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21 목 11:16
> 뉴스 > 문화 > 정덕현의 프리즘
     
강연의 시대, 타인의 말에만 귀 기울일 게 아니라
2017년 03월 03일 (금) 14:37:04 정덕현 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JTBC <말하는 대로>는 길거리에서 이른바 ‘강연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본 프로그램은 시작될 당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시청자의 관심이 급증했고 이른바 시국 버스킹으로 불리게 됐다. 다채로운 인물군이 해주는 사이다 강연에 대중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강연은 방송의 스테디셀러였다. 아침방송에는 연사를 모셔와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 열렸고 간간히 도올 김용옥 선생 같은 지식인의 강의는 시청자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강연 방식이 교양적인 틀에서 벗어나 예능화되는 움직임을 보이며 소재도 철학과 자기계발 등에서 실용적인 전문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이와 같이 강연의 시대라고도 부를 수 있는 작금의 상황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는 건 역시 ‘불안감’이다. 팍팍해지는 삶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대중은 무언가 기댈 것을 찾게 된다. 최근 들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같은 이유다. 그저 눈앞의 현실에 대처하는 처세가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대중이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강연이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무질서한 상황에 맥락을 만들고 논리라는 이름의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물론 이는 누구에게나 다 진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강연자가 드러내 주는 하나의 맥락은 적어도 많은 이에게 무언가 기댈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별이 무수히 흩어져 있을 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강연자는 그사이에 금을 그어 하나의 별자리를 보여줌으로써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은 어쩌면 강연이 가진 가장 핵심적인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위안이나 불안을 떨쳐주는 말이 현실화되지 않을 때는 공허한 일이 될 위험을 지닌다. 즉, 강연을 볼 때는 시원했는데 그것을 벗어나면 더 답답해지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고구마’ 시국으로 인해 일시적이라 해도 속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주는 사이다 강연에 대한 요구가 더 커졌다. 하지만 삶과 현실의 문제는 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또한, 인생에서의 맥락 역시 스스로 찾아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일은 강연을 듣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사이다는 시원하긴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더욱 갈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 동덕여대학보(http://ddpress.dongduk.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02748)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 13길 60(하월곡동 23-1) | Tel 02-940-4241~4242
발행인 : 김낙훈 | 편집인 : 이지은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지은
Copyright 2009 동덕여대학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dpress.dongd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