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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규제의 역설
2017년 03월 03일 (금) 15:46:46 이현우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ddpress@dongduk.ac.kr

착한 규제의 역설

  최근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하 전안법)이 논란이다. 전안법은 기존의 「전기용품안전관리법」과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을 통합해 전기용품 및 공산품의 안전관리제도를 종합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전기용품과 생활용품 등의 위해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본래 취지였지만, 현재 이 규제는 국민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원래 이 법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후, 공산품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재작년 12월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2016년 갤럭시 노트7 발화사태를 겪으면서 결국 법안은 규제의 타당성이 제대로 심사되지도 않은 채 제도화됐다. 규제도입의 필요성과 타당성이 주목받았지만, 적절성에 대한 검토는 비교적 이뤄지지 않았으며 동 관련 이해당사자에 대한 공청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모든 규제법안에 부수돼야 할 규제영향분석도 진행되지 못했다. 또한, 국회의 검토보고서에도 규제의 효과에 대한 분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진행 과정에서 몇몇 의문점이 발견되는 본 법안에 대한 문제 제기로는 먼저 규제대상이 광범위하다는 데 있다. 동법은 현재의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을 온·오프라인으로 생산·판매하는 모든 집단뿐만 아니라 이들의 거래시장에 진입하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전기용품과 생활용품이 안전해야 한다는 명제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과 상품, 제품은 각자의 위해성이 모두 다르며, 소비자의 사용과 보관 등의 취급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식중독이 우려된다고 거래되는 모든 식품에 대해 안전관리를 강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뿐만 아니라, 현장과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로 도입된 것도 문제다. 유행에 민감한 생활용품과 인터넷 거래의 활성화로 소품종 맞춤 생산 또는 거래가 보편화 된 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통상 생활용품의 제품 출시과정은 창작과정에서 무수한 수정이 이뤄지는데, 이렇게 최종 완성된 물품을 다시 인증받기 위해 분해하는 모순도 발생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로 인해 소비자의 안전보장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아울러 생산자에 인증비용을 유발하는 이러한 규제는 상품가격을 올릴 것이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는 인증되지 않은 상품을 선택할 텐데 이런 상품은 더 안전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은 저소득의 어려운 소비자에게 주로 해당된다는 문제를 지닌다.


  또한, 이를 관리해야 할 정부는 법에 대한 집행능력이 낮다. 이 같은 규제가 적용되면 전기용품과 생활용품에 대한 인증, 서류보관, 인터넷 정보게시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거래되는 물품의 규모와 향후 새롭게 출시될 제품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정부가 이들 모두가 법률을 준수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간헐적으로 단속이 이뤄지는 시기에 단속된 업체만이 벌금 또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런 상황에서 동법의 적용은 판매자와 생산자를 잠재적인 규제위반자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규제적용이 오히려 규제 자체에 대한 신뢰를 상실시키면서, 원래 의도했던 소비자의 안전에는 기여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황당한 규제 법안이 도입된 것일까. ‘규제는 사고를 먹고 자란다’라는 규제연구 전문가 사이에 널리 회자되는 말이 있다. 사고가 발생하고 언론에 확산되면, 정부와 국회는 문제 해결에 성급하게 나서고 단기간에 규제를 설계해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상당수가 나중에 불합리한 것으로 판정이 되기 일쑤다. 규제설계와 심의과정 속의 합리성, 비용 부분에 대한 검토 등이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규범론적 요구에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규제의 적절성과 작동 가능성보다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명분이 강조된 결과다. 마찬가지로 전안법 역시 옥시 사태와 갤럭시 발화사태 등으로 규제도입의 필요성과 타당성은 부각된 반면, 적절성에 대한 검토는 비교적 이뤄지지 못한 채 서둘러 도입됐다.


  사회문제가 있다는 것이 규제생성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규제를 꼼꼼히 살피자는 제안을 안전문제를 저버리는 행위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규제생성을 요구하는 언론과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고 모두 좋은 것도 아니다. 나아가 이번 기회를 통해 정부와 국회는 사고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통해 적절한 방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는 정의로움과 착함을 말로만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이들의 착하기 경쟁에 국민은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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