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하 SNS)상에서 시작된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피해자들의 증언과 함께 문학계, 미술계, 영화계 등 학계 전반으로 번지면서 성추문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이런 성추문이 불거지는 동안, 우리는 피해자의 ‘증언’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성폭력 사건들 사이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SNS에 게시된 증언에 의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등단한 문인과 미성년 작가 지망생, 큐레이터와 신인 작가 등 스승과 제자로 불릴 사이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문화계에서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폐단이다.


피해자들은 서로 몸담고 있던 문화예술 분야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갑을 관계’ 안에서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만은 같았다. 실제로, 등단을 꿈꾸던 미성년자 문학 습작생들을 대상으로 성추행?성폭행을 일삼아 온 배용제 시인만 보더라도, 과거에 “내가 문단에서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줄 아느냐. 내 말 하나면 누구 하나 매장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라는 위압적인 발언으로 학생들을 협박했다.


더불어, 배 시인을 비롯한 문단 내 가해자 대다수가 출판계에서 권위가 높은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에서 시집을 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석이나 습작생들과 함께 있을 때마다 가해자들은 다른 문지 시인들과의 친분을 대단한 것인 양 과시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이 죄의식 없이 여러 명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위 말하는 ‘문학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권력관계가 문단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을’인 신인 작가가 전시 기회를 부여하는 ‘갑’ 큐레이터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영영 그 바닥을 떠나야 한다. 이렇듯, 문화계 전반에는 권력에 의한 불합리한 일들이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특히 ‘을’이 여성일 때는 그 수위가 더 심각하다.


성추문 피해 사실이 공개되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일부는 “합의했다는 비겁한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나이 많은 내 잘못이다”라는 골자의 터무니없는 사과문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힘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악용했다. 이번 파문이 예술인의 개인적 일탈에 불과하다고 여겨서는 절대 안 된다. 이번에야말로 문화계에 공공연히 맺어진 잘못된 갑을 관계와 그것을 누려온 권력층을 동시에 뿌리 뽑을 때다.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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