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정한다>‘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을 총칭한다. 실제로 폴란드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본 영화는 이러한 홀로코스트의 존재 여부를 놓고 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와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데이비드 어빙이 법정 공방을 벌인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영화를 볼 때, 가장 격정적인 언행이 오가는 재판 장면마다 입을 함구하는 주인공에게 큰 매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나는 부정한다>의 의미는 주인공의 ‘침묵’에 함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작은 파동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감으로써 관객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데 힘쓴다.

극 중 어빙과 그를 추종하는 극우세력은 히틀러와 나치가 유대인을 살해하는 공식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을 이용해 역사적 진실을 무자비하게 뒤흔든다. 게다가 어빙은 무죄 추정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영국법을 이용해 립스타트에게 명예 훼손 소송을 걸어 그녀가 직접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증명하도록 상황을 종용한다. 이러한 어빙의 전략은 사실상 현실에서 진실과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악용한 방안이다. 홀로코스트라는 진실이 증명의 대상이 되는 순간, 거짓에 대한 심판은 사라지고 이를 입증해내는 몸부림에만 시선이 집중된다. 즉, 가해자는 아무런 힘도 쓰지 않고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 사실을 증명하다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겨나는 것이다. 립스타트도 어빙의 수작을 알았지만, 그녀는 결국 재판을 준비하게 된다. 이를 거부할 때 홀로코스트에 대한 의심의 불씨가 생길 수 있다는 염려가 작용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유대인인 그녀와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증인으로 세우지 않는 전략을 택한다. 피고 측에서 증인을 내세우면 상대방도 심문할 권리가 생기는데, 수십 년이 흘러 생존자에게 생길 수 있는 기억의 허점을 어빙이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립스타트는 이런 결정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마침내 법정에서 유대인을 살상하기 위한 가스를 흘려보내는 용도로 사용된 가스실 굴뚝에 대한 얘기가 오갈 때 폭발하고야 만다. 어빙이 재판의 종료 시각을 고려해 꼬투리 잡는 방법을 써서 굴뚝에 대한 진위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변호인단은 어빙이 생존자에게 일삼는 모욕이 심각하다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기존의 전략이 생존자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방안임을 다시 한번 피력한다. 이 같은 판단은 재판의 결과를 넘어서, 앞서 말한 진실 공방에 피해자가 나서서 사건을 입증하는 자극적인 수단을 배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더불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직접 방문해 재판에 필요한 논리를 다져나가는 등 생존자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았던 변호인단의 자세는 그 자체로 진실을 대하는 태도로서 귀감이 된다.

이후 변호인단은 감정을 배제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사건을 분석함으로써 결국 가스실의 용도가 시체 소독장과 비상시 대피 장소였다는 어빙의 주장을 무참히 박살 내는데 성공한다. 나아가 그가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홀로코스트의 진위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승소라는 쾌거를 얻는 데 성공한다.

한편,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그리는 데 등장인물과 관객의 감정을 크게 동요시키는 장면을 거의 넣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설정은 아우슈비츠가 등장한 장면과 맞닿아 있다. 제작진은 당대 유대인이 겪은 참상을 보여주기보다 철조망 너머의 아우슈비츠를 잔잔히 비추고 립스타트가 찬송가로 그들을 추모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우리는 이러한 카메라 연출이 립스타트의 침묵, 변호인단의 이성적 판단과 동일한 맥락을 이룬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실제로 진실을 마주할 때 감정을 조절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홀로코스트 존재를 입증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목격하며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립스타트가 재판에서 입을 다무는 행동은 자칫 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일 위험이 있었지만, 이는 결국 역사적 진실이라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 존재 여부를 가려내는 세기의 재판을 통해 진실을 대하는 데 필요한 덕목을 일러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영화라 평가될 수 있다.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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