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상당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고강도 대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한층 깐깐해진 대출 규제가 눈에 띈다. 한 마디로 은행에서 손쉽게 돈을 빌려 집을 사지 못하도록 한 거다. 가파르게 상승한 집값을 잡기 위해 새 정부가 우선 꺼내든 카드는 바로 대출 규제를 통해 집을 구매하려는 수요를 낮추는 것이다.  
 
  이 대책이 발표된 이후 여러 곳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란 볼멘소리가 나왔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돈이 많은 사람만 집을 살 수 있게 됐다는 힐난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집 구매=자산 증식’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돈이 적은 사람의 자산 증식 기회를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출 규제로 인해 돈이 부족한 사람이 집을 살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이후 같은 값의 집을 구매할 때 혹은 같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집을 구매할 때 금융회사에서 빌릴 수 있는 자금 한도가 줄었다. 무주택자이며 부부합산 연 소득이 7천만 원 이하인 사람이 서울에서 4억짜리 집을 살 때, 대책 이전에는 최대 2억 4천만 원을 빌릴 수 있었으나 이제는 최대 2억 원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집값에 따라 대출 한도를 정하는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60%에서 50%로 낮아지면서 부부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감소한 것이다. 게다가 LTV 규제는 부부합산 소득 7천만 원을 기준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앞서 나온 부부가 현재의 연봉을 넘게 벌면 LTV 40%가 적용돼 대출 한도는 1억 6천만 원으로 더 줄어든다. 여기에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가 정해지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까지 고려하면 빌릴 수 있는 돈은 더 줄 수 있다.
 
  그러나 기회를 빼앗았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느슨한 대출 규제는 많은 사람에게 집을 살 기회를 주는 것은 맞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을 과도한 원금 및 이자의 상환 부담에 빠뜨리면서 금융시장 자체를 망가뜨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최대 금융위기로 불렸던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느슨한 대출 규제였다. 이때 집권하고 있었던 조지 부시 정부가 내건 구호 중 하나는 ‘모든 미국인에게 집 한 채’였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 사기가 어느 때보다 좋은 환경이 지속됐다. 집값이 1억 원이라면 은행에선 이자 상환까지 고려해서 1억 1천만 원까지도 빌려줬다. 하지만 이러한 대출 규제의 완화로 금융위기가 와 집값이 폭락하자, 상당수 미국인은 살던 집을 내놓고 길거리에 나 앉거나 파산의 길을 걸어야 했다. 빚을 쉽게 낼 수 있는 사회는 달콤하나 위험한 사회인 셈이다.
 
김경락 한겨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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