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욱씨남정기>에는 뜨거운 논쟁거리인 ‘갑과 을’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나온다. 갑은 ‘황금화학’이라는 대기업이고 을은 하청업체로 살아온 중소기업 ‘러블리 코스메틱’이다. 이때 황금화학이라는 절대 갑이 영원한 을인 러블리 코스메틱에 하는 행위는 시청자에게 공분을 일으키게 한다.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하청하던 제품을 주문했다가 일방적으로 취소해 재고를 떠안게 만들기도 하고, 아예 하루아침에 계약을 끊어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놔 하청업체 사장을 무릎 꿇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이런 갑질 앞에 당당히 맞서고, 때로는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려주는 이른바 ‘사이다’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황금화학에서 러블리 코스메틱으로 스카우트된 옥다정이란 인물이다. 그녀는 황금화학의 상무에게 오히려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
 요즘 이른바 ‘사이다 드라마’라는 게 넘쳐난다. 현실에선 이뤄지기 어려운 일을 드라마가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다. <시그널>이 미제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수사해 결국 진범을 찾아내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그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우리네 현실에 가깝지 않은가. 또한, <미생>이 도무지 앞을 알 수 없는 취업 현실에서의 청춘에게 ‘그래도 희망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과연 실상도 그럴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실정이다. 심지어 <돌아와요 아저씨>에서는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백화점 갑질 모녀 사건을 풍자해 속 시원하게 한 방을 날려주는 장면이 등장했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이러한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은 현실이 목이 턱 막히는 ‘고구마’라는 뜻이다. 판타지 속에서라도 시원함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여기저기서 꿈틀댄다. 하지만 앞의 사례에서 말했듯, 이런 드라마가 창궐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와 대비되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오히려 부조리함이 더 공고해지는 지도 모른다. 대중은 <태양의 후예> 같은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지만, 실제 그런 군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군인을 허용하고 포용하는 대통령은 더더욱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더 큰 허탈함을 가질 것이다.
 <차이나는 도올>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에서 도올 김용옥은 입만 열면 ‘헬조선’을 꺼내 드는 청춘들에게 “투표하지 않으면서 헬조선 운운할 자격 없다”라는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를 던졌다.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곧 선거일이다. 사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때의 속 시원함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좋은 것은 ‘사이다 현실’을 만드는 일이다. 빠짐없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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