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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동덕문화상 시 부문
2016년 11월 08일 (화) 14:44:11 동덕여대학보 ddpress@dongduk.ac.kr
   
  • 시 부문 당선작

염탐하다

이승아(국어국문 14)
 

북적거리는 강변에서 텐트를 치고
미처 챙기지 못한 얼음을 떠올리며, 낄낄대며
편의점을 이렇게 멀리 지어놓으면 쓰나
발 사이에 맥주를 끼고 어깨를 뒤로 쭉 젖히고
나는 그런 매끈한 것들을 보면서
수줍게 웃다가
행여 누가 있기라도
할까봐 붉어지다가
너에게 물었다 너의 보통의 주말을
자주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 음악을 하는 애,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애, 음식을 잘하는 애
우리는 강변으로 가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것들을 꺼내 바깥이 좋아
벽이 없는 곳이 좋아, 너도 그래?
이내 머릿속에 사방으로 벽들이 자라나 나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그런 사람이 거부감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수많은 방들이 떠올라
나에게 공간은 방, 너에게는
안에서 바깥으로
안에서 바깥으로
벽을 두고 이야기하는 우리
너는 검색할수록 점점 커지는 사람
나는 점점 내 손바닥도 한눈에 담을 수 없게 돼
텐트 앞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먹는, 박장대소하는
네가 겨우 겨우
보이는 것 같다가 어쩌면 그 멀다는 편의점도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너는 너무나 매끈하고 투명해
좁아지는 방 안에서 나는
책상 밑에 박혀있는 먼지 쌓인 여행 가방처럼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해
나는 자주 나가고 싶고 너는 자주 나간다고
책상에 다리를 꼬아 올린 채 글자 몇 개를 더 써보다가
먹던 사과
사과 조각들이 눈에 들어와
휴대전화를 내던졌어
여전히 너무 큰 것 같아서
부엌에 작은 칼 하나 가지러 가려고

  • 시 당선 소감

빈 문서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까마득해집니다. 하지만 좀 더 긴 시간을 까마득하게 보내야 한다고, 자주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머릿속에서 작은 생일 폭죽을 터트린 것 같았습니다. 이내 부끄러워졌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외마디 외침과 함께 당선 문자메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여운이 사라질 즈음 친구가 웃으며 제 어깨를 퍽 하고 쳤습니다. 아까 터진 폭죽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부끄러워서, 외면하려고 해도 부끄러움이 자꾸만 몸에 있는 온 틈을 비집고 나왔습니다. ‘아직 부족한데, 부족한데’ 하면서도 동시에 기뻐서 태어나서 처음 지어보는 종류의 표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폭죽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찰나니까요. 계속 쓰고 싶습니다. 더 자주 쓰고 싶고, 더 많이 쓰고 싶고, 오래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터지고 식은 이 기분이 꽤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 새하얀 빈 문서 앞에서 헤맬 땐 오늘 터진 그 폭죽을 떠올려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까마득함 속에서도 조금은 더 꾹꾹 자판을 누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쓰는 일과 만나게 해주신 여태천 선생님 늘 감사드립니다. 제가 방향을 잡는 데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김근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친절하고 따뜻하신 신용목 선생님, 자주 챙겨주시는 신철규 선생님께도 이 기회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들려주는 Y와 떠오르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손에 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요일의 동지들 고맙습니다. 오랜 친구 우와 늘 버팀목이 되어주는 서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지각인생을 사는 저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엄마와 가족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곳의 불협화음에 귀 막지 않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들을 것입니다. 지구력이 강한 사람이 될 거예요. 이 세계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을 외면하거나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시 심사평

 예상보다 많은 응모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이 흐뭇했다. 모든 응모작품이 시로서의 품질과 가치를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높 은 관심은 반가운 일이다. 다음과 같은 응모작품들에 주목했다. 「어디로 갔을까, 조약돌들은」이란 작품은 바닷가의 조약돌과 동그랗고 단단한 마음을 연결시키면서 화자의 삶이 변모되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등」은 연결이 느슨했지만 꿰맨 양말에서 어머니의 등으로 이어지는 인식의 확장이 좋았다. 「그리마」는 대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이 참신했다. 「비디오테잎」은 건조한 어조로 화자의 감정 흐름을 잘 따라가고 있는 작품이다. “셔터가 터질 때마다/ 다른 곳에 와있다”, “그런 건 사진사의 아내 답지 못하니까/ 너는 사진만 자꾸/ 찍어대니까”에서처럼 짧게 끊으면서 이어지는 문장과 호흡이 이 시를 읽는 재미다. 함께 응모한 작품에서 발견되 는 매력적인 구절에서 응모자의 언어적 감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시 전체를 관통할 만한 이미지로 이끌어가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염탐하다」는 나와 그의 관계를 안과 밖이라는 공간적 대비로 이끌어가는 게 흥미로웠다. “책상 밑에 박혀있는 먼지 쌓인 여행 가방” 같은 자신과 “너무나 매끈하고 투명”한 너의 세계가 단절되면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세계를 엿보려는 심리를 ‘염탐하다’라는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다고 하더라 도, 그 심리에 대한 진술이 조금 더 보충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함께 응모한 「5월의 옻나무」는 매력적인 언술이 돋보였다. 불을 지르겠다는 화자의 계획이 시속에 분명하게 드러날 필요는 없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숲을 다녔다”와 같은 언술과 긴밀히 연결될 필요는 있다. 「비디오테잎」 외 3편과 「염탐하다」 외 3편을 놓고 한참 망설였다. 시적 대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는 능력에 주목한 결 과 「염탐하다」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여태천(시인,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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