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개최된 ‘WISET 5주년 토크콘서트 - 어쩌다 아름이’에서는 이공계 여성이 겪는 문제점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남자 동기와 똑같이 노력해도 면접 한 번 보기 힘들다는 취업준비생부터 출산 후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가 퇴사를 강요받았던 직장인까지 다양한 이들의 사연이 오갔다. 조금씩 내용은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리천장에 부딪혀야 했다. 이처럼 성 불평등 문화가 여전한 과학기술 분야에서 과연 여성과학기술인은 어떻게 해야 본인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이하 WISET·위셋)의 한화진(58)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위셋의 소장을 맡고 있는 한화진입니다. 지난해 4월부터 2대 소장으로 근무하며 국내 여성과학기술인을 육성 및 지원하는 사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위셋’은 어떤 기관인가요
올해로 5주년을 맞은 위셋은 2002년에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처음 출발했습니다. 이후 점차 생겨났던 여러 지원 사업을 통합하고 법인화 과정을 거침으로써 오늘날의 위셋이 탄생했죠. 이번 연도 초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소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승격되면서 역할이 확대됐어요.

기본적으로 위셋은 여성의 생애주기에 초점을 맞춘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각종 진학 및 취업 탐색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까닭도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죠. 나아가 경력 복귀를 희망하는 여성과학기술인을 지원하는 사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이 결혼한 뒤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면서 경력이 단절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실제로 학사 이상의 인력 30만 명, 석·박사 인원 1만 7,000명 정도가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상황이죠. 이처럼 연령별마다 갖고 있는 문제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 생애주기에 따른 지원이 매우 중요해요.

한국에서 여성과학기술인의 현실은 어떤가요
여성과학기술인에 관한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여성이 이공계열로 대학에 입학할 때 비율은 자연계열이 50%로 과거보다 높아진 데 비해 공학계열은 20%라는 여전히 낮은 수치를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사회에 진출할 때 나타나요. 실제로 국내에서 연구개발(이하 R&D) 인력으로 몸담고 있는 여성과학기술인은 자연 및 공학계열을 합해도 19%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속해서 여성 인력이 배출되더라도 10명 중 2명만이 연구 활동을 하는 등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이 매우 많다는 뜻이죠. 게다가 한 집단에서 의사결정권을 갖는 고위직 여성의 비율도 현저히 낮은 것이 현실이에요. 전국의 공학계열 교수 중 여성은 4-5%고 소속된 단체에서 연구책임자로 일하는 여성 인력은 전체 9%에 불과한 실정이죠.

이러한 현실을 돌아볼 때 한국 사회는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성별이 가진 특성과 차이를 이해하는 성 평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어요. 이미 세계는 성별과 소수계층 등 인력에 있어 다양성을 꾀하는 추세입니다. 물론, 이를 수행하려면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선행돼야 하죠. 이 때문에 위셋은 여성의 경쟁력이 곧 국가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사회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대학생을 지원하는 사업은 어떻게 이뤄져 있나요
대표적으로 공학계열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학연구팀제’ 사업이 있어요. 본 사업은 공학 분야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 프로젝트 리더를 맡아 기획 과정부터 완성 단계까지 모든 사안을 주도하게 됩니다. 공학연구팀제는 크게 심화과정과 일반과정으로 나뉘는데, 심화과정은 대학생이 팀원으로 참여하며 올해에는 총 50개의 과제를 7개월간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들에게는 학회와 공동으로 연구 성과를 발표함으로써 학계에 본인의 역량을 드러낼 기회가 마련됩니다. 현 시점에도 참가자가 상을 받거나 특허를 내는 등 다양한 네트워킹을 구축해나가는 발판이 되고 있어요. 또한, 일반과정은 중·고등학생도 참여가 가능하며 100개의 과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위셋에서는 공학연구팀제를 통해 참가자가 전공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리더십과 R&D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한편, 지원은 여성 비율이 80%를 조건으로 하고 있지만 남성도 참여가 가능해요. 여성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생겨난 프로그램이라 해도 이러한 사업이 좋은 성과를 얻으면 성별에 상관없이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밖에 취업 탐색 멘토링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에요.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진 학생이 멘티가 되고 실제 학교 및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벤처 분이 멘토가 되는 구조입니다. 멘티와 멘토 모두 신청을 받은 뒤 분야별로 팀을 구성하면, 총 7-8개월 동안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 상담부터 직접 산업체의 필드를 탐방하는 시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죠. 연말에는 그동안의 성과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데, 우수한 팀에는 장관상을 시상해 그동안의 활동을 격려하고 있어요.

‘2016 WISET 멘토링의 날’을 맞아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멘토와 멘티가 한자리에 모인 모습이다

경력 복귀를 희망하는 여성을 위해 어떤 사업을 추진하고 있나요
현재 가장 주력하는 것은 여성과학기술인의 R&D 지원 사업입니다. 결혼 및 출산 후에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안심하고 다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죠. 올해는 75개의 과제를 지원하는데,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대학교 연구소, 기업체 연구소 등이 본 사업에 선정되고자 먼저 신청을 합니다. 선정된 연구기관에는 위셋에서 1년간 2,200만 원의 프로젝트 비용을 최대 3년간 지급하기 때문이에요. 다음으로 여성 본인이 희망하는 분야에 신청을 하면 위셋에서 구인·구직매칭을 진행합니다. 이처럼 R&D 과제를 수행하는 작업을 통해 경력이 단절됐던 여성 인력이 본인의 역량을 강화해 새롭게 연구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실제로 참가자가 이후 경력을 유지하는 비율은 73.6%나 되고 있죠.

또한, 이러한 사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법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여성과학기술인 채용목표제’가 그 예시에 해당해요. 이는 신규 인력을 채용할 때 30%를 여성과학기술인으로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도입니다.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한쪽으로 결정권이 쏠리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비율이 30%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을 적용했죠. 아울러 ‘여성과학기술인 담당관제’를 통해 여성 친화적인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과 남성이 모두 일과 가정에 양립할 수 있도록 돕는 보육 제도가 많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기관장과 미팅을 통해 조직 내에서 해당 제도가 적용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 작업을 진행하고 있죠.

정부 혹은 사회에 요구하는 점이 있다면요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젠더혁신에 대한 이해 및 적용이 사회 전반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젠더혁신이란, 과학기술에서 각 젠더의 특성을 분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걸 총체적으로 일컬어요. 보통 제약 분야에서 의약품에 대한 임상 시험을 할 때, 수컷 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만들어진 약품은 여성에게 알려진 것과 다른 결과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만약, 한쪽 성별만을 고려한 의약품이 다른 성별에 부작용을 낸다면, 제약 업체 입장에서도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보는 거예요. 반면에 연구 초기 단계부터 젠더 특성을 분석해 과학기술에 접목한다면 이러한 염려는 낮아질 수 있어요. 즉, 젠더 결함이 없는 기술개발은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내기 위해서라도 주목해야 할 항목입니다. 물론, 과학기술 분야에서 젠더혁신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여성과학기술인의 역할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인식이 선행돼야 하죠.

여성과학기술인으로써 겪었던 고충이 있었나요
같은 취업 면접을 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게 밀려야 했던 적이 있었어요. 이 외에도 현재 대다수 여성이 채용 과정에서 겪는 불이익까지 모두 경험했었죠.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출산 후 아이를 부모님께 맡겨 놓고 직장을 다닐 때였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시는 상황이었지만, 제가 직접 돌보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당시 그렇게 힘들게 진행했던 연구가 결국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되면서 이전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더욱 우리나라에 필요한 연구자가 되고자 다짐했고 이후 계속해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죠.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한 개인이 경력을 지속하는 데 조직과 사회의 인정을 받는 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같은 맥락에서 여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도록 돕는 위셋의 지원 사업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봐요.

여성과학기술인을 비롯한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현재 본인이 하는 일이 모두 축적돼 자신의 자산이 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저는 본래 물리화학을 전공했는데, 당시 담당 교수님께서 제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연구 주제를 제시해주신 적이 있어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연구를 진행하게 되니 실험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몸과 마음이 더 지치고는 했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그 과정이 제가 환경 분야를 연구하게 된 주요 계기가 됐어요. 이전까지는 환경 분야의 연구자가 될 거라고는 저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대기오염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계의 인정도 받으면서 자신감도 얻고 연구를 지속하는 데 필요한 성과를 쌓을 수 있었죠. 여러분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이후 예상치 못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마음속에 새겼으면 좋겠어요. 작은 마음가짐일 수 있지만,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더 지혜롭게 일을 해쳐가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위셋이 목표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국가적으로 예산이 한정된 탓에 지원이 필요한 여성과학기술인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지 못해 늘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다행히 현 정부가 성 평등을 국가의 큰 아젠다로 삼고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 높기 때문에 이러한 지원체계가 더욱 힘을 얻을 거로 생각합니다. 나아가 앞으로도 위셋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마음 놓고 꿈을 펼치는 사회를 목표로 여러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자 합니다. 

한편, 우리나라처럼 한 기관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여성과학기술인에 대한 사업을 이끄는 국가는 매우 드뭅니다. 이 때문에 국내의 정책 시스템이 현장에서 유의미한 성과가 난다면 해외의 여러 나라에 좋은 선례가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죠. 훗날, 위셋의 이러한 노력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여성이 함께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사진 제공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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