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잔뜩 구겨진 채 맨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익숙해 보이는 국회의원을 우리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본회의 출석률 100%를 자랑하며 9개월간 법안을 무려 55개를 발의할 정도로 성실함까지 갖추고 있어 많은 국민에게 환호를 받는다. 피곤함이 가득 묻은 얼굴로도 언제나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44) 국회의원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은평구갑 국회의원 박주민입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입니다. 국회의원 직을 맡기 전에는 인권변호사로도 활동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이 곧 제대로 이뤄질 듯해요. ‘세월호 변호사’로 알려졌던 의원님으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이제야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돌아가셨던 기간제 교사가 계속 순직 인정이 안 되고 있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바로 처리가 됐어요. 사실은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는데 왜 그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이전 정권에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많이 보여서 답답했는데, 이제라도 빠르게 진상규명이 추진돼 가고 있어 다행이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시던 의원님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이번 20대 총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어요. 그 전에도 정치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은 받아왔지만, 제가 굳이 해야 한다고 생각을 못해서 거절했었죠. 그런데 그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200석 이상을 차지해 총선거에서 압승할 것이고, 야당은 전멸한다는 전망이 나왔어요. 실제로 지지율에서도 압도적인 차이가 났고요. 그래서 도와 달라는 야당 측의 요청이 다시 들어왔을 때 이번에는 내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새누리당에서 그렇게 많은 의석을 가져가면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비롯해 제가 도와드리고 있던 많은 사람이 다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 같아서 출마하겠다고 마음을 굳혔어요. 주변에서는 지금 나가면 무조건 떨어진다고 다들 말렸지만, 일단 도전해봤어요. 결과적으로는 야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고 저도 무사히 당선이 됐죠.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난 뒤 느끼신 것들이 있다면요
변호사가 쉬운 직업은 아니었는데, 국회의원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어요. 사실 변호사는 재판의 ‘룰’에 따라 상대방을 꺾으면 돼요. 어떻게 보면 단순하죠. 그런데 국회의원은 그런 게 아니에요. 어떤 법안을 통과 시키고 싶어서 아무리 주장하고 설득해도 다른 정당에서 반대하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지금 제가 국회의원으로 일한 지 1년 조금 안 됐는데, 이런 점을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또,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나라의 세금을 빼먹는 도둑놈 취급당하는데, 사실은 정말 하는 일이 많고 바빠요. 정말 바쁠 때는 하루에 일정이 20개씩 있을 때도 있고요. 시간을 쪼개도 결국 취소하는 일정이 생기게 되죠. 그리고 국회의원이 엄청난 특혜와 경제적 이익을 받고 있다고 오해 받는 것 같아요. 실은 비행기를 무제한으로 무료로 타는 것도 아니고 쓸 수 있는 출장비도 한정돼 있어요. 월급이 절대 적은 편은 아니지만, 장관급 인사인데도 차관보다 적게 받아요. 잘못 알려진 정보는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정치혐오’를 일으킬 수 있거든요. ‘그놈이 그 놈이다’라고 생각하고 정치를 외면하지 않아주시길 바라요.
그래도 국회의원이 되니까 제가 어떤 행동을 하기만 해도 항상 화제가 돼서 좋아요. 제가 변호사였을 때는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처마 밑에서 4개월간 노숙을 했는데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근데 이제는 제가 하루만 노숙을 해도 언론도 주목하고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줍니다.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파급력의 차이가 정말 큰 것 같아요.

의원님의 대학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저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했는데, 사실 제가 가고 싶었던 학과는 아니었어요. 단순히 성적이 잘 나와서 원서를 넣었던 거였죠. 사법고시를 보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래도 다양한 경험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학생운동도 많이 하고요. 특히 선배 따라서 집회나 철거촌, 농촌, 공장 이런 곳에 자주 갔어요. 누가 학생운동하고 집회하라고 시킨 적은 없지만, 괜히 자발적으로 나가게 되더라고요. 어느 철거촌에 깡패가 몰려와서 그곳 주민들이 다치고 있다고 하는데, 제가 안 가면 그 분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어요. 저는 미안하게 사는 것보다 마음 편하게 사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집회가 열리는 곳에 가서 말을 들어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매번 한 번도 제대로 귀에 들어온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2학년 여름, 무더위가 한창이었을 무렵에 집회하고 농성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너무 잘 들리더라고요. 그때 당시 원진 레이온이라는 합성 실을 만드는 회사의 공장에서 유독가스로 인해 많은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었어요. 제가 피해 노동자들이 집회를 하는 곳에 갔었는데, 이 분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머리에 한 번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저도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 이후부터는 어떤 집회나 철거촌을 가던지 그 분들이 왜 싸우려고 하는지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특별한 계기가 절 바꿨다기보다는 한 순간을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달라졌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의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싸우는 시간이 점차 많아지면서, 제가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즐거웠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변호사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대학교 4학년 때였어요. 겨울에 신도림의 작은 철거촌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철거촌 분들이 구청장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눈이 펑펑 오는 날 하루 종일 같이 구청 앞에 서 있었어요. 하지만 끝끝내 구청장은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죠. 그때 처음으로 ‘내가 변호사였다면 이 분들을 구청장과 만나게는 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20년 전에만 해도 변호사가 지금보다는 훨씬 적고 귀했었으니까요. 그래서 5학년까지 학생운동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에 사법고시 공부를 해서 합격을 했습니다.

변호사, 그리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변호사 때 헌법소원을 통해 ‘야간 집회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낸 것이 가장 보람됐던 일이라서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저녁에 촛불 집회를 하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2008년까지만 하더라도 해가 지고 나서 집회를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금지했어요. 그게 무슨 주제든지, 얼마나 평화롭게 했는지 등은 상관없이 야간에 모여서 앉아만 있어도 무조건 불법이었죠. 그래서 야간에 집회를 했던 2000명이 한 번에 기소가 된 일도 있어요. 제가 그때 헌법소원으로 위헌 판결을 받기 위해 1년 반 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했어요. 굉장히 힘들었지만 결국 위헌 판결을 받아내고 나니까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또한,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제2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만드는 법안을 발의한 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신속처리 안건이기 때문에 타 정당이 반대해도 시간만 지나면 본회의에 성정돼 통과가 되는 것이었죠.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시다 보면 많이 지치실 것 같아요
제가 사실 등하고 허리가 굉장히 안 좋아요. 그래서 오래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걸 잘 못합니다. 5년 전부터 아파오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분들과 거리에서 자는 걸 반복했더니 그때 정말 확 나빠져서 그 뒤로는 고통이 더욱 심해졌어요. 이걸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는데, 이번 선거 기간에도 바빠서 한 달 가까이 못했어요.
그래도 다행인 게 정신적으로 지쳐서 나가떨어지지는 않아요. 저는 5년 동안 학생운동을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같이 하다가 힘들면 종종 종적을 감췄는데 말이죠.(웃음) 저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어요. 그래도 종종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보통 남자들처럼 집에서 소주 한 잔 마시면서 풉니다.

발의한 법안이 정말 많은 걸로 유명하신데, 이런 결과물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해요
저는 성실한 성격이에요. 학생운동이든, 공부든 뭐든지 성실하게 해내요. 그게 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이 됐는데, 열심히 일을 안 하면 국민들에게 죄송하죠. 작년에는 2,400분 정도가 저한테 열심히 일하라고 정치 후원금을 모아주시기도 했고요. 저를 믿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동안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저는 항상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굉장히 형식적으로만 갖춰져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직접 선거로 뽑는 정도에 만족할 게 아니라, ‘국민소환제’, ‘선거연령 인하’ 등 국민이 실제로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제도를 마련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내고 싶고, 나중에 정치를 그만뒀을 때 “박주민은 민주주의의 실질화하는 데 기여한 정치인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심지어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남이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어요. 제가 경험해본 바로는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았을 때와 모를 때, 그 사람이 낼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열심히 할 수 있는 정도도 차이가 나고요.
어떤 사람이 예전에 저한테 “서울대 법대씩이나 나와서 왜 그렇게 희생만하고 사냐”라고 말했는데, 전 희생한 적 없어요. 제 욕심껏 살고 있는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할 때, 제가 가장 즐거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청년들이 얼마나 바쁘고 힘든지 알지만, 본인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는 반드시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남이 봤을 때 좋은 삶을 살다가, 결국 자신의 욕심은 한 번도 못 채워본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잖아요.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사진 제공 박주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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