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의 시대(2013)』 - 이승욱, 김은산 / 문학동네 -

 

일명 ‘헬리콥터 맘’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는 평생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부모를 헬리콥터에 빗대 말하는 단어다. 이 같은 단어가 주는 메시지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부모는 자식을 과하게 보호하고, 자식은 필요 이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애완의 시대』의 공동 저자 이승욱과 김은산은 바로 이러한 현 시대의 모습을 한 발자국 물러난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고한다. 그리고 우리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결국은 같은 문제를 가졌다고 밝힌다. 여기서 이들이 발견한 두 세대의 문제점은 ‘애완’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단어가 뜻하는 바는 그들 모두가 누군가로부터 길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을 길들인 타인은 누구일까.

먼저, 지금의 50-60대에 해당하는 부모 세대를 길들인 것은 국가 권력이라고 볼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6·25전쟁을 치르며 전후의 황폐함과 극심했던 가난의 고통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삶의 목적의식을 잃어버렸고, 이는 국가 권력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면 그들의 경제적 결핍이 곧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가치가 경제적 단위로 매겨지던 1970년대, 이들은 박정희 정권 아래서 국가 산업의 기초가 되는 철강과 전력 등의 산업화를 위해 힘썼다. 실제로 국민이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부가 가치 값인 GNP가 그 당시 15.2%라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부모 세대는 이렇게 산업화의 역군이었지만, 돌아오는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며 달려왔는데 부모 세대의 엔진으로 바로 선 국가가 그들을 기억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나라는 부유해졌지만, 부모 세대는 정신적 결핍이라는 후유증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는 역사의 반복이라는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바로, 부모 세대가 자신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자식이 자신의 계획대로 살도록 강요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자식 세대는 부모에게 길들여지고 만다. 실제로, 현재 20-30대에 속하는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가 마련해놓은 경제적 풍족함 속에서 끊임없는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자식 세대는 자신의 의지로 무엇인가 결정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부모의 물질적, 정신적 지지를 받는 동안 이들의 정신과 정서가 미숙한 상태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풍요로웠던 삶의 평화가 깨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독립적으로 살기를 회피한다. 심지어는 멘토와 멘티라는 개념에 왜곡돼 본인의 진로를 개척하지 못하고 멘토에게서 그 답을 찾으려 하는 이도 있다. 부모 세대가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국가 권력에 의존했다면, 자녀 세대는 풍족하다 못해 우스갯소리로 잉여라는 말까지 나올 수 있는 사회에서 선택의 권리를 버려두고 부모와 타인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애완의 시대』 작가가 바라본 애완의 시대다. 그리고 저자는 애완의 시대를 다른 말로 대리인의 삶이라고 정의하며, 주인의 명령대로 사는 애완견과 같다고 말한다. 애완견은 나이만 먹을 뿐 성장하지 못한다. 자식 세대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부모가 그랬듯 미완전한 어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선택과 결정을 망설였던 과거에 열등감을 느끼고 부모가 본인에게 했던 애완의 행위를 자신의 후대에 되풀이할지 모른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이러한 과오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우리의 민얼굴을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이는 반 아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기느냐고 질문한다. 그러자 아이들은 당연히 더러운 물이 이긴다고 답한다. 이에 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깨끗한 물이 더러워지지 않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자 한 아이가 계속 흐르면 된다고 말한다. 어쩌면 저자는 이 같은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흐르면서 자신을 정화하라는 교훈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진경 기자 wlsrud68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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