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총파업 르포 上


  “김장겸은 물러나라!” 까무잡잡한 피부에 짧은 앞머리, 그리고 큰 눈을 가진 한 사내의 우렁찬 목소리에 고요했던 MBC가 깨어났다. 지난여름, MBC 드라마 PD인 김민식 씨는 한 손에 스마트폰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주먹을 꽉 쥔 채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했다. 사옥이 떠나가라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그의 외침은 MBC 직원은 물론, 시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신호탄이 됐으며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한 행동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지난 4일, MBC와 KBS의 총파업이 시작됐다.


  아나운서와 기자는 마이크를 내려놓았고 <무한도전>을 포함한 각종 TV 프로그램은 제작, 송출이 중단됐다. 어쩌다 이러한 상황까지 오게 된 걸까. 지난 9년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공영방송에 낙하산 사장을 꽂으며 언론이 정부의 ‘애완견’ 노릇을 하도록 만들었다. 정권의 행보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한 사람이라면 부당하게 해고·감봉됐고 비제작 부서로 옮겨졌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면서 언론은 ‘땡이뉴스’, ‘땡박뉴스’를 자처하게 됐고 국민의 방송은 사라졌다.


  공영방송이 제멋대로 굴러가는 기형적인 구조가 되자, KBS는 ‘세월호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내 유가족의 가슴을 찢어 놨다.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목포 KBS 한 기자의 목소리는 파묻혀버린 지 오래였다. MBC에서는 국정 농단에 대한 뉴스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멧돼지 출몰, 여름 이상 기온 등의 보도만 그 공백을 메꿀 뿐이었다. MBC와 KBS의 언론인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KBS와 MBC의 파업이 시작된 지 5일째 되는 금요일, 김장겸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외침이 울렸던 바로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마포 18번 버스를 타고 상암동 MBC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통유리로 돼 있는 MBC 건물과 큰 광장이었다. 오후 2시에 본 그곳의 모습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이나 현수막 등은 보이지 않았고 나른한 햇살과 뛰어다니는 아이들만이 건물 앞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회전문을 통과해 들어간 MBC 경영센터의 분위기는 마냥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이하 MBC 노조)가 아침마다 집회를 여는 장소가 한편에 마련돼 있어 긴장감을 연출하고 있었다. 노란 바탕으로 제작된 플랜카드에는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항상 국민의 편에서 서서 보도하려 했지만, 그러질 못했던 언론인의 애환이 투영돼 보였다.


  다른 편에 위치한 네온사인 문구도 눈에 띄었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사회, MBC가 함께합니다”라는 흰 글씨가 검은 네온사인에 계속해서 등장했다.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아 MBC가 벼랑 끝으로 몰렸는데도 저러한 문장을 내세우는 MBC 경영진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한편, 매번 오전에 1층 로비에서 집회가 이뤄졌는데 혹시나 또 다른 집회가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안내데스크에 가 관련 정보를 문의했다. 그러자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항상 집회가 우발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알 수 없다”라고 답했다. 매번 아침마다 집회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이를 언급해주지 않은 채 시위가 언제나 우발적으로 열린다는 답변을 듣자 조금은 의아했다. 문득 경영진의 압력이 여기까지도 뻗어 있지는 않을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MBC 탐방을 마칠 무렵, 건물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모든 문에 경비가 강화됐다. 문을 나서 보니, 30명 정도의 인파가 있었고 그들 사이로 언뜻 휘날리는 태극기가 보였다. 태극기 부대였다. 그들은 “MBC 노조가 공영방송을 장악하려고 파업을 진행한다”, “조합원이 종북 세력이기에 북한으로 쫓아야 한다”라며 방송국을 향해 윽박질렀다. 게다가, 주변의 기자들을 한 명씩 짚어가면서 소속 방송사를 파악하며 외모를 논하기도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을 살폈다.


  인파 중에서도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었다. 그녀는 김장겸 사장이 부당 노동행위 혐의로 서울서부고용지청에 자진 출두할 때도 “김장겸 힘내라”를 외쳤다. 너무 목소리가 커 김장겸과 기자가 주고받는 말조차 들리지 않게 방해해, 인상 깊게 남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김장겸을 옹호하는 시위에 참가해 소리를 질렀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무장한 채였다.


  한 기자가 그녀를 찍으려고 하자 그렇게 소리 지르던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기지 않게 하려고 민망하게 웃으며 피켓으로 얼굴을 가렸다. 왜 그랬을까. 떳떳하지 못해서 복장과 피켓으로 자신의 존재를 가리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정당하지 않은 주장을 하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태극기 부대 취재를 마치고, 기자는 언론 노조의 집회가 진행되고 있는 다음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MBC의 파업을 지지하는 철도 노동자의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돌아와요 MBC! 철도 노동자들이 함께하겠습니다” 기자의 생각도 같았다. 걸음을 재촉하는 기자의 등 뒤로 해가 마지막 붉은 열을 뻗어내며 지고 있었다. 지금의 MBC가 저물어가는 듯 말이다.

글·사진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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