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가수 조영남은 8년간 300여 점을 그려줬다는 무명화가 A 씨의 폭로 이후 예술계에서 대작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조영남 본인을 비롯해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개념미술’이라는 장르에서 화가가 조수를 두는 일은 현대 미술에서 허용되는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판에 증인으로 섰던 한 평론가는 개념미술과 팝아트 이후 작가는 콘셉트만 제공하고, 실제적인 작업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일반화된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개념미술은 기존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외면하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태도를 뜻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이와 같은 현상은 전 세계로 퍼졌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개념미술 장르에서 작가가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일은 현대에 와서 흔한 작업 방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조 씨의 작품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개념미술이 아닌 물체의 형태를 재현하는 ‘구상 회화’에 속하며, 이는 일반적으로 조수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게다가, 정식으로 A 씨를 고용한 것이 아니며, 실제로 앞선 공판에서 A 씨는 “조영남의 조수라는 생각은 안 해봤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그가 공개적으로 대작한 작가와 협업을 밝혔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조수의 도움은 받은 것이라면 협업이라 할 수 있지만, 이를 밝히지 않은 것은 작가가 가져야 할 윤리를 상실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열린 6차 공판에서 조영남에게 실형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 씨의 대작은 미술계에서 흔히 말하는 조수의 일반적인 개념을 넘어선 것이며, 조교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함께 집필한 논문에서 공동저자를 밝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전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어긋남’과 ‘일치’의 반복을 통해 회화는 작가를 닮아간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내고 반응을 표출시키는 그림은 대체로 그렇게 만들어진다. 조영남의 회화도 그렇게 탄생했어야 했다. 진정한 예술 철학이 있는 작가라면 서명으로 작품을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이 아닌 섬세한 선의 표현이나 붓 터치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옳다. 헤겔은 “걸작의 기준은 외부의 단순한 반영이나 유희가 아니라 심오한 감정의 표현이며 작가만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헤겔의 말에 비춰볼 때 예술 작품은 작가의 사상과 철학이 담겨야 하며, 자신의 힘으로 표현해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외국의 사례를 통해 조수를 고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따르고 관행으로 자리 잡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최예리(독일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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