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만드는 사람들’ 대표 심규보

  영화 <검사외전>에서 황정민이 분했던 검사 ‘변재욱’은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폭행을 저질러 감옥에 가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수감자들의 사연을 듣던 중, 많은 이가 억울한 처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검사로서 가진 법적 지식에 의거해 탄원서를 써준다. 그가 써준 서류 덕분에 어떤 사람은 형이 감량되고, 또 다른 이는 출소 하기도 한다.
  여기 ‘변재욱’보다도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던 한 청년이 있다. 한때 구치소에 수감돼 탄원서를 써줬던 그가 이제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상처받은 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심리사가 됐다. 현재 ‘별을 만드는 사람들’의 대표이자 범죄심리사로 활동하고 있는 대표 심규보(34) 씨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자.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비영리민간단체 ‘별을 만드는 사람들’ 대표 심규보입니다. 청소년학과를 졸업해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대구대학교 재활심리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범죄심리사, 전문상담사, 임상심리 전문가의 공부 또한 마쳤습니다. 현재 대구 지역 9개 경찰서를 관할하는 ‘범죄심리사’로 일하며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의 위기 청소년을 상담했어요. 대구 영남대학교의료원의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별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들었나요
심리사 일을 하면서 부모님이 자식 손을 잡고 “우리 아이가 너무 별나니 고쳐달라”라며 데려오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어요. 또, 제가 범죄심리사로서 청소년을 만나는 공간이 소년원이나 경찰서이다 보니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가 많죠. 그런데 그런 아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더라고요. 결손가정이나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소년이 대부분이었어요. 물리적인 폭력을 행하지 않는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동에게 나타나는 우울증, 조울증, 인터넷 중독, 스마트폰 중독, 과잉행동장애 등의 증세는 오롯이 부모의 탓이에요. 한 예로, 아이가 불안이 너무 많거나 주의집중이 떨어진다면 그 부모가 완벽함을 강요하는 강박증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 상담을 하다 보면 “나 나름대로 얼마나 잘해줬는데”라고 말하는 부모가 많은데, 이는 어른이 갖는 착각일 뿐입니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하는 행동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죠.
이러한 상황을 알고 나니 ‘별난 아이’가 훌륭한 멘토만 있다면 ‘특별한 아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 끝에 우리가 특‘별’함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단체명을 ‘별을 만드는 사람들’로 지었습니다.
 

‘별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나요
저희가 하는 일은 부적응 청소년을 위한 활동과 뇌전증 인식을 위한 것으로 나뉩니다. 우선, 소년원과 1대 1 협약을 맺어 개인별 멘토링을 하고 학비가 없어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에게는 장학금을 후원해주기도 합니다. 또,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소년에게는 작은 가사 지원과 개인 상담을 하죠. 또, 경찰서와도 연계가 돼 있어서 흡연이나 폭력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저희 기관으로 데려와 집단 상담과 특강을 진행합니다. 경찰관, 소년원공무원 으로부터 개인 또는 집단 후원금이 들어오면 이를 통해 아이들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최근에는 디자인을 전공한 우리 직원이 팝아트 초상화를 그리는 행사를 주최해 그 수익금 중 일부를 후원금으로 돌려 사용하기도 했죠.
두 번째로, 뇌전증 청소년을 위한 활동도 해요. 뇌전증은 2010년 이전까지는 ‘간질’로 불렸지만, 이후에는 공식 명칭이 변경됐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간질로 부르거나 뇌전증을 ‘미친 사람이다, 귀신 들린 병이다’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요. 저는 17살 때부터 뇌전증을 갖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이에 상처받아 극심한 스트레스가 왔죠. 이로 인해 3일에 한 번꼴로 발작 증세가 나타났어요. 3층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정신을 잃어 떨어져 6일 만에 깨어난 적도 있습니다. 뇌전증 환자들은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우울장애, 불안장애가 생기고 대인기피증 때문에 취업도 힘들죠. 저의 이런 경험을 통해 뇌전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이를 앓고 있는 아이들도 도와주고 싶었어요. 이를 위해 개인별 심리 검사와 상담, 또 뇌전증 가족이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가족 상담도 진행합니다.

구치소에서의 삶이 궁금해요
어릴 적, 저는 저 자신에 불만이 많았어요. “왜 나만 이혼가정에서 자라야 하는 데다, 뇌전증이라는 병을 앓아야 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사춘기에 방황을 많이 했죠.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운 데다 몸에 문신까지 했어요. 그러다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과 절도를 저질렀고 보호처분을 받아 한 달간 소년원에서 생활했어요. 출소한 후 학교에 돌아가려 했으나 저를 받아주지 않았고, 저는 자퇴를 선택한 후 검정고시를 치러 전기과에 진학했어요. 전기기사자격증을 취득해 기사로 일했지만, 단순히 ‘돈을 벌 수 있겠다’라는 이유로 선택한 직업이라 전혀 즐겁지 않았죠.
그 당시 저는 4년간 교제한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러던 중 제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순간 저는 화를 참지 못해 폭행을 저질렀고 그 자리에서 긴급체포 돼 구치소로 가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구치소에서의 삶이 터닝포인트였죠. 뇌전증을 이유로 일반사동이 아닌 병사동으로 가게 됐는데, 그곳에는 소위 ‘잘 나가는’ 조폭이 많았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서 글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레 글을 많이 써왔었는데, 하루는 같은 방을 쓰던 사람이 탄원서를 써줄 수 있냐고 부탁하더라고요. 구치소는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들 자신을 탄원하는 글을 써야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탄원서를 써준 사람이 무죄를 선고받았고, 이런 일이 소문이 나 제게 글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정성스럽게 보이기 위해 붓으로 글을 적었고, 그러다 손에 혹이 날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났죠. 그렇게 저는 자연스레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다들 공통적으로 부모가 버리거나 학대하는 가정에서 자랐더라고요. 그때 그들과 저를 돌아보며 ‘어렸을 때부터 건강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랐다면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회가 범죄에 대해 진정한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범죄에 대한 격리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성폭행, 절도, 폭행 등을 일삼는 사람들은 ‘병’이 있는 사람입니다. 유영철, 김길태 등 여태 있었던 끔찍한 범죄자들의 가정을 짚어보면 모두 다 핍박받고 버려진 환경에서 자랐어요. 그들은 어릴 때부터 마음에 대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곪아서 큰 범죄를 만든 겁니다. 국가는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 단순히 교도소에 가둘 것이 아니라 병을 치료해야 해요. 또, 가장 우선적으로 소년원의 청소년들에 대한 진정한 관리가 이뤄져야 성인 범죄자를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심리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처벌로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시간 240시간을 받았어요. 처음에 봉사를 갔던 곳이 다운증후군 재활 센터였는데, 그분들은 많아야 35살이면 죽음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그런 상황이지만 항상 행복한 미소를 띠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제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절절하게 깨닫게 됐어요. 그 이후로도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을 만나며 제 삶을 탓했던 것이 후회됐죠.
이러한 경험과 구치소에서의 깨달음 끝에 저 자신을 알고 치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결심하게 됐고, 청소년학과가 있는 학교로 편입해 청소년지도와 상담사자격증을 취득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심리의 깊은 면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전문적인 심리학을 배울 수 있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거기서 상담심리와 임상심리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러다 왜 내 자신이 죄를 지었을까, 범죄를 짓는 사람과 짓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범죄심리학도 공부하게 됐죠.
5년 전에 ‘소년범조사참여제도’가 생겼습니다. 자아정체감이 확립되지 않은 소년수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인데요. 소년의 심리, 가정환경, 전과, 얼마나 자원을 제공받으며 커왔는지에 대해 전문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범죄심리사의 자문을 구해 판결을 내립니다. 아이들이 경찰서로 체포돼 오면, 그곳에서 저를 호출하고 제가 그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철저한 조사를 벌이죠.
아이들의 문제는 그들의 책임이 아닌 바로 ‘사회의 문제’입니다. 사회가 잘못 운영돼 소년들을 아프게 하는 것이죠. 소년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예전의 나를 만나는 듯해 많이 속상해요. 소년범을 만나 “너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기다림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저는 그 가능성을 믿습니다.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수용 받지 못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 우리 사회가 진심으로 보듬어주고 이해해주면 분명히 치유될 것이라 생각해요.

대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청소년기본법상, 만 9세에서 24세까지를 청소년으로 분류해요. 즉, 아직 대학생도 청소년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 자아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는 단계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신’ 중 오직 신체에 대한 관심만 많아요.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스트레스 관리가 몸까지 지배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데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듯, 대학생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시간을 쏟아야 해요. 저는 심리학 공부와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최근 3년간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을 겪지 않았어요. 성적, 취업, 결혼 등 휘발되는 가치는 사회가 여러분에게 심어준 고민이지, 본인의 정체성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삶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그 속을 스스로 치유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글·사진 강연희 기자 yhadell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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