? 그는 나를 바라본다. 나를 훑어본다. 세세하게, 아니 ‘샅샅이’. 내가 몸속 어딘가에 자궁을 숨겨두기라도 한 것처럼. 용왕 앞에 앉은 토끼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몸을 꼿꼿하게 편다. 
“너 여전히 여자야. 그렇게 보여.”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겠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가슴이 딱딱해진다. 아랫배가 아프고 허리가 당겨온다.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배 안이 끓어오른다. 예전에도 그랬다. 오줌이 자주 마려웠고 생리통이 심했다. 한 번은 아픈 걸 참고 업무를 보다가 기절을 했다. 응급실에 갔다가 그대로 입원을 했고, 검사를 받으라는 의사의 말을 따랐다. 여자들이 따로 건강관리를 해야 되는 줄을 몰랐다. 내 몸을 돌아본 적이 없었다.
진단은 자궁내막증으로,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병명을 듣고도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줄을 몰라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거, 안 좋은 거겠죠? 흐리게 변하던 의사의 눈빛을 기억한다.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게 치면 여자 옷을 입은 남자 쪽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가 옷더미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담당 의사에게 나는 자궁 적출 수술을 한 여성이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자궁을 잃은 나를 많이 걱정했다. 나에게 상담치료를 병행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유능한 의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신뢰했다. 물론 지금은 자궁이 없지만, 그것이 주는 불만과는 별개로 그녀는 옳은 판단을 했을 것이다. 
권에게는 파혼녀일 것이다. 그는 나쁜 인연이었다고,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연인들이 어디 있을까? 감상에 젖지 않기로 했다. 
옆에 누운 그에게는 어떨까. 나는 소리 내어 묻는 것을 고민한다.
“내 몸은 그만 보고 너 자신한테나 집중해.”
그가 킥킥대면서 말한다. 나는 그를 따라서 바르게 눕는다.
“왜요, 부끄러워요?”
“그럴 리가. 네가 스스로한테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스타킹을 신은 여자와 직장인 남자를 구분하는 것도 가능해질 거야.” 
그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표정을 계속 바꾸는 그를 보니 그리스신화에서 본 어떤 이야기가 생각난다. 뱀을 때려서 그 벌로 여자로 살아보기도 하고 남자로 살아보기도 한 어떤 인간 남자에 대한 이야기. 지팡이를 짚고 뱀을 때리는 삽화에 그려진 표정이 참으로 괴팍했던 기억이 난다.
그에게 뱀을 때려본 적이 있냐고 묻자 그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너 정말 형편없다. 내가 여자 옷 입지, 란마냐?”
정말 뱀 때린 적 없어요? 취조하듯 그를 다그친다. 우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 깔깔댔다. 천장에 가닿는 웃음소리. 에어컨 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우리 엄마가 처녀 적에 입은 원피스 있는데, 그거 엄청 예뻐요. 한 번 볼래요?”
좋지. 그가 몸을 발딱 일으키면서 외친다. 예쁜 옷을 입은 평균 보다 조금 작은 체중에 이제 막 나잇살이 찌기 시작한 몸. 우스운 표현이지만 우리 둘 다 발가벗고 있으니 정육점에 진열된 냉동 닭처럼 보인다. 닭들도 저들 사이에서 이상한 닭을 규정짓고 부리로 쪼거나 쫓아가서 홰칠까?
우리 닭 같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웃는다. 그가 닭을 키워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없다고 대답한다. 
“닭이라고 하니까 생각나서.”
그가 어릴 적, 미취학아동에서 갓 벗어났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그가 속한 학급에서는 교사 뒤편에 우리를 만들어 닭과 토끼같이 작은 생물을 키웠다고 한다. 어느 날, 학교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는데.
“수컷이 알을 낳았지 뭐야.”
암탉들이 얌전한 까닭에 고양이에게 모두 잡아먹힌 뒤였다. 아이들이 남은 시체를 추스르고 울면서 장례식을 끝내고 일주일이 지났다. 당번 아이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으며 교정을 뛰어다녔다. 수컷이 알을 낳다니. 교사들도 당황한 눈치였다. 혹시 어떤 아이가 몰래 달걀을 둔 건 아닐까? 아이들의 동심은 예상 가능한 범위 바깥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잦아, 교사들도 함부로 억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산타라도 불러와야 하는 걸까요? 교사들이 쑥덕거리는데, 아이들을 지휘하고 나선 것은 교사를 관리하는 늙은 수위였다. 
“그러니까 그 사람 말이, 닭이 그렇게 암수 구별이 어렵다네. 겉으로는 암컷 같은데 수컷인 경우도 있고. 수컷 같은데 알을 낳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애매한 애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
당연히 모르죠.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등을 댄다. 
“배를 갈라서 알집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전문가들도 구분하기가 힘들다는 거야.”
알집을요? 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닭들은 또 그런 세계에서 사는구나. 어쩌면 평생 자신이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내가 여자인지도 남자인지도 모르는 사람은 엄청 슬프지 않을까?”
그가 한참을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는 몸을 더 가까이하고 눕는다. 공기가 물처럼 우리를 감싼다. 차가운 에어컨이 바람을 뿜을 때마다 작은 일렁임이 몸에 와서 부딪는다. 그와 나의 살이 닿으며 서로의 온도를 인식한다. 그는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몸을 일으킨다.
“가져올게요. 기다려요.”
“잠깐, 잠깐. 조금만 더 누워 있다가.”
그가 나를 불러 세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하는 얼굴이다. 패전국의 왕녀 같은 얼굴이다. 화려한 파티용 드레스 차림도, 미망인의 검은 상복 차림도 어울릴 표정이다. 그가 놀이공원 퍼레이드의 한 가운데에 서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퍼레이드에 선 공주님은 모두 다 공주님이 아닌가. 러시아에서 온 공주님도 몽골에서 온 공주님도, 다들 공주님으로 불리는데. 그가 외국어로 말을 하든, 목소리가 굵고 낮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그런 생각들. 그저 사람들은 예쁜 공주님이네, 하고 말텐데.
“옷 가져올게요.”
그가 입을 벌린다. 그가 말한다. 
“글쎄, 별 상관없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되묻자 그가 친절하게 답한다.
“여자인지도 남자인지도 모르는 거.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나도 그다지 슬프지 않으니까. 그가 덧붙인다.
 
당신. 물 위에 떠있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지. 그 나무는 씨앗이 아닌 작은 나무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해안선을 따라 군락을 이루는 이 식물을 두고 누군가는 태생식물이라 하고 누군가는 새끼를 치는 나무라고 한다. 누군가는 이를 맹그로브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무들이 서로에게 기대며 만드는 작고 선선한 어둠 속에서,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코끝까지 물에 잠기는 기분이 든다. 그와 나는 서로의 소리에 맞춰서 숨을 고른다. 내 곁으로 해안선이 확장한다. 같은 박동으로 뛰는 심장. 그와 내가 만드는 몸의 그늘이 점점 넓어진다. 살에 드리우는 그늘을 느끼며, 나는 잠이 든다. 
 
 
 
소설 당선 소감
 
한밤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대 하지 않은 덕분에 몇 번을 확인해도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어떻게 웃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어색한 표정을 짓고 한참을 잠들지 못했습니다.

스무 살의 인천 바다가 떠오릅니다. 바다 앞에서 어떤 두 사람은 자신이 쓴 글을 서로에게 읽어주었습니다. 그 바다로부터 꼬박 일 년입니다. 다시 여름은 왔고, 두 번째 여름은 아주 길고 뜨거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글 옆을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불길을/쳐다보는 것만으로 온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어떤가”라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연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고, “그것을 당신이 소리 냈을 때 그것은 아주 다른 소리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이런 간극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을 비롯해 언제나 큰 가르침을 주시는 여태천 교수님, 함께 글을 쓰는 문우들, 먼 곳에서 또 곁에서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안 쓰겠다, 못 쓰겠다’고 투정부리는 어린 저를 항상 다독여주는 규리, 은호, 그리고 지환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글로써 마음이 가닿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심사평
 
올해 동덕문화상의 응모작은 모두 13편이었다. 패기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꽤 보였지만, 대부분이 흥미로운 설정과 활달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이르러 아쉬움을 남겼다. 독특한 소재와 신선한 설정에 대해 고민하는 만큼, 그 설정들을 끝까지 잘 끌고 가는 뚝심도 필요하다. 작가가 굳이 의도한 게 아니라면, 밑단 처리가 덜 된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거듭 읽었던 작품은 <세 번째 꿈>, <하아늘은멀더라도오>, <맹그로브>였다. <세 번째 꿈>은 일찌감치 스포트라이트를 맛봤다가 추락 아닌 추락을 하게 된 인물이 다시 ‘꿈’을 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감에 목마른 작가가 길에서 시체를 주워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독자를 낚아채는데 성공했지만, 중반부 이후로 너무 급작스럽게 봉합되고 있다. 아트딜러의 등장 이후에 대해 좀더 고민해보면 어떨까. <하아늘은멀더라도오>는 섬세한 문장과 낮고 차분한 호흡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월남전에서 도망만 다니다 왔다는 아버지와 객사한 남편의 23번째 제사를 준비하는 어머니, 그리고 베트남으로 해외 봉사를 가게 된 딸. 이 가족에게 베트남은 단지 지명 이상의 무엇일 텐데, 과거의 기억에 비해 현재의 지분이 너무 적은 것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이를테면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는 것에 비해, ‘감’이란 인물에게 베트남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가 다소 약하다.  

<맹그로브>에는 자궁적출수술을 한 후 ‘결혼을 약속했지만 예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남자와 캄보디아 여행을 떠난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애인과 헤어지게 되고, 불확실한 미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제 남은 그녀는 자신과 다른 듯 닮은 한 사람과 대화를 이어간다. 물론 ‘권’과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어색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아버지나 사업과 같은, 권의 정보들은 도입부에 등장한 것치고는 소설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화자와 권의 이야기에도 빈 구석이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크로스드레서의 삶과 맹그로브라는 소재, 그리고 아픈 시간을 통과한 화자의 삶이 서로 맞닿은 지점을 차분하게 응시하고 있다. 이 작가에 대한 기대와 격려의 의미로 <맹그로브>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모든 응모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윤고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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