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SNS에서 성차별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영된다는 소식에 EBS의 토크쇼 <까칠남녀>의 첫 회 본방송을 사수하게 됐다. 일찌감치 시청 소감을 밝히자면, ‘가려운 부분은 긁어주되 통쾌함까지 선사하지는 못했다’라고 하겠다.

이 방송에는 여러 얘기가 오갔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백악관 내의 여성 직원에게 ‘여성답게’ 옷 입기를 강요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 이슈로 떠올랐다. 이때, 해당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여성이 #DressLikeAWoman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의 의복 사진을 SNS에 게시한 운동도 함께 소개됐다. 그런데 이 운동을 두고 한 남성 출연자가 사회적으로 반감을 일으킬 수 있는 방식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이 남성 출연자의 말을 납득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일부러 제작 주문하거나 옷장 깊은 곳에서 안 입던 옷을 꺼낸 것이 아니다. 그저 수술복과 군복 등 자신의 직업을 나타내는 의복 또는 정장 바지처럼 평상시 입던 복장을 해시태그와 함께 올렸을 뿐이다. 사회가 수용할 만한 적정선을 운운하는 것은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약간의 말이 오갈 뿐 속속히 반박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전부터 성차별 발언과 성 추문 사건의 중심에 있던 트럼프의 언사를 그저 ‘경솔한 실수’라고 칭하는 남성 출연자의 말은 사안의 중요성을 떨어트리기까지 했다.

한편, 이들이 화두로 삼았던 ‘털이 여성에게 억압인가’라는 주제에서 일부 여성 패널은 자신이 일상에서 털로 인해 겪었던 갈등을 토로했다. 이를 보며 기자의 머릿속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털에 대한 콤플렉스로 한여름에도 마음 놓고 소매가 짧은 윗옷과 반바지를 입지 못했던 기억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성인이 된 이후 한 차례 레이저 제모 시술을 받아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지만, 다시 새로나고 있는 털을 보면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그래서인지 이 같은 고충이 사회 문화가 조장한 미감에 의해 생긴 억압임을 꼬집은 한 패널의 발언이 보다 공감됐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르기란 힘들다. ‘국내 최초 젠더 토크쇼’라고 스스로 이름 지은 본 프로그램은 이제 막 첫발을 뗐을 뿐이다. 하지만 계속 가려운 곳을 긁다 보면 마음 깊은 곳까지 시원해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기왕 용기 냈다면, 이름에 걸맞게 좀 더 까칠해져도 된다.

문아영 문화학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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