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사람은 이 시대를 흔히 소통 부재의 시대라고 말한다. 정치권 내에서나 정부부처 간에, 사회조직 내에서나 비영리조직들 내에서, 심지어 친구 간이나 가족 내에서 소통 부재는 이미 상례화 된 상태인 것 같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이야기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 시대에 만연하는 소위 ‘냉소주의’ 때문이 아닐까 한다. 철저한 자기중심적 주관주의, 개인적인 이성으로 무장한 자기중심적 사고, 최소한의 침범도 허용치 않는 부의 집단과 정치‧경제적 권력, 그리고 과학기술에 의거한 초과생산시스템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 등은 대중으로 하여금 사랑이나 진리 혹은 진정성과 같은 사회구성원의 보편적 의사소통 이성을 따르는 대신 자신의 권력과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이며, 그 결과 사회 내에서는 의사소통의 부재, 의사소통을 하는 듯한 몸짓, 혹은 의사소통의 거부와 같은 냉소주의의 징표들만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본래 ‘냉소주의’는 ‘신랄하게 물어뜯는 성격’이라는 뜻을 가진 ‘kynismós’라는 말에서 기원하며 기원적 5세기경 소크라테스학파 일원이었던 안티스테네스에 의해 기초하고 디오게네스에 의해 발전된 철학학파이다. 신랄하게 물어뜯는다는 의미 때문에 ‘견유주의’라고도 일컬어지는 냉소주의의 핵심은 ‘무욕’으로서 나체와 같이 자연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상태에 대해 수치심을 갖는 것을 비난하고 모든 외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면서 금욕 속에서 행복한 삶이 추구하는 것이다. 냉소주의자 혹은 견유주의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를 재성찰하여 변화시키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친구들을 구원하기 위해 기존의 사회와 친구들을 ‘물어뜯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서 ‘물어뜯는다’라는 것은 대중으로 하여금 세상의 무의미성을 적나라하게 대면하도록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처럼 고착화된 정치‧사회적 삶의 벌거벗은 모습을 대면하여 이로부터 변화를 야기하도록 만들었던 고대의 냉소주의가 어떻게 진리와 진정성 같은 의사소통적 이성을 개인의 권력과 이익추구에 종속시키도록 하는 현대적 냉소주의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수치심의 상실일 것이다. 어느 정도의 부, 명예와 권력이 자신에게 족한지 모르는 채 의사소통의 부재와 의사소통을 하는 듯한 몸짓과 의사소통의 거부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모르는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냉소주의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사랑과 진리와 진정성을 도외시한 채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이라고 치부하면서 이런 삶의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못 느끼는 현대인에게는 안타깝지만, 무의미로의 자기종속 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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