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문학과 미술이 함께 담긴 종합 예술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은 일러스트가 중심이 되고, 짧게 덧붙여진 글이 잔잔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림 에세이’는 그림책의 성격을 기본으로 하며 심리치유서, 자기계발서 등의 요소가 적절하게 결합된 형태다. 그림 에세이의 등장으로 그림책은 성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는 편견과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책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을 대상으로 한다. 전 세대가 이해할만한 주제를 쉬운 언어로 구성했지만, 그 속에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오래전 읽었던 그림책의 감성을 찾아 은평구의 한 그림책 서점을 찾았다.

   은평구에 위치한 ‘프레드릭 서점’은 그림책 작가 이루리와 출판사 북금곰의 이순영 대표가 함께 만든 곳이다. 이곳은 그림책이 주를 이루는데도 아이보다 어른이 더 많이 찾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은은한 조명과 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벽면은 그림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곳에서 웃기는 그림책과 찡한 그림책의 추천 목록을 발견했다. 출판사 북극곰은 ‘찡하거나, 웃기거나’라는 슬로건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기자는 추천 도서 및 개별적으로 고른 책들을 꽤 오랜 시간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여운이 남았던 작품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엄마는 슈퍼우먼 : 『엄마가 낮잠을 잘 때(2015)』
- 글 이순원, 그림 문지나/북극곰 -

    전체적인 이야기의 소재는 평범한 가정의 어머니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상을 다루고 있다. 각자의 시간을 잘 보내는 듯 보이지만, 엄마가 잠든 사이 필요한 물건 하나 찾을 수가 없고 엄마를 찾는 전화도 이상할 만큼 많이 온다. 이순원 작가는 낮잠을 자면서도 집안의 문제를 척척 해결해주는 엄마를 ‘우리 집이라는 우주의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기자의 어머니도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은 낮잠을 주무시곤 그 시간은 항상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 이른 저녁 시간까지 지속된다. 그때마다 기자는 “주말엔 엄마가 있는데도 평소보다 밥을 더 못 챙겨 먹는 것 같아!”라고 투덜거리곤 했다. 집안일을 돕지는 못할망정 불평을 늘어놓는 자식을 보면서도 그냥 넘어가 주는 엄마를 보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처럼 그림책은 일상적인 내용을 담담하게 풀어냈지만, 그 이야기를 되짚어보면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림책 취재에 나선 지 이틀째 되는 날, 다른 서점에 방문한 기자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읽었던 그림책을 발견했다. 그 당시 2학년 전체 학급 중 유일하게 교실 한 쪽에 책방을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줄글과 그림책이 꽤 섞여 있었지만, 아이들의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단연 그림책이었다. 그중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이라는 책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책 중 하나다.

어렸을 적 나의 그림책 : 『지각대장 존(1995)』
- 글·그림 존 버닝햄/비룡소 -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선 존은 등굣길에 하수구에서 악어 한 마리를 만난다. 그 악어는 책가방을 물고 놔주지 않았다. 한차례 사투를 벌인 존은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갔으나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지각한 존을 다그쳤고 악어가 나타났다는 말을 믿지 않은 채 존에게 벌을 준다. 벌은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300번을 쓰는 것이었다. 다음날, 그 다음 날도 존은 들판에서 사자를 만나고, 폭풍우와 싸우면서 험난한 등굣길을 이어가지만, 선생님은 존의 말을 믿지 않고 벌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에 도착한 존은 고릴라에게 잡힌 선생님을 목격한다.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선생님에게 “우리 동네에 고릴라는 살지 않아요”라는 말을 던지고 유유히 지나가는 존의 모습을 뒤로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린 시절 다소 충격적인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동시에 통쾌함을 느꼈다. 그러나 1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느낌은 전혀 달랐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존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의 말을 무조건 믿지 않은 채 지나치게 현실주의자다운 모습을 보인다. 그 모습은 동생의 상상력과 감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그게 말이 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고 현실적인 말을 쏟아내던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작가는 단순히 권위적인 선생님이 아니라 상상력 풍부하고 순수했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른의 모습을 작품 속에 표현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둘리’를 보고 자란 세대에서는 주인공 둘리가 아닌 고길동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면 어른이 된 것이라 말한다. 어렸을 적 봤던 관점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현실주의자가 됐다고 느껴져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과거보다 다양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과거에 읽었던 그림책이 아직도 책장에 꽂혀 있다면 지금 당장 꺼내서 읽어보자. 당신이 얼마나 잘 성장했는지 확인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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