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 사태를 풍자하는 ‘곧, BYE 展’전이 지난 1월 20일부터 31일까지 국회에서 열렸다. 이 전시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작품은 단연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일 것이다. 이 작품은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과 나체를 합성해 풍자함으로써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에 해당 그림을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는 작품을 훼손했고 결국 본 작품은 전시가 끝나기 전에 철거됐다.
 

메시지 없는 풍자는 불편할 뿐

  최근 나체로 잠든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표현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이 화제다. 이 작품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지만, 여전히 풍자로 넘어가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우선, 여성인 박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굳이 나체화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더러운 잠>은 그다지 좋은 풍자가 아니다. 풍자란 본래 약한 자가 자신보다 강한 자를 조롱하는 힘의 격차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성을 이용해 풍자할 때도 마찬가지로 성별에 따른 힘의 차이에 유의해야 한다. 예술사에서 여성의 누드는 에로틱한 엿보기의 대상이지만, 남성 누드는 힘과 비장함, 인간적인 위엄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남성 권력자를 누드화로 패러디하면 남을 웃길 수 있지만, 여성 권력자를 성적으로 풍자화했을 때는 참신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법이다. 성희롱 논란이나 여성 혐오 논란이 일어나는 것도 이러한 원인에서다.


  게다가, 이 작품은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구영 작가는 원작에서 구도만 가져왔을 뿐, <더러운 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박 대통령의 몸 부분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 나오는 여신의 몸을 빌려왔다.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에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시선을 그대로 되돌려주듯, 당당한 눈빛의 매춘부가 등장한다. 이는 <잠자는 비너스>처럼 고상한 여신의 누드화만 넘쳐났던 당시 사회에 파격적 충격을 줬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올랭피아>에 내포된 의의가 <더러운 잠>이 비판하고자 하는 박 대통령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데 있다. 결국, 작가는 <올랭피아>에 대한 이해와 재해석 없이, 관련 없는 여신의 누드에만 초점을 맞춰 두 그림을 합성하는 허술한 패러디를 한 셈이다.


  물론, 어떻다고 한들 <더러운 잠>은 표현의 자유라는 대원칙 아래서 보호받아야 할 작품 중 하나다. 그러나 ‘누드’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이용해 두서없는 비판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팝아티스트 이하 작가는 예술적 풍자에 대해 “작가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작업해야 한다. 아울러 정확한 메시지와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메시지 없는 풍자는 일반 대중 수용자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블랙리스트는 NO, 누드화 검열은 YES?

  최근 <더러운 잠>에 대한 찬반 논란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 여론조사기간에서 ‘박근혜 풍자 누드화가 적절한가’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43.8%가 ‘문제없다’라고 응답했고 42.7%가 ‘부적절하다’라고 답변했다. 이 그림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일부는 <더러운 잠>이 도 넘은 풍자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그림의 뜻을 해석하지 않고 판단한 억측일 뿐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22조 1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이때 말하는 자유에는 기준이나 마지노선이 없다. 즉, 예술에서만큼은 ‘성역 없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예컨대, 시인 임정희 씨는 <더러운 잠>을 향한 비판에 대해 “표현의 자유는 우리나라 헌법뿐 아니라 세계 인권에도 명기 돼 있는 것으로, 모든 인간에게 가장 절실하며 보편적인 권리다”라며 자유의 초국가적인 중요성을 피력했다.
 

  혹자는 굳이 나체를 그림에 등장시켜야 했냐며 반문한다. 그러나 박근혜의 누드화는 작품에 있어서 꼭 필요했다. 작가는 박근혜의 얼굴을 <잠자는 비너스>에 나오는 여신의 나체와 합성함으로써 대통령과 여신을 대응시켰다. 권력과 돈, 명예로 인해 신처럼 높아 보이는 것이 대통령의 겉모습이지만, 그 실상이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작품에는 발가벗겨진 나체가 빠져서는 안 됐다.


  물론, 여성의 나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해당 작품이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성’이 아니라 ‘대통령’을 비하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여자의 몸이 작품에 쓰인다고 해서 여자를 비하한다고 한다면, 여성의 나체가 나오는 동시에 명화로 인정받는 <비너스의 탄생>, <올랭피아>도 손가락질받아야 마땅하다.


  본래 <더러운 잠> 작품이 전시된 <곧, BYE 展>은 그동안 정부의 블랙리스트로 인해 억압됐던 작가의 표현을 보장하기 위해 기획됐다. 그런데 이곳에서 또다시 그림이 제재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예술을 막은 정부를 비판하면서 자신도 <더러운 잠>을 검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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