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8 예산안의 규모는 429조 원이다. 많은 언론이 ‘슈퍼 예산’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도 예산은 257조 2천억 원이었다. 2011년에는 300조 원을, 2017년에는 또다시 400조 원을 넘어섰다.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한 터라 슈퍼 예산이 틀린 말은 아닌 듯도 하다. 과연 그러할까?


  우선,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예산은 어느 수준일지 생각해보자. 비교 가능한 잣대는 국내총생산(이하 GDP)에 견준 예산 규모 비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가 관련 통계를 매년 낸다. 2015년 현재 OECD 회원국의 GDP 대비 예산 비율 평균값은 43.8%이다. 일본은 39.3%, 미국은 37.3%로 평균 수준이며 프랑스, 덴마크, 핀란드 등은 모두 이 비율이 50%가 넘는다. 반면, 한국은 평균보다 10% 이상 낮은 32.3%의 비율로, OECD 회원국 중 아일랜드와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낮다. 이처럼 한국은 예산 규모가 다른 나라에 견줘 매우 작은 나라다. 슈퍼 예산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예산이 적으면 정부는 제구실을 못한다. 정부는 국방, 치안 등 공공성을 띠는 업무를 하는 동시에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시장에서 낙오한 사람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재기를 돕는 일이다. 정부가 이런 역할을 못하면 국민은 불평등을 느끼며, 불만이 커진다.


  한국은 비교적 평등한 나라다. 의아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건 정부의 예산 규모가 너무 작은 탓에 결과적으로는 매우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기 전 가구 소득 기준으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비교적 평등한 나라’에 속한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을 떼고 복지를 제공한 뒤 남은 가구 소득인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불평등한 나라’로 분류된다. 이런 변화는 비교 대상인 다른 나라들이 부자한테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불평등 수준을 크게 낮춰서다. 한국은 정부가 일을 덜 해서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예산 규모가 커지는 것은 외려 뒤늦은 감이 있다. 상당수 나라가 저 앞을 달리는데 이제야 한국은 속도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예산은 무조건 커지는 게 좋을까? 그렇지는 않다. 세금을 잘 걷지 않으면서 예산만 늘리면 나랏빚이 크게 불어나 나라 곳간이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아직은 그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한국은 나랏빚 규모도 OECD 회원국 중에 적은 나라에 속한다. 불평등이 문제라 생각한다면 더 많은 예산을 요구해야 한다.


김경락 한겨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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