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로 세운 촛불 시민의 혁명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됐다. 지난 12월 9일, 국회의 탄핵 소추안 가결로 시작됐던 탄핵심판이 헌법재판관의 전원일치로 파면 결정이 나면서 92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2017년 3월 10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8대 0이라는 압도적인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변론 과정 내내 논란이 됐던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의 지연 전술은 탄핵심판의 가장 커다란 장벽이었다. 이들은 탄핵사유와 직접 연관이 없는 증인, 증거들까지 신청하며 노골적인 지연 의도를 드러냈다. 이러한 전술에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제동을 걸자 탄핵심판은 점차 법리를 다투기보다는 일종의 정치적 투쟁의 장이 됐다. 그렇게 만든 일등공신은 소위 법조계 원로라는 대통령 대리인이었다. 탄핵 소추안을 의결한 국회를 야쿠자에 비유하거나 주심재판관을 향해 국회 수석대변인이라는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탄핵심판에서 이러한 언행은 제 살 깎아 먹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재는 박 전 대통령에 파면을 선고했다. 그 결정적 이유는 비선 실세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위해 대통령이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이 문제를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한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헌법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헌재가 박 전 대통령에게서 더 이상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언급한 검찰과 특검 수사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고 청와대 압수수색까지 거부했다. 게다가,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법정에는 출석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러한 모습은 파면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퇴거해 사저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은 반성은커녕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끝내 자신의 참모진을 통해 전한 대국민 메시지는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며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고 말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결국, 헌법 수호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헌재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느냐 안 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파면으로 대통령 재직 기간에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 ‘불소추 특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앞둔 뇌물죄 피의자일 뿐이다. 금주 내로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소환하면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라고 장담했던 박 전 대통령의 거취가 과연 어떻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파면된 박 전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고마울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민주주의 국가를 지탱하는 국민주권의 원리와 헌법에 입각한 법치주의에 대해 국민이 새삼 깨닫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촛불 시민이 모인 광장은 그야말로 주권자의 권리를 직접 체험하는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교실이 됐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탄핵심판에서는 재판관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그동안 숨겨있던 국정농단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전히 반성 없는 대통령 측근들의 모습은 적폐청산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실제로 지난 11일 탄핵 직후 만 19세 이상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은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로 ‘부정부패 척결’(38.2%)을 꼽았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 파면으로 대한민국은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탄핵 이후 많은 국민은 민주주의와 법치가 바로 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망하고 있다. 헌재를 떠나게 된 이정미 재판관이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전한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는 한비자의 구절이 가슴 깊이 와 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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