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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P의 허와 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2002)』 - 유시민 / 돌베개 -
2016년 12월 05일 (월) 16:24:54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누구나 알다시피 ‘부자(富者)’란 돈이 많은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부국(富國)이 ‘돈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명쾌한 뜻풀이가 아니다. 돈이 많다고 부국이 될 수 있다면, 가난하게 살 나라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종이공장과 인쇄소만 있다면 어느 나라든 중앙은행에서 돈을 무한정으로 찍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나라를 부국이라고 봐야 할까? 이에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의 저자는 현대 부국의 기준과 그것을 측정하는 지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776년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의 수준을 재는 지표로, ‘국민총생산(이하 GNP)’이라고 불리는 개념을 창안해냈다. GNP는 국민이 1년 동안 생산한 최종생산물의 가치를 모두 더한 것을 의미한다. 우선, 스미스는 부유한 국가란 ‘국민이 생필품과 편의품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는 나라’라고 정의했다. 이때의 ‘공급’은 복지와 연관돼 있다. 사실상 충분한 복지는 국민의 노동에 의해 많은 재화가 생산되면서 나라에 활발한 소비가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즉, 개개인이 일정 기간 얼마나 많은 소득을 만들어냈느냐가 국가의 복지 수준을 결정함으로, 부유함을 판단한다는 기준은 국민의 총생산량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스미스의 주장에 따라 오늘날 부국은 ‘국민이 높은 복지 수준을 누리는 나라’라고 정의되며 이를 재는 척도 중 하나로, 연간 국민총생산을 국민의 수로 나눈 값인 ‘1인당 GNP’를 쓰게 됐다. 하지만 GNP는 그 나라의 국민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모두 총생산량에 포함하다 보니, 세계화와 해외진출이 급속히 진행될수록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
이에 1971년 경제학자 쿠즈네츠가 GNP를 보완해, 국내에 상주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국내총생산(이하 GDP)’을 만들었다. 물론, ‘1인당 GDP’도 1인당 GNP와 마찬가지로 나라별 국민의 생산력을 비교할 때 탁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GDP는 8조 5,100억 달러이고 스위스의 GDP는 174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1인당 GDP를 기준으로 보면 각각 45,845달러와 83,922달러로 스위스가 미국을 가볍게 앞지른다. 이 결과만 보더라도 어느 나라의 복지가 좋을지 정도는 금세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GNP와 GDP가 국민의 복지 수준을 재는 데 매우 유용한 것은 맞지만, 총생산 지표의 시초인 GNP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문제는, 국민총생산이 ‘시장에서 거래된’ 최종생산물의 가치만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생산물은 자신이 직접 만들고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가사노동 또는 DIY(Do It Yourself) 생산품이다. 어떤 맞벌이 부부가 파출부를 쓰면 그 월급만큼 국민총생산이 늘어나겠지만, 직접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면 지표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두 번째는 ‘합법적으로 거래된’ 상품과 서비스만이 GNP로 측정된다는 점이다. 보통은 불법적인 거래라고 하면 매춘과 마약 판매 등을 생각하겠지만, 세무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수임료를 챙기는 변호사의 법률서비스,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는 포장마차의 계산 등 실생활에서 흔히 이뤄지는 거래도 불법에 속해 정부의 총생산 통계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GNP는 생산품의 가치만을 고려할 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 등의 부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일례로, 자동차가 많아지면 배기가스로 인해 도시의 공기가 더러워지지만, 주유소는 물론 세탁소와 이비인후과에는 손님이 늘어난다. 이는 분명 국민총생산을 높인 것이되, 국민의 복지가 높아졌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결과다.
이처럼, GNP는 나라의 진정한 부유함이라고 할 수 있는 복지를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표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개선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GNP와 GDP는 앞으로도 계속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저자는 독자에게 GNP의 불완전함을 인지하고 그 결과를 항상 재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박정희 정권을 통해 1972년 396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1인당 GNP는 1995년 1만 달러까지 올라갔다며 GNP의 결과가 종교처럼 숭배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나무는 베어졌고 개펄과 습지는 메워졌다. 이것이 진정한 부국일까? 우리는 GNP의 의미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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