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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와 잉여로운 삶
2016년 10월 16일 (일) 23:23:09 정덕현 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최근 젊은 세대에서 쓰이는 ‘잉여’라는 말은 ‘다 쓰고 난 나머지’라는 뜻으로,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이들을 낮춰 부르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의미와는 달리 이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나아가 ‘잉여롭다’는 표현에는 어딘지 여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잉여와 잉여로움, 그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는 것일까.

먼저 <쇼 미 더 머니>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요즘 청춘에게 ‘돈을 번다’는 것은 내놓고 추구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돈을 벌러 나왔다고 말하는 참가자는 생존을 위해 자극적인 랩과 상대방을 공격하는 퍼포먼스로 논란을 일으킨다. 이러한 오디션 무대는 그 음악이 생산적인가 비생산적인가를 통해 승패가 결정된다. 1등은 억 단위의 돈을 벌기도 하지만 나머지 탈락자는 잉여가 되기 때문에 순위는 그들이 잉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도 하다. 결국, 오디션은 자신이 하는 음악이 잉여가 아닌 생산적인 것임을 증명하는 잔인한 시간이자 현실의 시스템이다.

하지만 음악이란 본질적으로 ‘잉여’의 산물이다. 음악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생산성과는 상관없는 행위이고, 또 그래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물론 이 잉여적 행위가 뜻밖에 엄청난 돈을 벌어주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음악은 그저 저마다의 가치와 개성이 다양하게 있을 뿐이다. 이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스펙의 차이가 얼마나 나든 상관없이 각자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누가 정했는지도 모르는 길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들지 못하면 잉여처분을 내리고 있지 않은가. 본질은 제쳐놓고 생산성과 경쟁력이라는 심사기준으로 잉여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잉여는 어떤 기준점을 세워뒀을 때 그 자투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중심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애초에 기준과 중심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면 잉여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뀔 수 있다. 잉여가 나쁜 어감으로 쓰이는 것은 아직 기성 사회가 세워놓은 성공의 시스템과 기준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거나 무너뜨린다면 잉여란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단어가 된다.

서양 철학의 전통을 전복시킨 철학자 니체는 이데아 같은 하나의 진리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길’이 있음을 설파한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시각과 다양성을 얘기했던 것이다. 그의 관점으로 보면 길을 벗어나는 건 또 다른 길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니체에게 잉여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취해야 할 것이 된다. 즉, 모자란 것보다 넘쳐나는 잉여는 나쁜 것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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