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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무통’은 행복을 가능하게 할까
2017년 09월 04일 (월) 14:23:09 정덕현 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하루만이라도 나도 저런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싶다.’ 지금 꽤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은 대부분 이런 대중의 욕망을 끄집어낸다. JTBC <효리네 민박>를 보면, 제주도의 이 민박집을 찾은 이들은 남다른 배려심을 가진 이효리와 이상순 그리고 직원으로 있는 이지은(아이유)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잠깐의 여행이지만 이들과 교류하는 시간은 그 자체가 힐링이며, 동시에 이를 시청하는 대중은 비슷한 경험을 꿈꾸게 된다. 

최근 힐링과 위안, 위로 같은 단어가 문화 속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그 기저를 살펴보면, 많은 이가 각자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하고자 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는 삶을 살아도 쫀쫀하게 돈을 모아 조금은 화려한 여행을 가는 것이 이전과 달라진 삶의 양태다. 그런 식으로라도 작은 사치를 부리지 않으면 인생 전체가 우울함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과연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을까. 

일본의 사상가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무통문명』이라는 저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처한 문명의 성격을 통찰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본래 인류의 이상은 괴로움과 아픔이 없는 문명이었는데, 이런 이상에 근접한 것처럼 보이는 게 지금의 ‘무통문명’이다. 즉, 현실에서는 괴로움이 그 어느 때보다 넘쳐나지만, 각 개인은 이를 회피하기 위해 골몰한다는 얘기다.

사실 고통을 없애려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따라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무에 잘못된 일이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무통문명이 지향하는 건 궁극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고통에 대한 회피라는 점이다. 이러한 회피의 방식이 수동적인 입장으로서 주로 개인주의적인 성격을 띤다면, 행복을 추구하는 건 그보다 능동적인 입장으로 사회성을 띤다. 이는 개인의 고통에 대한 회피가 타자의 행복과 사회적 행복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러다 결국 타자의 고통을 방관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최근 들어 이러한 무통문명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의 성격이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효리네 민박>은 출연 연예인과 다양한 민박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무통의 차원을 넘어서 타자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어떨까. 어느 순간부터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에서 ‘자족’하는 삶을 만족으로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다. 혼자만의 쾌락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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