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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가 되어가는 광화문 광장의 추억
2016년 12월 05일 (월) 21:01:37 정덕현 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1987년 6월, 광화문 광장에서는 독재 타도를 외치던 학생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전경 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당시 광장에는 대중이 부르던 ‘님을 위한 행진곡’과 ‘천리길’, ‘광야에서’ 등의 노래가 산발적으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군홧발 폭력 앞에 발생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축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뜨거웠던 1987년의 광화문은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세워 민주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과거 80년대 민주화 시절에 공포의 대상이었던 광장과 밀실이 2002년에 들어서면서 축제를 벌이는 공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붉은색 콤플렉스는 붉은 악마로 가득 메워진 광화문 광장을 통해 극복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는 함성 속에는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졌다. 이처럼 월드컵은 스포츠 제전의 의미를 넘어서 구시대의 콤플렉스를 풀어헤치는 의미를 더해줬다.

시간이 흘러 2016년 광화문 광장에는 가수 이승환이 무대에 올랐다. 영원한 ‘어린 왕자’로 기억되던 그가 광화문 광장의 무대에 서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게 된 것은 시대의 역행을 참지 못한 까닭이다. 이후 이어진 공연으로 전인권이 부르는 ‘애국가’에 모두가 엄숙해졌고 양희은의 ‘상록수’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처럼 2016년의 광화문 광장은 과거 1987년도와 2002년의 모습이 겹쳐져 있는 듯한 풍경을 이뤘다. 이곳에 무려 190만 명이 모였지만 폭력사건은 없었고 오히려 전경의 등을 두드려주는 시민의 성숙한 문화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 같은 새로운 집회문화는 투쟁이 아닌 ‘공감’과 ‘소통’이 더 큰 목소리로 멀리까지 퍼져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아울러 세계의 각 언론도 ‘사상 최대 규모로 평화집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라며 기꺼이 찬사를 보내줬다. 또한, 촛불집회 시위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한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우리나라의 신인도가 추락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국민도 불신하는 대통령을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로 인한 국가적 피해 비용이 천문학적인 수치에 달한다는 말까지 오갔다. 이처럼 암울한 상황 속에서 떨어진 국격을 바로 세운 주체는 다름 아닌 집회에 나선 국민이었다.

현재 광화문 광장은 이 나라를 지금껏 움직여온 장본인이 권력자가 아닌 국민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상징이 됐다. 또한,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어 아무리 정부라 하더라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마치 희망 없는 시대에 희망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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