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문학과 미술이 낳은 제일 예쁜 아이라고 말하는 이루리 작가(48)

  그림책을 선물할 때 그 대상은 어린이인 경우가 많다. 분명 어렸을 적 그림책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더는 그림책을 보지 않게 됐다. 과연 그림책은 정말 어린이만 즐길 수 있는 것일까? 지난 11일, 북극곰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그림책을 만드는 이루리 작가(48)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을 졸업한 뒤 대입 논술 강사를 하다가 고려대 사회교육원에서 강의를 맡았습니다. 아동독서지도사를 양성하는 강의라 자연적으로 아동문학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 그전까지는 그림책은 어린이만 보는 것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책을 읽고 ‘어린이가 보라고 만든 책이 맞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감동과 충격을 받았고, 그 후론 그림책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때 읽은 그림책 중 하나가 린드그렌의『사자왕 형제의 모험』이에요. 린드그렌은 윤회라는 주제로 지구에는 생명보다 중요한 가치가 많다는 얘기를 그림책이라는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그 이후로 그림책에 푹 빠지게 됐죠.
  결정적으로 신혼집이 사무형 오피스텔이라 사업자 등록을 해야 했는데 그때 집을 출판사 사무실로 전입 신고했어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 북극곰 출판사가 탄생하게 됐죠. 제 부인이자 북극곰의 대표인 이순영 씨와 이전부터 환경, 생명, 치유를 주제로 책을 내는 출판사를 꿈꿔왔기 때문에 결정은 비교적 빠르게 이뤄졌어요. 평소 다큐멘터리를 보며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출판사 이름으로 정해진 북극곰에 관한 책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북극곰 출판사의 대표작인 『북극곰 코다 시리즈』는 어떻게 제작됐나요
  원래 북극곰은 북아메리카 등의 다른 지역에 살다가 북극으로 올라와 고립되면서 진화한 동물입니다. 원래 북극곰의 털은 검은색이었죠. 그래서 아직도 북극곰의 하얀 털을 깎아보면 안이 까맣습니다. 북극곰도 하얀 북극에서 자신의 까만 코가 약점이란 것을 알아 얼음이 맑을 때는 코를 가리죠. 이 사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중 하루는 꿈에 새끼 곰이 사냥꾼 앞에 놓인 엄마 곰의 코를 가려주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 꿈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든 후 대학 동아리 후배인 배우리 그림 작가와 함께『북극곰 코다 : 첫 번째 이야기, 까만 코』그림책을 완성하게 됐죠.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북극곰 코다』가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으면서 북극곰 출판사가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 참가하게 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부스를 찾아왔던 라우렌 씨가 우리 부스를 방문하게 됐죠. 그 이후 우리 책을 읽고 감동한 라우렌 씨는 자신의 남편인 일러스트레이터 베르토 씨와 함께 다시 부스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그의 작품인『눈 오는 날』을 갖고 왔는데 도서전에서 본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작품을 우리나라에 수입하고 싶다는 요청과 함께 두 번째『북극곰 코다 시리즈』의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미 두 번째 이야기가 완성됐지만, 배우리 그림 작가가 개인적 사정으로 그만두면서 그림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던 상태였죠.
  베르토 씨의 승낙으로 시작된 작업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태어나 자란 베르토 씨는 사투리가 심하고 영어를 잘하지 못해 부인 라우렌 씨의 통역이 필요했어요. 저는 글쓰기에만 집중했고 제 아내인 이순영 대표가 통역과 연락업무를 담당했었죠.『북극곰 코다 : 두 번째 이야기, 호』가 완성되는데 양쪽 부인들의 도움이 정말 컸습니다.

그림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전까지의 전통적인 그림책은 이야기에 삽화를 넣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제작되는 현대적인 그림책은 단순히 글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의미가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죠. 예를 들면, 이순원 작가의『어치와 참나무』는 어치의 건망증이 참나무 숲을 이룬다는 자연적 사실이 큰 맥락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강승은 그림 작가는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 소녀를 그려 넣어 소녀와 어치의 우정을 그림에 담아냈죠. 결과적으로 그림책을 읽는 사람은 어치가 참나무를 기르게 되는 과정을 친구가 되어 지켜볼 수 있게 됐습니다.
  영국의 그림책 작가 칼데콧은 더 재밌는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글과 그림이 마주 보고 얘기하는 대입법으로 현대적인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글과 그림을 따로 보면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저도 현대적인 그림책을 추구해 그림 작가들에게 창작이 있는 콘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보통 한 권당 최소 1년의 세월이 걸리고 때에 따라 3-5년 동안 작업이 이어집니다.

앞으로 그림책 분야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나라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후, 국제적인 저작권을 갖고 그림책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가 많아지면서 최근 그림책이 독립된 예술 장르인 것을 아는 사람이 꽤 늘었어요. 현재 ‘그림책 진흥법’을 세워 달라는 요구도 생기고 그림책 협회도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처럼 그림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을 뿐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결론적으로 그림책을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문화예술을 100년 뒤 열매를 따기 위해 나무를 심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나라 그림책 분야도 우리만의 창작이 담긴 그림책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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