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하월곡동에는 외딴섬이라 불리는 꽤 넓은 일대가 있다. 이제는 ‘신월곡1개발구역’으로 불리는 ‘미아리 텍사스’다. 과거 미아리 텍사스는 서울의 대표적인 집창촌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2004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인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사실상 몰락했다. 그리고 이 일대에는 재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구역의 재개발은 2005년 서울시가 신월곡1구역을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할 당시 처음 논의됐다. 2009년에는 재개발조합이 설립되고 시공사까지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미아리 텍사스는 현재 10년이 지나도록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직접 찾아가본 이 일대는 이미 많은 가게가 폐업한 상태였고 몇 곳만 영업을 하고 있었으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냉기가 돌았다. 윤락가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달동네를 연상케 하는 주택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이 주택에서는 간간이 애완견 소리와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재개발 구역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약 없는 재개발 소식에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이곳의 주민과 윤락가 세입자다. 30년 이상 노후한 집들이 대부분이라 폭우나 폭설에 매우 취약해 안전문제가 많다. 그러나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돼 언제라도 나가야될 집을 큰돈을 들여가면서 수리하기도 애매하다. 한 거주민은 諺년간 재개발 때문에 집을 고치지도 팔지도 못하고 있다. 난민촌이 따로 없을 정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방치되듯 살아온 주민들은 사업이 오랫동안 지연되고 있는 이유로 개별적으로는 개발이 쉽지 않은 두 인접 정비구역을 하나로 묶어 개발하는 방식인 ‘결합개발’을 꼽고 있다.

결합개발 방식이 나온 것은 2009년 재개발이 멈추면서다. 지난 2009년 신월곡1구역은 조합설립 인가는 받았지만, 그 이후 이곳에 들어올 주상복합 뉴타운이 주거비율에 비해 상가가 많아 투자 대비 효율성이 부족하자 사업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자 2011년, 서울시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성북2구역과 신월곡1구역을 함께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성북2구역은 언덕 위에 있고 성곽에 인접해 있어 고층 개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층 건물만 짓다보니 용적률이 많이 남게 된다. 이때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비했을 때 지어도 되는 건물의 높이를 뜻한다. 즉, 용적률이 남았다는 것은 대지마다 지을 수 있는 건물의 높이가 있는데, 그 기준보다 더 낮게 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신월곡1구역은 상가 대비 주거비율을 높여야 해 기존 계획보다 고층의 건물을 지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그 구역의 기준보다 더 많은 용적률이 필요했다. 결국, 서울시는 성북2구역에서 남은 용적률 80%를 신월곡1구역으로 넘겼고, 이에 신월곡1구역의 용적률은 600%에서 680%로 늘어났다. 대신 성북2구역은 신월곡1구역에서 나오는 이익의 일부분을 얻게 된다.

하지만 성북2구역과 신월곡1구역을 묶어서 재개발하는 결합개발 방식에는 문제가 있었다. 상황이 다른 두 구역을 묶어서 개발하다 보니 한 곳의 사업이 잘못되거나 늦어지면 다른 곳의 사업도 악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1년, 서울시는 이미 결합개발을 시작한 상태에서 성북2구역 내의 ‘한성성곽’유네스코 등재 또한 동시에 추진해 신월곡1구역의 사업은 또다시 장기간 지연됐다.

이후 지난해 6월에 이 결합개발안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완전히 수정·가결됐다. 지난달부터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공람도 시작됐다. 그러나 한양도성 문제가 있었던 성북2구역은 아직도 조합설립 단계이기 때문에 그곳의 정비계획이 수립되고 고지될 때까지 신월곡1구역 주민은 앞으로 약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지난달 15일, 성북구청에서 주민 상당수는 계속되는 사업 지연에 주거 불안을 느끼고 재산 손실을 입었다는 근거로 시위를 벌여 결합개발에 반대하고 나섰다. 신월곡1구역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결합개발이 차질을 빚는 동안 집창촌 일대는 살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해졌다”라며 단독개발 추진을 원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성북구청은 결합개발이 양 구역에 의미가 있는 사업이니만큼 최대한 조속히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가장 우선해야 할 부분은 얼마나 의미 있게 결합개발 방식이 시행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주민과 세입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다. 신월곡1구역 사람들은 지금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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