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는 일본어인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그 본래의 뜻은 ‘집 안에 틀어박혀서 취미 생활만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덕후라는 말이 쓰였을 때는 부정적인 뜻으로 통용됐다. 그들은 비주류의 것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여겨졌다. 그간 덕후라는 단어 자체에 사회적 ‘낙인’이 찍혀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사용되는 뜻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이제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됐다.

이처럼 ‘덕후’라는 단어가 새롭게 정의될 수 있었던 데는 대중매체의 역할이 컸다. 매스컴을 통해 연예인의 마니아적인 취미 생활이 노출되면서 그들도 덕후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를테면, 도라에몽 만화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배우 심형탁과 건담 프라모델 마니아로 소문난 배우 이시영이 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그동안 ‘무능력자’로 여겨졌던 덕후의 이미지는 본업과 취미 둘 다를 놓치지 않고 ‘삶을 즐기며 사는 사람’으로 탈바꿈했다.

본지가 인터뷰 한 4명의 덕후는 자신의 취미 생활을 통해 지친 일상에 위로를 받는다. 이제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지 함께 들여다보자.

 

‘애니메이션’ 덕후 김현중(20)
Q. 현중 씨를 매료시킨 분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저는 ‘애니메이션’에 흥미가 많아요. 장르와 제작사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에 관심을 두고 있죠. 또, 애니메이션의 시리즈 상품을 사기 위해 최근에는 적금도 들었어요. 현재 자취 중이라 본가에 있는 피규어와 만화책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Q. 어떤 계기로 애니메이션에 입문하셨나요
A. 어렸을 때부터 영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제게, 친구가 <은혼>이라는 작품을 소개해줬어요. 채도 높은 색감으로 표현된 점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죠. 그 이후로도 종종 애니메이션을 찾아봤는데, 어느 날은 스토리에 빠져들어 밤을 새우기도 했어요. 결국, 엔딩을 보고 나서도 여운이 남아 <은혼>의 만화책 버전을 사서 읽었습니다. 나중에는 인터넷을 통해 주인공 캐릭터의 피규어도 하나둘씩 장만했죠. 그렇게 저는 애니메이션 덕후에 발을 디뎠어요.

Q. 자신만의 애니메이션 사랑법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일본어를 한글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만화에 빠지기 이전에는 영어 공부만 해왔는데, 지금은 일본어 단어를 암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그리기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의 캐릭터를 그리면 마치 그 인물과 소통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캐릭터 피규어를 모으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게 작품을 더 성실하게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애니메이션 덕후로써 특별히 추천하는 작품이 있나요
A. 애니메이션 제작사 ‘본즈’의 <강철의 연금술사>요. 이 작품의 특징은 애니메이션이 단순히 읽고 즐기는 개념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진리란 무엇인가’하고 되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명성이 회자되고 있죠. 또, 등장하는 대사가 정말 주옥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선 영웅은 날개를 퍼덕이며 땅으로 추락한다”라는 말이에요. 여러분도 꼭 한 번쯤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인디밴드’ 덕후 한지윤(20)
Q: 지윤 씨가 빠져있는 인디밴드를 소개해주세요
A: 저는 4인조 어쿠스틱 밴드인 ‘전태익밴드’를 사랑해요. 주로 홍대에서 활동하고 여기저기 행사도 많이 다니는 그룹이죠. 작년 7월 31일에 결성돼 경력은 짧지만, 각 멤버가 오랫동안 음악을 했기 때문에 실력은 굉장히 뛰어나요! 특히 버스킹은 홍대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잘한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Q: 전태익밴드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노래도 좋지만 특히 가사가 정말 좋아요. 다른 가수의 곡과는 달리 현실적이라 공감이 잘 되거든요. 대표적으로 ‘슬럼프’라는 곡이 있어요. 노래 내내 ‘많이 힘들지?’, ‘힘을 내’라는 진부한 얘기보다는 담담하게 슬럼프에 빠진 모습을 담아낸 곡이죠. ‘오늘은 일어나기 싫다. 5분만 더 자면 좋겠는데’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데, 이 곡을 들으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위로가 많이 돼요. 이 외에, 공연을 재밌게 하는 것도 매력이에요. 다양한 곡을 연주할 뿐만 아니라 매번 상황에 맞춰 애드립도 하기 때문에 자주 공연을 보러 가죠.

Q: 전태익밴드와 함께 하는 지윤 씨의 하루가 어떤지 궁금해요
A: 아침에 들리는 알람 소리가 전태익밴드 노래에요. 그리고 집에서 나와 이동할 때마다 그들의 음악를 듣죠. 갑자기 홍대나 신촌에서 길거리 공연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페이스북 페이지의 관련 공지도 자주 확인해요. 전태익 밴드의 공연이 있는 날은 항상 보러 가고 매일 밤 밴드 멤버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잠자리에 들어요.

Q: 본인이 생각하는 ‘덕후’ 활동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A: 힘든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전태익밴드의 노래를 듣고 그들의 무대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날리거든요. 또, 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알아가고 즐기다 보면, 현실을 열심히 살아갈 만한 에너지가 생겨요. 하지만 그러한 맥락에서 ‘덕후’ 활동이 과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일상적인 삶을 등한시하고 ‘현실도피’하게 되거든요.



‘화장품’ 덕후 강민지(20)
Q: 민지 씨는 어떤 분야의 ‘덕후’인가요?
A: 저는 화장품을 사랑하는 ‘화장품 덕후’예요. 흔히 ‘코덕(코스메틱 덕후)’이라고 부르죠. 제 관심은 기초 제품, 파운데이션, 립 제품 등 종류나 브랜드를 가리지 않아요. 제게 잘 맞는다면 아무리 큰돈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죠.

Q: 특히 어떤 종류를 좋아해요?
A: 립 제품, 그중에서도 ‘핑크색 틴트’요! 남들은 다 똑같아 보인다고 하지만, 제 눈에는 색상, 질감, 패키지에서 각각 차이를 보이죠. 주로 네이버 블로그나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화장품 정보를 얻는데,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마다 흥분돼요! 저에게는 무엇보다 신나는 순간이죠. 그리고 조금 특이하지만, 선크림을 모으는 것도 좋아해요. 선크림은 하루도 빠짐없이 발라야 하는 것인 만큼, 꼼꼼하게 알아보려고 합니다. 자외선 차단 지수는 물론이고, 이후 메이크업이 밀리지 않는지, 백탁 현상은 없는지, 트러블을 유발하지 않는지 등 기준을 세워 사다 보니 벌써 10개 넘게 모았네요.

Q: 어떤 계기로 화장품에 빠지게 됐어요?
A: 사랑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웃음). 저 자신을 예쁘게 꾸미려다 보니 자연스레 화장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장비와 메이크업 기술을 공부하는 것도 취미가 됐어요. 이것저것 검색해 보고, 제 얼굴에 바르는 노력을 하다 보니 만족감이 굉장히 커지더라고요. 요즘은 혼자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이나 SNS 계정을 통해 제가 아는 메이크업 정보를 전수하고 있죠.

Q: 화장품은 민지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유명한 셰프인 최현석 씨가 “덕질은 내가 사는 인생에 양념이 돼 인생을 맛있게 해줍니다”라는 말을 한 적 있어요. 즉, ‘덕후’가 될 만큼 무언가 사랑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은 삶에 활력소가 돼 준다는 거죠. 저에게는 화장품이 그래요. 취직을 하고 나서도 돈을 버는 데에 ‘미친 듯이 좋아하는’ 것을 살 수 있다는 계기가 있다면 좀 더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화장품은 제 삶 전반적으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될 거예요.



‘감자튀김’ 덕후 이신의(27)
Q: 어떤 계기로 감자튀김에 빠지게 됐나요?
A: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가 감자튀김을 만들어 주신 게 처음이었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때부터 조금씩 먹기 시작해 지금은 감자튀김 없이는 살 수 없죠.

Q: 감자튀김 사랑으로 생겼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A: 제가 감자튀김을 좋아하는 건 제 지인이면 다들 알거든요. 그래서 감자튀김을 볼 때마다 제 생각이 난다며 사진을 보내주는 친구들도 있어요. 어렸을 때 한번은 엄마가 원 없이 먹으라며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만 여러 개 시켜주셨는데, 먹다가 입천장이 까진 기억도 나네요. 또,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었을 때 독일인 친구가 저를 위해 감자튀김을 1kg나 만들어 주기도 했어요.

Q: 신의 씨가 특별히 좋아하는 감자튀김 종류가 있나요?
A: 여태까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감자튀김을 먹어봤는데, 모두 다 제 취향에 맞았어요.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감자튀김 전문점이 몇 개 생겼던데, 저는 경복궁역 통인시장에 있는 ‘열정감자’가 가장 맛있는 것 같아요. 소스를 여러 개 고를 수 있고 튀김 종류도 다양하거든요.

Q: 얼마나 자주 감자튀김을 먹곤 하나요?
A: 사실 어제도, 오늘도 먹었어요. 엄마가 튀김이 몸에 안 좋다며 못 먹게 하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다른 감자 요리로 대신하죠.

 

글.사진 강연희 기자 yhadella@naver.com
김규희 수습기자 kbie1706@naver.com
김진경 수습기자 wlsrud68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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