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바빴다. 누군가 나에게 “뭐가 그렇게 바빴어요?”라고 물어본다면 할 말이 많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학교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을 지켜봤다. 또한, 좋은 일에는 축하를, 부당한 일에는 시위를 하느라 분주했다. 그럼 또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아니, 대통령 선거 때 대체 뭐가 바쁘셨어요? 유세 차량 위에서 춤추셨어요?” 당연히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지난달 9일에 투표한 게 전부다. 그렇지만 어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지 걱정하고 학교에서 발생한 일련의 일들을 고민하느라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힘겨웠던 지난달을 보내고 나서야 활발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피곤한 시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면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딱히 대단한 노동을 하지 않았기에 ‘내가 쉴 생각을 해도 되는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열심히 사는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됐다.
이때 문득 정신에도 폐활량이 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잠수할 때는 폐활량이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숨을 참아야 하고, 더 이상 뱉어낼 숨이 없으면 물속에서 나와야 한다. 폐활량은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숨을 참기가 힘들다면 물 밖으로 나와 다시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하루는 물 밖에 나와 숨쉬기 위해 친구와 함께 오락실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으며 돈과 시간을 마음대로 썼다. 어떤 사람은 그걸 낭비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날 저녁, 몇 시간 동안 논 뒤 집에 들어와 자고 일어나니 조금 살만했다.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었지만, 전보다 확실히 나아져 있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일상을 견디기가 좀 더 편해졌다.
휴식을 사치라고 여기는 사고가 만연한 사회이지만, 휴식이란 잠수를 하다가 숨을 쉬기 위해 물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다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든 마찬가지로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좋아하는 음식점에 가거나 게임을 하고 낮잠도 자며 숨을 돌릴 권리가 있다. 반드시 휴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을 하고 싶다. “다들 숨 좀 쉬고 사세요. 숨 안 쉬면 죽어요.”

목영화(국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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