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기다림 끝에 그를 만났다. 독립기념관 명예홍보대사,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단 자문위원, 국가보훈처 나라사랑 정책자문위원 등 그의 이름 앞에 달리는 수식어는 한두 개가 아니다. 인터뷰 약속이 잡히기 전 주까지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대한민국을 홍보하느라 바쁜 그는 한국 홍보 전문가이다. 그는 바로 MBC <무한도전>과 <무릎팍도사>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경덕(36) 씨다. 교수님치고는 살짝 젊은 그는 현재 성신여대에서 국가브랜드의 이해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세계에 한국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경덕 씨를 만나보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한국 홍보 전문가

  

▲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씨                          출처 : 다음 이미지
서경덕 씨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반박광고 덕분이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낸 광고는 그를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 홍보 전문가의 길로 이끌었다. 그 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비롯한 현대미술관(MoMA)과 미국자연사박물관에 놓을 한국어 안내 책자를 제작하는 일을 비롯해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가수 김장훈 씨와 ‘독도 알리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설치 미술가 강익중 씨와 디자이너 이상봉 씨와 함께 한국을 세계로 전파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08년 <미안하다 독도야>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가 처음 한국 홍보 전문가의 길을 걸어가게 된 계기는 1995년 떠난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외국에 나갔을 때 ‘중국인 아니냐, 일본인 아니냐’는 소리를 제일 많이 들었어요.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의 인지도는 너무 낮았어요. 90년대 중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더라고요. 그 일이 제게 한국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그 후 그는 자비로 한국을 소개하는 영문 팜플랫을 구입했다. 배낭여행 동안 남들보다 트렁크를 하나 더 가지고 다녔다. 여행하는 나라의 시립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에 한국을 알리는 팜플랫을 기증하기 위해서였다.
 

선진국의 문화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선진국에서 좋은 문화를 배워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좋은 문화를 외국에 알려주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죠”
서 씨는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사람들에게 국가 홍보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 홍보를 기업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한 사람의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그 외국인은 모든 한국인이 친절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인천공항에서 떠나는 순간 우리나라 국가대표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현재 그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대부분 해외를 다니면서 얻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그는 뉴욕에서도 이 년간 생활했었다. 서경덕 씨는 “배낭여행이나 외국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단순히 앉아서 고민하기보다는 몸으로 부딪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처음에 그가 한국 홍보를 시작했을 때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경제적인 부분이 따라주지 않았다. 초기에는 홍보에 드는 비용을 자비로 충당하기도 했다. 
   “처음엔 후원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백 개의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요청하기도 했어요. 그중 단 한 기업에서 후원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죠. 그것을 기반으로 한두 개씩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나중에는 네티즌들이 성금을 모아서 후원을 해주기도 하고 이제는 같이 해보자고 먼저 연락해 오는 기업들도 많아졌어요. 그때 당시에 힘들고 어려웠다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결과는 없었을 거예요” 
 사람들의 시선에도 그가 꿋꿋하게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 때문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가족들의 도움이 가장 컸다고 말한다.
   위로 네 명의 누나가 있는 그는 1남 4녀 중 막내다. 곱게만 자랐을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손에 흙이 마를 날이 없었단다. 부모님은 학교 갔다가 돌아온 그에게 ‘책가방은 두고 밖에 나가 놀라’고 했다. 그가 시작한 일에 대해서 부모님은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제가 선택한 일은 제가 책임지고 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겨 주셨어요. 그게 가장 큰 힘이었어요”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방법, 문화 콘텐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작년에 열린 G20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인지도는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여러 나라에서는 한국을 관광하기에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화 관광적인 측면으로 접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많지 않아요. 시스템적으로 개선해야 될 부분도 많고요. 외국인을 보면 피하기 바쁘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을 알리기 위해선 우리나라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문화 관광적인 측면으로도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생각하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 콘텐츠는 한식과 한글이다. 한글의 경우 이미 세계 언어학자들이 우수성을 인정할 정도다.
   “이탈리아 하면 피자, 일본 하면 스시잖아요. 보통 이탈리아나 일본을 이야기 할 때 그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를 가지고 이야기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외국인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의 브랜드가 한식이거든요. MBC <무한도전>을 통해 뉴욕타임스퀘어에 비빔밥에 관한 광고를 낸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가장 중요한거요? ‘정정당당함’이죠”
   그는 2005년부터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세계적인 유력지에 독도와 중국의 동북 공정에 관한 광고 및 다양한 의견을 실었다.

 출처 : 다음 이미지
그가 광고를 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객관성’과 ‘정정당당함’이다. “유럽의 한 박물관에 갔을 때였어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가 ‘Sea of Japan’이라고 잘못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한국 사람이 칼로 긁고 그 위에 유성매직으로 ‘East Sea’라고 적어 놨더라고요. 그건 명백한 기물파손이에요.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박물관의 관계자에게 항의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 일을 겪은 후로는 광고를 낼 때 가장 유념해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정정당당함이에요”
지난달 11일 일본에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일본인들이 집과 가족을 잃었다. 현재까지도 일본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경덕 씨도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일본에 있었다. 다행히 그는 동북부 지역과 떨어진 지역에 있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바빠졌다. 지난달 30일 일본에서 발표한 독도 표기 문제 때문이었다.
   그는 “지진은 위안부나 독도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본 지진 피해에 대한 지원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당당하게 지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의견을 밝혔다.
서경덕 씨가 생각하는 우리 스스로 독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지속적인 관심이다. “독도가 왜 우리나라 땅이냐고 물으면 일 분 동안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가장 무서운 것은 기본적인 것조차도 모르는 우리의 무관심이에요. 일본이 정치적인 망언을 했을 때만 일시적으로 쏠리는 관심이 아닌 꾸준한 관심과 애정만이 독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죠”

   차세대 한국 홍보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 젊은이들에게 특강을 많이 한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가 대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끈기가 부족해요. 무한 도전 정신이 필요해요. 이십대에 돈 적게 벌고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면 어때요. 좋은 직장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해요.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의 최종 꿈은 세계를 리드할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꿈 많은 학생처럼 보인다. 꿈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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