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사자(이동욱)의 동기생으로 출연해, 시청자의 웃음을 자아내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지난해 <또 오해영>에서도 주인공(에릭)의 녹음실 직원 ‘기태’로 활약하면서 시청자에게 한 차례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많아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배우 김기두(35)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또 오해영>에서는 ‘녹음실 직원 기태’ 역을, <도깨비>에서는 ‘저승사자의 동기’ 역을 맡았던 배우 김기두입니다. 97년에 데뷔해서 벌써 20년차 배우에요. 단역부터 조연, 청소년 드라마 주인공까지 다양한 역할을 했죠.

최근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시나요
  아내와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여성분이 저를 보고 화들짝 놀라더라고요. 제가 그때 강아지를 데리고 가고 있어서 그것 때문에 놀란 줄 알았는데, 배우 김기두를 처음으로 알아봐주신 거였죠. 제가 배우로 사랑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 지금도 저를 알아봐주시는 분이 있을 때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여동생이 제게 연예인을 하면 돈을 많이 벌지 않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그 말을 듣고는 정말 솔깃해졌죠. 그래서 원래 꿈이 만화가였는데도 아역 배우를 시작으로 연기에 뛰어들었어요. 처음에는 단역을 전전하다가 2002년에는 ebs 청소년 드라마 <학교 이야기>의 주인공을 맡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그 드라마를 하면서 한 달에 160만 원을 벌었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적은 돈은 아니라서 집안 빚을 갚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됐죠.
게다가, 연기를 하면 할수록 재밌어서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드라마에 출연하다 보니 영상 편집에도 관심이 생겨서 방송연예과로 진학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편집을 공부하면 마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연기에도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배우님의 대학 생활이 궁금해요
  대학생 시절, 그 누구보다 열정이 가득했다고 자부해요.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어렵게 얻은 대학 생활이었거든요.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어머니가 지인 분들한테서 조금씩 빌려왔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노력해주셨는데도 등록금을 납입해야 하는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대학교에서 기다려주기까지 했죠. 그렇게 힘들게 납부를 하고 나니까 ‘비록 내가 등록금은 마지막으로 냈지만, 나중에는 꼭 1등으로 졸업하는 학생이 되자’라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사정상 휴학을 해야 했을 때도 학교에 나가서 연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교수님께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사실 학점이 들어간 문제라서 원래는 안 되는 건데, 이례적으로 교수님이 허락해주셨죠. 동기들은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더 열심히 공연에 임했다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대학을 다녀서 그런지 졸업할 때는 결국 1등이었고요.

배우님 이름 앞에 붙는 ‘신스틸러’라는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신스틸러라는 단어 자체는 좋은 말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떤 장면을 가로챈다는 의미니까요. 작품은 여러 장면을 통해 완성되는 건데, 제가 특정 장면에서 조연 배우임에도 너무 튀어버리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장면을 잘 살려서 작품에 도움이 됐다고 하면, 모순적이지만 그만큼 감사한 수식어도 없죠. 현재까지는 드라마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배우님만의 연기 철학이 있다면요
  저는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저만의 철칙이 있어요. 그건 바로 그 인물이 할 법한 말만 애드리브로 한다는 거죠.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배역을 깊이 이해한 상태여야 합니다. 어중간하게 역할을 이해하고선, 단지 재밌게 보이려는 욕심 때문에 애드리브를 하면 시청자는 거부감이 들 거예요.
또한, 대사는 작가님이 고심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바꾸는 게 아니라, 원래 대사를 다 하고나서 추가적으로 애드리브를 치는 거죠. 예컨대, <도깨비>에서 제가 맡은 역할이었던 저승사자(이동욱)의 동기가 “월말에 회식 있다. 빠지면 벌금 있어”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근데 그 친구였다면 이 대사에 “빠지면 벌금 있어. 꼭 빠져”라고 말을 덧붙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촬영 때 시도해봤는데 반응이 괜찮았죠. 김은숙 작가님이나 이응복 감독님은 애드리브를 허락 안 해준다고 들었는데, 제가 한 애드리브를 넘어가주셔서 다행이었어요.

<또 오해영>과 <도깨비>에 캐스팅 됐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제가 <또 오해영> 전에 <돌아와요 아저씨>라는 드라마에 먼저 캐스팅이 됐어요. 그런데 어느 날 <돌아와요 아저씨> 제작진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동시간대에 하는 김은숙 작가님의 <태양의 후예>가 너무 잘 되다보니 조연 감축이 이뤄졌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제 역할이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내가 임신하고 있었는데 앞길이 막막하더라고요. 너무 속상해서 3일 동안 술을 마시는데, 옆에서 아내가 좋은 작품 다시 들어올 테니 힘들어 하지 말라고 위로해줬죠. 그랬더니 정말 이틀 뒤에 <또 오해영> 감독님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스케줄 없으면 드라마 같이 하자고 대본을 보내주셨죠. 제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본을 읽는데, 기태라는 역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이 역에 욕심이 나니까 감독님께 바로 전화해서 제가 누구를 맡아야 하는 거냐고 물어봤죠. 그러자 감독님이 저한테 “너 기태잖아. 그건 너 밖에 못해”라고 말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게다가, <또 오해영>이 끝나고 김은숙 작가님이 기태를 좋게 봐주셔서 <도깨비>에도 캐스팅이 됐어요. 김은숙 작가님의 <태양의 후예>로 인해 <돌아와요 아저씨>에서 빠지게 된 셈인데, 그게 저를 이렇게 승승장구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어요.

작품을 마치고 배역을 떠나보내야 할 땐 어떤 기분인가요
  배우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한 캐릭터를 현실로 구현해낸다는 것은 창조와 같아요. 대본 속에 있는 이 인물이 실제로 살아서 움직일 때 어떤 말투, 습관 등을 가질까 고민해야 하죠. 배우는 그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해요. 온전히 몰입을 해야 그 역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거든요. 그렇다보니, 작품이 끝나고 맡은 배역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되면 시청자들처럼 후유증이 커요. 저는 특히 <또 오해영>의 기태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많이 울었죠. 기태가 여전히 어느 녹음실에서 도경이(에릭)와 아웅다웅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을 것 같은데, 이제는 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럴 때면 저도 그 동안 못 만났던 부모님이나 지인을 만나면서 다시 제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가지죠.

가장 고마운 분이 있다면요
  모든 감독님에게 감사하지만 저를 <학교 이야기>라는 장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맡겨주신 김혁조 감독님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김 감독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셨어요. 제 연기가 이상해보이거나 재밌지 않을 때마다 크게 혼내셨죠. 많이 맞기도 했고요. (웃음) 그런데 그 호랑이 같던 분이 <학교 이야기>의 종방연(드라마 마지막 회가 방송 되기 전후에 치뤄지는 행사)에서는 저한테 “나한테 제일 많이 맞았지만 실력은 가장 늘었던 기두야, 넌 앞으로 더 잘 될 거야. 꼭 성공해라”라고 말하면서 저를 안아주셨어요. 게다가, 저만 우는 줄 알았는데, 감독님도 울고 계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김 감독님이 해주신 말 덕분에, 제가 무명 시절에도 이 악물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로 잘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차기작은 무엇인가요
  현재는 <열혈주부 명탐정>이라는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어요. 장나라, 조현재, 찬성 등 유명한 분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입니다. 저는 검사(조현재)를 보조하는 검찰수사관 역을 맡았어요. 아랫사람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약간 간사한 인물이죠. 나이와 직급이 어느 정도 되는 인물이라서, 그 전 드라마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또 차이가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온 국민과 소통하고 싶거든요. 제 연기를 보고 많은 분이 희로애락을 느끼면 좋겠고 그 과정에서 위로를 얻어 가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중인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저는 무명 시절이 길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 술집, 수영장, 자전거 수리점, 냉동 창고 등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죠. 하지만 연기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모두 단기로만 일했어요. 차비나 생활비만 바짝 벌고 다시 배우로 돌아갔죠. 만약 제가 현실과 타협하고 아르바이트를 계속해나갔다면 저는 지금 배우가 아니었을 거예요.
  대신, 현실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부터 단단히 붙들어 매야해요. 예를 들어 ‘돈이 없으니까’, ‘피곤하니까’, ‘바쁘니까’ 등 꿈을 포기해도 된다고 스스로 합리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아침에 조금 더 자고 싶어도 내 꿈을 위해서 벌떡 일어나는 거죠. 여러분도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죽을 만큼 노력해봤으면 해요.


글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사진 김진경 기자 wlsrud68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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