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015)』 ― 리베카 솔닛 / 창비 ―

2010년〈뉴욕 타임즈〉에서 올해의 단어로 꼽힌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을 가리키는 합성어다. 이전까지는 이처럼 불쾌한 경험을 명시하는 단어가 없어 문제가 가시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맨스플레인이라는 말 한마디면 불필요하게 이전의 경험담을 토로하지 않아도 된다. 개인의 일로 치부되던 것이 성차로 인한 문제임을 인식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담론이 생겨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는 자신의 일화와 세계 여러 나라의 실례를 통해 사회에서 강요받는 침묵으로 어떻게 여성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지 말해준다.

사실 과거부터 여자의 존재는 쉽게 말소됐다. 1765년에 법철학자 블랙스톤이 설명한 영국 법을 보면, 결혼한 여자의 신분은 남편에게 합병됨으로써 그 법적 지위가 유예된다고 기술돼있다. 실제로 한 집안의 역사가 담긴 족보에는 아버지가 낳은 아들과 그의 손자 등 남성의 가계만이 나타날 뿐 여성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현대에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이에게 아버지의 성이 붙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혹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이전과 달리 오늘날의 여성은 하나의 주체로서 인정받고 있다며 반기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사회에는 아직까지 그들을 향해 침묵을 강요하고 자기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보일 때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관련된 예시로, 저자는 한 학교 내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하자, 대학 측에서 모든 여학생에게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말 것을 대안 방안으로 제시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이는 잠재적 피해자에게만 강간의 책임을 부과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세 명 중 한 명은 강간을 당하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이 중 88%는 원주민 정부가 자신을 고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비원주민 남성에 의해 발생한다. 이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진 강간이 상대를 지배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 원인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즉, 이 같은 폭력이 가해자의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닌 ‘남성은 여성을 통제할 수 있다’라는 잘못된 젠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임을 모든 사회구성원이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번 물꼬를 트기 시작하면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1991년 애니타 힐이라는 법학 교수가 자신의 상사이자 당시 대법관이었던 클래런스 토머스에 대한 청문회에서 그의 성희롱 사실을 폭로한 일이 있었다. 힐은 토머스에게 성적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야 했던 일을 토로했지만, 이에 수많은 남성은 오히려 그녀에게 조롱과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직장 내 성희롱을 사회에 고발한 힐의 행동은 이후 의회에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피해보상 내용이 포함된 민권법이 통과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후 1992년 선거에서 이전과 비교해 많은 수의 여성이 상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는 쾌거를 맞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투쟁의 역사를 걷는 여성 인권이 앞으로 예측 불허한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이 없을 거라 확신한다. 오늘날 ‘가정폭력’이라는 단어는 그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겨난 게 아니다. 1970-80년대 수많은 페미니즘 운동을 거쳐서 ‘아내 구타’를 대신하는 단어로 사람들에게 회자돼 이전까지 ‘교육’이라는 황당한 명분아래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남편의 폭력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사실상 아직도 가정폭력의 대책이 충분히 마련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과거처럼 남편에게 아내를 때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이를 사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되살아날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여성을 침묵과 무기력의 자리에 돌려놓으려 애쓰는 힘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혁명 이전에는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이 이 시각에도 각자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이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