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한양대학교(이하 한양대) 내에 한 장의 대자보가 붙었다. 삽시간에 언론과 각종 SNS를 통해 퍼져나간 이 대자보에는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의 얘기가 담겨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난 4월에 피해자 A 씨가 없는 술자리에서 몇몇 학생이 A 씨의 전 남자친구에게 “A랑 잤냐”, “A랑 한 성관계 좋았냐” 등의 성희롱 질문을 던졌고 이에 전 남자친구가 응하면서 졸지에 그녀의 동의도 없이 개인적인 성생활이 타인의 입을 통해 알려져 버렸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A 씨는 성희롱에 가담한 일부 학생이 잘못을 깨닫고 마땅한 처벌을 받게 하고자 해당 대자보를 써 붙였고 현재까지도 그녀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등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애쓰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학교에서 성희롱은 끊이질 않는 골칫거리다. 이에 본지는 대학 내 성희롱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 가능한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성희롱 및 성폭력이 근절된 대학교의 모습을 그려봤다.

본 사안을 집중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먼저 성희롱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성희롱이란 성에 관련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고용기회평등위원회에 따르면, 성희롱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조건형 성희롱’과 ‘환경형 성희롱’이다. 조건형 성희롱은 가해자가 고용, 업무, 학업평가 등을 빌미 삼아 성희롱을 행하는 것이다. 반면, 환경적 성희롱은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교육 및 학습 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수의 추천이 고용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학원에서는 조건형 성희롱이 일어나지만,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성희롱 사건은 환경적 성희롱에 해당한다. 한편, 성희롱은 넓게 봤을 때 성폭력에 포함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성폭력은 성을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 행위를 일컫는다.

이러한 성희롱·성폭력은 대학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온라인 설문조사 기업 서베이 몽키가 전국 대학생 2,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 중 20%가 학내에서 성희롱을 목격하거나 경험했다고 밝혔다. 또한, 교내 성폭력 조사기구에 공식적으로 신고 되는 성희롱 사건의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전국 95개 대학의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생 폭력 피해자 지원 및 사건처리 현황 실태조사’를 보면, 성희롱 및 성폭력으로 학교에 공식 접수된 사건이 연평균 2.48건에 달했다. 이는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인 1.18건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수 간의 성희롱·성폭력

대학 내 성폭력은 크게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수, 직원과 학생 등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수 사이의 성폭력을 살펴봤다. 먼저, 학생과 학생 간에 벌어지는 성희롱은 대학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중 가장 높은 비율로 일어난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크게 대중의 몰매를 맞은 것이 단체 채팅방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이다. 이는 SNS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성희롱의 형태로, 몇 년 전부터 여러 대학에서 꾸준히 발생하면서 논란의 중심이 됐다. 남성만 속한 채팅방에서 일부 남학생은 동기 여학생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성적 대상화 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이어가며 언어적 성희롱을 감행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아주대학교에 위탁해 재학생 1,441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성 인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언어적 성희롱을 가한 적 있다고 답한 대학생이 35%였다. 이 중에서 ‘여자 혹은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이 있다’라는 답변이 57%로 가장 많았고 ‘외모에 대한 성적 평가나 모욕 또는 음담패설을 한 경험이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도 45.6%를 차지했다.

이렇게 학생 간의 언어적 성희롱도 큰 문제지만, 비언어적 성폭력은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신입생이 입학하는 3월만 되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각종 술자리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끊임없이 보도된다. 앞서 말한 교육부의 ‘대학생 성 인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술자리에서 무리하게 옆자리에 앉히거나 술을 따르도록 요구했다’, ‘상대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키스나 포옹을 하고 몸을 만졌다’라는 항목에 다수의 학생이 공감을 표했다.

게다가, 교수와 학생 간의 성희롱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지난해 3월 광주여자대학교 모 교수의 성희롱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2015년부터 모 교수는 학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지속해서 내뱉은 것으로 밝혀졌다. “남자친구와 자 봤냐”, “남자는 서서 조준하는데 여자는 어떻게 하느냐” 등의 말이었다.

이 외에도 교수의 신체적 성폭력 사건이 학내에서 적지 않게 일어난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2016년에 조사한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47명의 교수가 성폭력 관련 징계를 받았다. 파면된 교수는 10명이며 해임과 정직당한 교수는 각각 14명, 16명이었다. 또한, 7명의 교수가 경징계를 받았다. 각각 △강제 추행 △성희롱 발언 △강간(미수 포함) △성매매라는 죄목으로 징계에 처했다.


계속되는 솜방망이 처벌에 대두되는 조사기구의 역할

현재 이러한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조사기구를 통한 타율적 방안과 상담을 통한 자율적 해결 방안으로 나눠진다. 이는 강력한 징계와 올바른 상담기구를 겸비해 성희롱을 예방하겠다는 의지로 대학이 내놓은 특단의 조치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상쇄 방안에 의해 성희롱 발생률이 감소하거나 구성원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동국대학교 모 학과 남학생들이 단체 채팅방을 통해 상습적으로 여성에 대한 성희롱을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을 빚었다. 해당 사건의 처분 결과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발생한 성희롱 사건의 대다수의 가해자는 사회봉사 또는 1-2학기 정학에 그치는 처벌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징계 처분이 나오기도 전에 가해자가 졸업한 사례도 있었다. 이에 조사기구의 역할이 무의미할 정도로 솜방망이 처벌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이와 관련해 최강현 한국성폭력예방연구소장은 “단체 채팅방 성희롱도 엄연한 범죄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처벌돼야 한다는 인식보다는 학내 교칙에 의한 징계가 우선시 되는 분위기가 문제를 키우고 있다. 그나마도 기사화된 사례만 적극적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대학 당국의 사건 해결 방식을 지적했다. 결국, 이는 대학 내의 피해 사실을 명확히 조사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담당하는 조사·심의위원회 혹은 고충처리위원회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2012 대학교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 피해구제를 중심으로’ 자료에 의하면, 전체 대학의 약 70%가 사건에 대한 조사와 가해자 징계까지는 시행하고 있으나, 피해자에 대한 치료를 지원하거나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대학은 절반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부진한 성적을 보였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피해자를 비롯한 다른 이의 2차 피해를 막고자 필요한 조치일 뿐이고, 가해자를 사회에서 격리하는 행위만으로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게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동국대학교 단체 채팅방 성희롱 사건을 폭로한 학생의 말을 따르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일부 당사자들이 분노와 배신감으로 인한 충격으로 약물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가해자가 받게 될 처벌에 쏠려있었고 피해자의 치료 과정 및 보상 등은 주목받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대학 차원에서 피해자에 대한 지원 체계가 마련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게다가 성희롱은 현행법상 형사 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고소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학교 내에서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 한계가 있다면, 피해자에게 법률 자문을 제공·지원해 가해자가 법적 책임을 치르도록 이끄는 것이 응당 대학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법정 공방을 피해자 개인이 모두 책임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개선이 시급한 대학 내 성희롱 상담기구

다음은 상담소 운영 실태다. 하혜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가 낸 ‘대학 성희롱․성폭력 상담 및 조사사건 현황 분석 연구’에 의하면 현재 대학 내 성희롱 및 성폭력 상담소는 △독립기구 △상담센터 부속 △행정기구 부속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독립기구는 성희롱을 전담하는 상담기구가 대학 내에서 별도로 설립된 것이다. 상담센터에 부속된 성폭력 상담소는 기존에 운영되는 학생 상담소나 진로 센터 등에 소속돼 운영된다. 학생처 등의 교내 부서에 성폭력 상담소가 속해 있을 때는 행정기구 부속 상담기구라고 볼 수 있다. 현황을 살펴보면 전국 대학의 272개 상담소 중 독립기구 형태로 설치된 대학이 11%, 상담센터 부속인 학교가 29%, 행정기구 부속으로 존재하는 곳이 60%였다. 89%의 대학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성희롱 상담소가 없었다.

상담기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상담기구를 통해 가해자 처벌을 위한 절차를 밟을 때, 학생처와 교무처 등의 교내 많은 부서를 거쳐야 하며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해지게 된다. 이로써 성희롱 사건에 대한 해결이 빠른 시일 내에 처리되지 못하면, 가해자가 입대나 졸업, 이직 등의 이유로 학교를 떠나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다양한 부서를 통과하면서 사건에 대한 비밀이 누설될 확률도 낮지 않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학교의 총여학생회장 A 씨는 “학생은 학교에서 피해를 봤기 때문에 대학 측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될 확률이 높다. 특히 가해자가 교직원이면 대학과 교수가 한 통속일 거라고 판단하게 돼 더욱 신뢰도가 떨어진다”라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적이지 않은 상담기구의 직원은 학내에서 권한이 낮은 위치에 있을 확률이 커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더욱 열악한 환경에 처한다.

이 외에도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게 개선해야 할 점으로 손꼽힌다.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가 전국 95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사건처리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성폭력 전담 상담 인력은 13.7%에 그쳤다. 교직원 외에 상담가가 있더라도 대부분 1-2년 단기 계약직으로 있으며 성폭력 전문 인력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언급한 하혜숙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전문 지식 및 업무 능력 향상에 필요한 연구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답변한 학내 상담가가 17.3%기도 했다. 또한, 15.8%의 비율로 ‘상담원의 대학 내 지위, 연봉 등 근무조건의 열악함’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전문 인력을 늘리고 이들에 대한 교육이나 임금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교육을 실시할 때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등에서 기획되는 성희롱 고충상담원 교육 자료나 ‘성희롱 전문 강사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끔 해야 한다. 또한, 대학이 예산을 마련해 정규직 성폭력 전문 상담가를 초빙하는 게 중요하다. 

변상우 성공회대학교 성폭력 상담실 전임 상담원은 “많은 대학에서 상담원을 계약직 형태로 고용하고 있다. 대부분 2년 안팎으로 채용되기 때문에 가해 학생이 휴학 등으로 일정 기간 학교에 다니지 않게 되면 사건을 지속해서 관리할 수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서울 소재 한 사립대학교의 성폭력 상담가는 “성폭력 상담은 접근 방법이나 처리 과정 등에서 심리 상담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라고 경고했다.


오늘날 성범죄 전문가들은 대학 내 성희롱 문제가 피해자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당사자의 적극적인 사실 규명이 어려움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를 보완 및 해결하고자 대학 측이 구축해놓은 조사기구 와 상담기구는 아직도 채워야 할 구멍이 많다. 낮은 수위의 가해자 처벌, 부실한 상담 인력 등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2차 성희롱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는 온전히 학내 구성원의 몫이 될 뿐이다. 아울러 각종 성희롱 사건·사고가 줄지어 발생하는 현시점에도 이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 집단에 ‘지성의 상아탑’이라는 명칭은 과분해 보인다. 한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피해가 극심한 성희롱 문제에 대해 대학 당국의 발 빠른 조치가 시급하다.

이번 대학 내 성희롱 문제를 끝으로, △학생 유치 △교수 임용 및 업무 △대학 강의 △학과통폐합 △사학 비리 등을 다루며 한 학기 동안 특집으로 다뤄졌던 ‘대학, 위기를 넘다’ 기획 기사를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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