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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畵-미인도취>
2016년 11월 21일 (월) 15:38:25 강연희 기자, 김진경 수습기자 yhadella@naver.com, wlsrud6843@naver.com
   
 

<畵畵-미인도취>는 그동안 시대와 세대별로 변모해왔던 ‘미인’의 기준에 대해서 한국화 전통 기법을 이용해 재해석한 전시회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난 1998년에 한국화 작가 6인이 참여했던 <畵畵(화화)>의 연장선으로, 당시 출품했던 6명의 화가를 포함한 25명의 작가가 1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 전시

각자가 생각하는 ‘미인(美人)’은 어떠한 모습인가? 우리는 그간 현대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전통적 미인부터 ‘건강미인’까지 ‘아름다움’을 둘러싼 다양한 잣대를 봐 왔다. 그러나 <畵畵-미인도취>전에서는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의 ‘미인’을 제시한다.

먼저, 전시는 지상 1층과 지하 1층으로 나눠져 관객은 각기 다른 느낌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층에서는 김현정의 ‘내숭동산’, 이동연의 ‘신 여협도’, 홍인숙의 ‘마음의 그림자’ 등 현대적인 그림이 자리한다. 이들은 한복을 입고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타거나 마음을 빼앗는 수많은 손이 여성의 머리를 헤집고, 슬픔으로 좌절해 얼굴이 일그러진 여성을 다루고 있다. 다채로운 색채와 쉽게 파악하기 힘든 형상으로 구성돼 그간 여성을 그린 어떠한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함을 준다.

한편, 지하 1층은 그보다 더욱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 우선, 재료나 기법에 있어 한국화가 가진 기존의 틀과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이이남 작가는 기존 작품을 마치 개미가 조각을 옮겨 완성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영상화했고 선무 작가는 분단의 아픔을 조각으로 파내 구현했다.

또한, 작가들은 ‘미인’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대상으로 그려냈다.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여성은 물론이고, 가족, 북한의 소녀, 본인 등 작가 개인이 지닌 미인의 관념을 그림에 반영했다. 임서령의 ‘바람불어도’는 작가 어머니의 젊은 시절과 현재가 표현됐고 다른 한 작품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작가의 상처가 담겨있다. 이외에도, 미인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통용화된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과 여성을 위해 멋진 남성이 그려진 그림 등 다양한 작품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강연희 기자 yhadella@naver.com

 

관람객에서 ‘객’만 남았던 전시회
<畵畵-미인도취>는 작가가 그려낸 ‘미인’이란 관점에 관객을 ‘도취’ 시키는 전시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전시장의 전체적인 구조가 관객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먼저, 지상 1층부터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인데도 지하에 마련된 안내 문구를 제외하면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일말의 글이나 안내판 따위가 없다. 또한, 전시가 작가의 특징에 따라 총 4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게시돼 있지 않았다. 이처럼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는다면 전문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전시된 작품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방법으로 미인을 표현했다. 그러다 보니 대중이 보편적으로 생각했던 미인도와 거리가 먼 그로테스크적인 작품이 전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해를 위한 어떠한 과정도 없이 작품을 마주한다면, 그림을 낯설고 기괴한 것으로만 정의 내리게 돼 완전한 감상이 이뤄질 수 없다.

또한, 미술관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시 기간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도슨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관람객이 해당 시간에 맞춰 방문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전시에서 유·무료의 음성 서비스를 제공하기 마련인데, 이곳은 그것조차 준비되지 않았다.

게다가 관람 과정 중간에 아트숍이 자리 잡고 있어 분위기가 더욱 산만하게 느껴진다. 이곳에는 <畵畵-미인도취>와 관련 없는 액세서리나 남미 수공예품 등이 주를 이뤘는데, 이는 전시회의 본질을 흩트려 남은 전시의 무게마저 퇴색시킨다. 또한, 조명을 이용한 설치미술은 벽간 구석에 배치돼 실제로 해당 작품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관객도 있었다. 만약, 작품성을 위해 의도된 위치였다면 적어도 관람객이 그냥 지나치지는 않게끔 화살표 등의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김진경 수습기자 wlsrud68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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