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2014)』 -이시카와 이스코 / 삼천리-

   작년 12월 28일, 한·일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각국 외교부 장관 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조치로 지난달 24일에 10억 엔, 우리나라 돈으로 111억 원을 위안부 피해자에게 현금 지급하기로 했다. 이번 일을 통해 한·일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여겨 더 이상의 상호 비판을 자제하도록 결정했다. 회담에서 정해진 것처럼, 이제는 정말 위안부 문제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온 걸까?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은 이러한 물음에 관해 우리가 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병에 노출된 일본인 창기는 황국 병사의 선물로 적합하지 않다는 당시 일본의 판단으로 전쟁 지역에 파견할 젊은 여성이 필요했다고 한다. 병사 사이에 성병이 번지는 것은 군의 전력 저하와 직결되는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군에서 발생하는 성병을 막고 장병들의 성욕을 채워주기 위한 용도로 위안소를 만들어 관리했다. 또한, 전시 상황에서 절대복종해야 했던 병사들의 불만과 전쟁에 대한 혐오감이 상관이나 국가로 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위안부는 전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다. 그들은 성병의 유무와 위안부 생활을 한 기간에 따라 장교용, 하사관, 병사용으로 등급이 나뉘었다.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산 그녀들은 가슴에 일본 위안부를 상징하는 문신을 새겨야 했으며, 몸이 아프거나 생리를 하는 날에도 하루에 3-40명을 상대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성병에 걸려 쓸모가 없다고 판단된 경우에는 어딘지 모를 곳에 끌려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는데, 죽임을 당했거나 731부대의 생체실험에 쓰였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일본은 여태껏 이들이 강제연행됐고, 위안소 생활이 강제로 이뤄졌다는 것을 부정해왔다.
  사실 이는 한국인 여성에게만 해당된 일이 아니었다. 중국, 타이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주변 아시아국가의 여성도 일본군의 강압으로 위안부가 돼 참혹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한 타이완 여성은 간호사로 파견된다는 일본군의 말에 속아 인도네시아에 끌려간 후 위안부 피해자가 됐다. 몇십 년이 지난 뒤 이를 고발하는 국제 공청회의 짧은 증언 시간에서 그녀는 “오래전 겪었던 일인데도 아직까지 생생하다. 몇 분 말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치가 떨린다”라며 절규했다. 이러한 실상을 알게 된 타이완 외교부 부장은 일본과의 회담에서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일본은 전후 처리에서 청산하지 못한 부분을 해결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부터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일본의 피해보상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은 가장 고려해야 할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사죄하며 죄를 인정하는 법적 배상금을 원했지만, 일본은 마음 치유 목적의 위로금만 지급했을 뿐이다. 또한,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진정으로 사과하는 게 우선이다. 그 전에는 천억 원을 줘도 소용없다”라고 말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론도 한·일 합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닐까.
  앞에서 저자의 말을 충분히 들었다면 이제 우리가 대답해볼 차례다. 합의를 맺고 돈을 준다고 해서 과거가 잊혀지고 위안부 문제가 끝날 수 있을까? 비영리단체 ‘나비레터’의 김현선 대표는 최근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손 글씨를 디지털 폰트화 해 현수막과 로고 및 다양한 물품을 만들었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며 현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까지 그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데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그들이 진정으로 보상받을 때까지 함께 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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