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도슨트 이희준

 

 ‘전통시장 도슨트’라는 직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것이다. 도슨트라는 것 자체가 익숙지 않은 용어인 데다 전통시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게 전혀 친숙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 2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전국의 전통시장을 모조리 휩쓸고 다니는 웬 청년이 있다. 시장이 가장 즐거운 놀이동산 같다는 그를, 지난 10일에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 부탁해요
전통시장 도슨트로서 2013년 7월 1일부터 3년째 활동 중인 이희준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라디오에 출연하고, 현재 디자인 회사에서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이희준 씨가 만든 직업인 전통시장 도슨트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마트 세대’라 부를 수 있는 젊은 계층이 시장에 가지 않는 이유가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이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죠.
우리나라에는 총 1,372개의 시장이 있는데, 이건 즉, 한 동네에 걸어서 20분 이내에 시장이 꼭 하나씩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각 시장의 특징을 모르면 모든 곳이 다 똑같아 보일 겁니다. 생선 가게, 채소 가게, 떡볶이를 파는 곳, 시장을 생각하면 보통 이런 것들만 떠올리기 때문에 통인시장과 망원시장이 달라 보일 게 없죠. 그래서 그곳을 잘 알고 이야기로 재미나게 풀어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시장을 기록해 해설하는 것’이고, 그게 제 직업이 됐어요. 그래서 ‘해설자’라는 의미를 지닌 ‘도슨트’와 전통시장을 합쳐 제 직업의 이름이 탄생했죠.
전국에 있는 모든 시장을 다니며 시장의 역사, 오래된 상점과 특화된 상품 이야기 등을 모으고 각각의 매력과 차이는 무엇일까에 관해 연구해요. 그리고 주로 제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전통시장을 사랑하는 사람들’, 대학 특강,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통시장 강의 등에서 이를 깊이 있게 소개하죠. 저는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하면 거기에 맞는 시장을 추천해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아이 장난감을 사고 싶다고 하면 전국에 있는 장난감 시장을 모두 알려주고 비교해줄 수 있죠.

전통시장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곳은 저에게 놀이공원과 같아요. 그래서 보통 취재를 하러 갈 때 ‘기록 하러간다’라는 것보다 ‘놀러 간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요. 1,372개의 놀이공원에서 ‘이걸 해볼까, 저걸 시도해볼까’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죠. 제가 처음 방문한 시장이 경동시장인데, 새벽에 문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며 3일 간 상인들을 지켜봤습니다. 그러던 중 곳곳에 젊은 사람이 눈에 띄었는데, 그들 모두 자신을 셰프라고 소개하더군요. 왜 이곳까지 왔냐고 묻자, A급을 넘는 S급 식재료는 다 시장에 있다고 답했어요. 정말로 그곳에는 특색 있고 훌륭한 제품이 많아요.
시장의 먹거리로 유명한 빈대떡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나요? 과거의 시장은 주주와 사장이 있는 주식회사의 성격으로 시작했어요. 그중 광장시장의 2대 사장이었던 분이 두산 그룹의 시조인 박승직 회장이기도 하죠. 삼성, LG, CJ 그룹 또한 시장에서 시작됐어요. 그중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돈이 가장 많이 흘렀던 남대문시장을 갖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시장 상인이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일본이 상권을 차지하지 못했죠. 그 대신으로 일본은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본점인 미츠코시 백화점을 짓고 종로, 명동거리를 가져가 버려요. 게다가 미츠코시가 주력으로 했던 상품이 포목인데, 당시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가장 중요시했던 것이 포목이에요. 그곳으로 일본의 좋은 원단들을 흘러들어오다 보니 우리 포목 상인들이 갈 곳을 잃었죠.
그들이 그곳을 나와 고종황제를 만나게 되는데, 황제는 왕실의 마지막 비자금인 ‘왕실 내탕금’을 주며 일본의 탄압을 피해 포목 상인들을 위한 시장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아요. 그게 1905년이었고, 지금의 광장시장이죠. 그곳의 포목 상인들은 재료 특성상 새벽 일찍 시장에 나와 일해야 했어요. 그래서 배고프다 보니 생겨난 것이 빨리 먹을 수 있는 빈대떡과 꼬마김밥입니다. 아직도 광장시장에는 100년 정도 된 포목점이 남아있어요. 시장에는 이렇게 재밌는 역사 얘기가 많아요. 그래서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까지 곁들이면 젊은 사람들도 시장에 흥미를 느끼고 한 번쯤 찾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취재 시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면요
기록을 하려고 시장에 가지만 기록을 위해서 가지는 않아요. 즉, 저는 억지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한 시장을 최소 10번 이상 방문한 후에 종이를 들어요. 정보 수집보다는 그분의 단골손님이 되려고 노력하죠. 많은 전문가가 녹음을 권하지만, 지키고 싶은 상인들과의 신뢰 때문에 녹음은 하지 않고요. 10번 정도 가다 보면 시장 전체의 모습, 각 상점만의 재밌는 이야기, 새롭게 생겨나거나 오래된 상점과 상인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파악하게 돼요. 또한, 오래전부터 이곳을 방문한 단골에 대한 기록, 시장을 기반으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80세 이상 어르신들의 이야기, 그 시장을 외부에서 바라본 건축가와 지역 전문가들의 조언까지 남겨요.
시장을 처음 가면, 가장 먼저 떡볶이집에 자리를 잡아요. 모든 시장에서 떡볶이집이 가장 좋은 위치에 입점해 있거든요. 저는 그곳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봐요.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곳은 10개 내외로, 대부분 비슷해요. 또한, 10개의 상점 중 어떤 상품에 눈길이 머무는지 파악하죠.
제 원칙이라면, 항상 팩트만 말해요. 직접 보고 느낀 것 중 객관적인 것만 담죠. 저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번지르르한 말은 싫어해요.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말을 내뱉는 것이 정말 멋진 거죠.

취재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누군가가 마음을 열고 본인의 이야기를 하게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처음 시장을 방문했을 때, 한 상인에게 파파라치 취급을 당하기도 했어요. 사전에 미리 사진 촬영과 기록 허가에 대한 동의서를 받았는데도 그분은 저를 오해하셨죠. 알고 보니 3달 전, 저처럼 가게를 홍보해준다며 찾아왔던 청년이 청결하지 않은 부분을 촬영해 구청에 신고했던 아픔이 있는 분이었죠. 아직도 저는 매일 상인들을 설득해야 하는 두려움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래도 1년간의 노력 끝에 터득한 방법이 있어요.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단골인데, 제가 바로 단골손님이 되는 겁니다.
첫날은 아무 말 없이 한 가게에 들어가 옷을 사요. 다음 날에 또 같은 물건을 사는데, 워낙 손님이 많아서 상인이 절 알아보지 못하죠. 하루 뒤에는 다시 방문해 왜 이 상품을 취급하는지 여쭤봐요. 다음 날, “어머니가 어제 이 물건 좋다고 하셔서 샀는데, 정말 좋아서 오늘 또 사러 왔어요. 다른 좋은 상품 없어요?”라고 묻죠. 그럼 그 날에는 상인께서 먼저 자식 이야기 등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놓아요. 그렇게 그분과 친해지고 가게의 오랜 단골손님을 소개받게 되는데, 이때가 시장의 20년 전 오랜 얘기를 들을 귀중한 기회죠. 친구 사귀는 것처럼 이렇게 해당 상점을 알아갑니다.

이희준 씨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시장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시장이라는 공간은 마을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사고, 파는 공간 그 이상이었어요. 그런 것이 형성되려면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인 모든 것들이 여기서 해결되고 소통돼야 하는데, 지금도 시골의 시장에서는 유효해요. 하지만 대형마트에서는 고작 “비닐봉지가 어디에 있나요”, “고기를 어떻게 썰어주세요” 정도의 이야기밖에 오고 가지 않죠. 미래에는 한, 두 개 정도의 창고형 대형마트만 남을 것이고 그 외엔 온라인으로 대체될 거예요. 대신에 전통시장은 현재에도 새로운 이벤트가 확장되고, 체험할 수 있고, 또 찾아와 즐기고 싶은 곳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도태되는 시장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중에서 살아남는 시장은 각각의 장점을 살려 한 분야에 특화된 시장이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예술 시장, 케이크만 파는 시장, 딸기만 파는 시장 등으로 살아남기 위한 변형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의 최종 목표는 전 세계에 있는 시장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하나의 플랫폼에 모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 도쿄, 오사카, 대만의 야시장, 런던, 암스테르담, 노트르담의 시장을 모두 기록했어요. 또한, 외국 시장에 있는 청년 상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죠. 소비자가 한 사이트에 들어가면 전 세계 시장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요.

꿈을 찾지 못하고 있는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저는 회계학을 전공했는데, 첫 회계 수업에서 봤던 자료가 20년 전의 것이었어요. 그래서 손을 들고 교수님께 최신의 자료를 요구했더니, 직접 벤처 사업과 비영리 프로젝트를 해보고 결과를 수집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넘길 수 있는 얘기였지만, 저는 곧장 소셜 벤처 사업을 시작했어요. 시장의 식재료를 집으로 배송해주는 푸드 서비스였는데, 당시 한국에 처음 도입한 게 저였죠. 또한, ‘Books of Africa’라는 비영리 프로젝트를 만들었어요. 전 세계에서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 이슈를 제외한 영어 동화책을 기부받아 8개 국가에 4만 권을 보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저 또한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직장을 고려하기도 했어요. ‘토익 점수를 따야 하나,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죠. 하지만 저는 제가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었고,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때 누구나 그렇듯, 두려움이 생기죠.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이를 잘 관리해야 고정된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글ㆍ사진 강연희 기자 yhadella@naver.com
사진 이희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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