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 정부가 기존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의 지원 연령을 만 30세에서 35세로 연장하기로 결정해, 이에 많은 청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워홀이란 청년이 우리나라와 협정을 맺은 국가에 한해 1년간 체류하면서 합법적으로 임시 취업을 할 수 있는 제도다. 이렇다 보니,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참가자(이하 워홀러)는 타국을 관광하면서 여행 경비도 벌 수 있다는 점에 젊은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꿈꾸고는 한다.
특히, 호주 워홀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동시에 한국보다 2.5배 높은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더 많은 인원이 몰린다. 게다가, 호주는 영어권 국가 중 인원수를 제한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다. 독일과 덴마크도 인원수 제한은 없지만, 영어권이 아니다 보니 인기는 낮은 편이고 캐나다,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은 영어권이지만 참가 인원을 연간 400-4,000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비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외교부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조사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연평균 4만 명의 한국 청년이 워홀에 참여하는데, 그중 3만 명이 호주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호주 워홀을 경험하고 온 사람들 중 대부분이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이유는 호주가 젊은 여행자를 위한 기회의 나라인 듯하지만, 사실은 외국인의 부당한 노동에도 아무런 개선이 없는 무법 도시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정의당 청년위원회가 전·현직 호주 워홀러 61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를 했을 때, 이 가운데 72.1%인 44명이 최저시급 위반, 임금체불, 부당해고 등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반면, 호주 외의 국가에서 워홀을 경험한 사람 39명 중 최저시급 위반을 겪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5.1%로, 단 두 명뿐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호주 워홀에 심각한 부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호주에서 한국인 워홀러가 겪는 어려움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 교민’의 횡포다. 앞서 언급한 조사의 호주 워홀러 61명 중 한국 교민 업소에서 일한 사람은 35명이다. 그리고 이들 중 80%가 최저시급 미만의 임금을 받고 일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들 업소는 당연히 지켜야할 최저임금 제도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지인 업소에서 일한 이들 중에서도 그 이하의 급여를 받은 자가 있지만, 그 비율은 25.8%에 그친다. 워홀 비자로 입국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나라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호주에서 한국 워홀러들은 오히려 같은 나라 사람에 의해 법의 밖에서 처량한 노동을 하고 있다.
자세한 상황을 살펴보자면, 우선 워홀러를 핍박하는 교민 대부분은 노동자의 임금을 ‘캐쉬잡(cash job)’ 형태로 지급한다. 캐쉬잡이란 고용자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현금으로 지불함으로써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꼼수가 담긴 불법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용역을 고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고용된 노동자는 불법적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 보니, 주휴·야근 수당은 물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호주 정부가 워홀러가 번 소득의 1 호주달러부터 예외 없이 32.5%의 세를 걷겠다고 발표해 청년들은 더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됐다. 그동안 워홀러는 연간 18,200 호주달러, 우리 돈으로 약 1,600만 원의 소득까지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워홀러가 감당하기 어려운 소득세를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현금 급여를 주는 곳을 찾게 됐다. 이로써 오히려 캐쉬잡 행태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교민 업소에서 ‘세컨드 비자’를 손에 쥐고 워홀러를 노예처럼 부리는 문제도 있다. 워홀러가 호주에 1년간 더 머무르기 위해서는 세컨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88일간 농어촌 농장 혹은 육가공 공장에서 일한 후에 받을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이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88일 동안 일했다는 인증서가 필요한데, 문제는 이 인증서 부여의 권한이 고용주에게 있어 워홀러는 완벽히 ‘을’의 위치에 놓인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부당 노동을 겪더라도 고용주에게 항의할 수가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호주 정부 노사문제 중재기관 FWO의 책임자인 나탈리 제임스는 워홀 관련 보고서에서 “세컨드 비자를 꼭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몇몇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최저 기준에도 못 미치는 조건에서 일하기도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한국인 고용주는 ‘디포짓(보증금)’이라며 임금을 묶어두는 관행을 일삼는다. 외교부 산하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가 주관하는 서포터 그룹의 일원인 박중언 씨는 호주에서 워홀을 했을 당시, 교민이 운영하는 청소업체에서 5주를 일했는데도 1주치 임금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일을 그만두기 위해 1주일 전에 미리 말을 했을 뿐인데, 고용자는 2주 전부터 알리지 않았다며 2주치의 돈을 떼어갔다. 게다가, 그 교민은 “이곳에서는 2주 동안 일한 급여를 디포짓으로 내놓는 것이 당연한 규칙이다”라는 뻔뻔한 말을 하며 2주치의 임금을 더 가져갔다. 물론, 이 모든 행위에는 그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 이에 대해 박 씨는 “호주는 교민 사회가 굉장히 좁다. 부당하다며 문제를 일으켰다가는 소문이 퍼져 다시는 일을 구할 수 없어 나 같은 학생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떠나는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미 워홀러의 노동 착취 문제는 그 심각성이 몇 차례 부각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호주에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먼저 한국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요즘에는 외교부가 전국 대학을 순회하며 워홀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한다. 그런데 언론시사지 ‘시사인’이 외교부의 설명회 내용을 분석해보니, 외교부가 가장 강조해서 설명하는 부분은 ‘범죄’나 ‘안전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호주에서 워홀러 사망 사고가 몇 차례 발생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눈에 띄는 사고에만 신경을 쓰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불법 노동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상세히 들려주지 않았다. 고용계약서를 쓰지 않는 사업장에서 일하지 말라는 당연한 권고는 하면서도, 한국 교민 사업장에서는 고용계약서를 구경하기도 힘들다는 현실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외교부의 입장에서는 재외 국민의 살인, 강도, 성폭력 등 ‘고강도 위험’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통계 역시 그런 사건·사고에 한정돼 집계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교민의 불법 노동시장 문제는 ‘저강도 위험’으로 분류돼 데이터로 잡히지도 않는다. 실제로, 2015년에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워홀러 노동 피해사례 자료가 있는지 외교부에 문의하자, 외교부는 “임금 체불 등의 작은 사안에 대해서는 별도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라고 무심한 답변을 내뱉었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에 있는 호주 전문 유학원도 부당 노동이 발생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예비 워홀러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직접 정보를 구해나가는 편인데, 이때 유학원의 가짜 워홀 정보에 속기 쉽다. 예컨대, 이들은 영어를 못해도 어학연수를 받으며 바로 출근이 가능한 일자리가 있다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교민 브로커가 있을 확률이 높다. 이처럼 유학원에서 과장된 정보들을 퍼트리는 이유는 어학 수업과 현지 취업 알선을 묶은 패키지 상품을 팔아 교민 업소에서 일할 워홀러를 구하기 위함이다. 즉, 유학원 사이트를 믿고 호주로 간 워홀러 중 상당수가 교민 사업장에서 일자리를 잡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호주한인타일협회’의 신현돈 총무는 “유학원의 과장 광고만 믿고 가서는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특히, 워홀러 중에서도 학력과 자산이 부족한 이들은 불법 노동시장으로 가기가 쉽다. 유학원은 워홀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교민 브로커에 넘겨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는 절대 해주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교민 브로커나 악덕 고용주 교민에게 워홀러의 존재 의미는 ‘안전한 저임금 노동력’이다. 현지 노동법을 근거로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워홀러 대부분은 1년 이내로 머물렀다가 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교민들은 워홀러가 법적 절차가 길어질수록 시간적 여유가 없어 감당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더 강경하게 불법을 일삼는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청년들이 이 같은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을 때,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에는 예비 워홀러가 철저한 사전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외교부의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와 불법노동행위에 대한 법률 상담 등을 해주는 주호주대사관의 ‘Hello 워홀센터’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두 기관의 역할이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호주에 있는 워홀러를 직접적으로 도와야 할 Hello 워홀센터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5년에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청년·학생위원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해외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아무런 조치 없이 참고 넘어간다’라고 답했다. 반면, ‘대사관 또는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응답은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센터 사이트에 접속해 보면 해외에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도움에 대한 ‘영사서비스 지원범위’을 볼 수 있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는 ‘사건사고 발생 시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은 알려주면서도, ‘사건 사고와 관련한 상대방과의 교섭’을 도와주는 것은 불가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긴급한 일이 있을 때 연락을 주면 정보를 주겠다’라는 말에서 정부가 워홀러들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보다는 단지 정보 제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범죄 징후가 없는 실종자는 소재 파악하지 않는다’, ‘범죄 수사 등이 일어났을 때 경찰 업무를 해줄 수는 없다’ 등을 통해 도움의 범위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워홀러가 호주에서 부당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개선해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닌, 실제 호주 교민 사회가 어떤 곳인지 문제점을 파악하는 행동력이 필요해 보인다. 임기 기간 내내 해외 순방을 다닌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고질적인 청년실업 문제의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자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꿈을 찾아 호주로 간 청년들이 지금 그곳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가. 이제는 그들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나서야 할 때다.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김규희 수습기자 kbie17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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