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의 경제학(2013)』 - 칼 라우스티아라 / 한빛비즈 -

우리는 패션쇼에 나왔던 작품과 거의 흡사한 옷이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의복 디자인을 베끼는 일은 쇼핑몰뿐만이 아니라 상위 브랜드, 하위 기업에서도 너 나 할 것 없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창작물을 자유롭게 베낄 수 있게 되면, 원작자의 창작 의지가 꺾이고 그 분야는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 음악, 책 등이 법으로 엄격히 보호되는 것도 이 같은 생각의 연장선이다. 그런데 어째서 패션업계만은 이러한 규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까? 게다가 베끼기가 넘쳐나는데도 새로운 디자인의 옷은 날마다 쉼 없이 탄생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의문에『모방의 경제학』의 저자는 패션계가 오히려 모조품 덕분에 번창하는 것이라고 답하며 ‘베끼기’의 역설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선, 일반 사람들이 놀랄만한 사실부터 알려주자면 패션디자인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지 않는다. 패션쇼에 나온 옷을 베껴 판매하는 일도 전적으로 합법이다. 해외 디자인을 베낀 의상을 입고 나온 연예인도 도의적인 측면에서 비판받긴 하지만, 사실상 아무런 죄가 없다. 이처럼 패션디자인이 복제에 관대한 이유는 저작권법의 기본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이른바 ‘유용한 물건’은 자유롭게 복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유용한 물건이란 의복, 가구, 조명기구 같은 것으로, 예술성과 기능성이 밀접하게 결합된 제품을 말한다. 그림은 기능적이지 않은 예술품으로 분류되고 반면에 의복은 그것이 예술품이라 할지라도 기능적인 물건으로 분류된다.

기능적인 발명품과 새로운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특허법’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론상으로는 ‘디자인 특허’ 범주에서 새로운 패션디자인도 보호받을 수는 있다. 디자인 특허는 ‘새롭고,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에 대해 20년의 보호기간을 인정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의복일 때는 이 규정이 거의 쓸모가 없다. 디자인 특허는 ‘신규’ 디자인에만 적용될 수 있는데, 현대의 패션디자인은 대개 과거의 디자인을 재창조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옷에서만큼은 베끼기가 자유롭게 허락되는 상황에서 패션업계는 어떻게 창의적인 생산 활동을 활발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패션계에서는 손쉬운 베끼기가 해를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이득이 된다. 그 이유는 패션의 경제적 특수성과 전통적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지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 지위가 바로 패션의 핵심 요소다. 패션에서 지위는 고가 상표와 고급 재료로 표출될 수 있고, ‘유행’으로도 나타난다. 특히, 유행에 뒤늦게 따라가지 않고 먼저 유행을 선도해나가는 것에서 지위가 드러난다.

이때, 유행 패션은 처음에는 소수 집단이 주도하다가 비슷한 옷이 계속 생산되면서 다양한 고객들에게 널리 확산되고, 마침내 그 명성이 쇠퇴하며 사라진다. 이것을 패션의 주기라고 한다. 이 패션 주기는 베끼기의 자유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니는데, 모방으로 인해 비슷한 스타일의 확산 속도가 빨라질수록 쇠퇴 속도도 빨라진다. 그리고 이렇게 쇠퇴가 가속화되면 소비자 사이에는 새로운 디자인을 보고 싶은 열망이 더욱 거세게 일어난다. 결국, 새로운 스타일이 여기저기서 복제돼 다시금 신규 유행이 형성되면, 이는 곧바로 새 매출 형성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베끼기는 패션 주기를 단축하는 연료인 것이다. 실제로 디자이너들은 유행을 선도하기 위해서라도 재빨리 다른 디자인을 창조해내게 된다. 그러면 소비자도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 더 많은 지출을 하고 패션계의 매출은 쌓여만 간다. 저자가 말한 베끼기의 역설이란 바로 이것이다.

급속한 기술 진보로 인해 베끼기가 갈수록 쉬워지는 세상에서, 앞서 말한 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 패션디자인의 사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불법복제로 인해 창의적 작품이 하나씩 파괴되고 있다며 인류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어쩌면 반대로 창의적 아이디어와 정보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유토피아가 임박했을지도 모른다. 유용한 물건들의 베끼기가 활성화된 미래를 기대해보자.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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