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제도를 추진했지만, 그동안 접했던 청년정책은 매번 실망만을 안겨줬다. 그중 청년인턴 정책은 공공기관부터 민간 기업까지 참여해 일자리를 내주며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줬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청년인턴 보조금을 노리거나 지자체 혹은 정부에 협조하기 위해 현장에선 필요하지도 않은 자리를 만드는 일명 ‘땜빵 조치’였다. 일부 현장에서는 인턴용 업무가 아예 별도로 정해져 정규직 업무 중 비교적 쉬운 일을 맡기고 기간이 지나면 다른 인턴으로 대체하는 악순환으로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비정규직이 산업 전반으로 퍼지면서 ‘신입 채용=정규직’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계약직으로 신입을 채용하는 형태가 당연해졌다. 이에 청년들에게 정규직 전환이라는 새로운 관문이 더해졌다. 또한,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신입 정규직의 연봉을 깎는 일까지 성행하며 사회적 안정을 갖지 못하는 일이 벌어져 청년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직업훈련 지원금을 비롯한 다른 프로그램도 일부 효과를 거두는 듯했으나 범위나 계층이 한정돼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데 근본적인 처방이 되진 못했다.
 최근 지역 청년을 위한 정책으로 서울시는 ‘청년수당’을, 성남시는 ‘청년 배당’을 발표했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구직 중인 청년 3,000명에게 6개월간 매달 50만 원의 활동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아직 구체적인 선발 방법은 논의 중이지만, 선발된 청년에게 그의 취업 지원활동 이행도에 따라 활동보조금이 주어지는 방식이다. 반면, 청년 배당 정책을 내세운 성남시는 시에 3년 이상 거주한 청년에게 소득이나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연 100만 원의 배당금을 분기당 25만 원씩 지급했다.
 이에 성남시에서 제공한 배당금을 통해 청년들은 취업 준비에 필요한 도서를 구입하거나 전통시장에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데 사용했고, 상인단체도 지역 경제가 활성화돼 이를 환영했다. 이와 같은 정책은 모두 생활 보조나 활동 지원식의 간접 방법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지급 대상과 선발 방식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서울시 청년수당이 취업활동 유인이라는 성격을 띠는데 반해, 성남시의 청년 배당은 오히려 기본 소득과 유사한 개념으로 보다 보편적 복지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현실에서 벗어나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포퓰리즘이라며 비판을 받고 있다. 시민들이 낸 세금을 시장 개인의 인기를 위해 남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와 성남시는 정부와의 갈등 끝에 위와 같은 정책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성남시의 청년 배당 정책을 두고 일부는 실효성이 없다고 비난한다. 청년 배당으로 지급하는 ‘성남사랑상품권’은 지역 전통시장, 소규모 식품점 등 제한된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득과 계층에 상관없이 만 24세 이하에게만 차등 지급된다.
 어떤 이는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더 노력해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거나 해외 혹은 국내 틈새시장을 공략하라고 조언한다. 이어 수십·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린 청년창업 성공신화나 외국에서 취업해 인정받은 기적 같은 사례를 소개한다.
 그러나 최저 시급을 겨우 넘는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일하거나 낡은 고시촌 혹은 부모에게 의지하며 버티는 청년들이 모두 노력만 한다 해서 과연 ‘기적’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까.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최초의 한국인 항해사라는 기적적인 타이틀을 가진 김연식 씨조차 개인만의 노력으로 달성한 것은 아니다. 2010년 당시 한국 해양수산연구원은 해운업계의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고용 조건을 과감히 낮췄고 덕분에 청년 백수였던 그는 항해사가 될 수 있었다.
 얼핏 보았을 때 그의 사례는 ‘노력의 산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기회 제공이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얼마 전 김연식 항해사는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새해 인사를 건네며 “보통의 희망조차 공짜가 아닌 세상에서 나 같은 청년들은 기적이 못 되더라도 뭐라도 행동해야 한다. 한국에서 내가 희망을 봤듯이 우리 사회도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에 없던 용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누구면 어떠랴. 젊은이들은 작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보통의 희망’이 필요하다. 이러한 보통의 희망이 만들어지면 그다음은 청년의 몫인 ‘기적’의 차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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