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한국의 선박이 피랍되었다. 영화 속에서만 나올 것 같은 해적이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해적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해적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이다. 기원전 이집트 및 페니키아의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에게해(海) 부근에서는 해적이 상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그리스는 해적의 거점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공적으로 해적을 고귀하게 여겼다. 공식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약탈을 하는 해적이 영웅 대접을 받다니 좀 이상하다. 그리스에서는 전쟁이 났을 때 해적이 적군을 유리하게 공격할 수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해적은 아테네가 해상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다가 로마의 지중해 지배권이 확립될 무렵부터 로마와 속주(屬州)간의 해상무역을 노리고 이탈리아반도 주변에서 출몰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78년 젊은 시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는 공부하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가 해적에게 생포되었다. 6주 동안 포로로 잡혀 있다가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그의 이야기는 해적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후 대규모로 해적이 된 민족이 있다. 바로 북(北)게르만 민족이다. ‘바이킹’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8세기부터 10세기까지 유럽의 여러 곳에서 해적 행위를 일삼았다. 바이킹은 바다를 통해 민족 이동을 하였으며 그들이 바다에서 한 약탈 행위들은 오늘날 민족 행위의 일환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중해 지역은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동방무역의 독점을 위한 도시와 도시, 이슬람 상인과의 사이에 약탈 및 해적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때 특히 그리스도교는 이슬람에 대한 배척으로 약탈을 정당화했다고 한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로 이에 대항하면서 지중해는 전쟁과 해적으로 가득 찼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에 사략선이라는 해적이 등장한다. 사략선은 정부에서 합법적으로 허가를 부여받아 적국의 배를 약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선박을 말한다. 사략선에서 적국의 배를 나포한 후 일정량의 보물을 국가에 상납하면 국가에서는 그에 대한 면책을 주었다.
   사략선은 15세기 이후 더욱 활기를 띄었다. 사략선을 통해 해적에서 귀족으로 신분 상승까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영국의 ‘프란시스 드레이크’경이다. 지구를 일주한 최초의 영국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그는 자신이 몰던 선박이 해적에게 약탈당한 후, 보상받을 심리로 사략선 허가증을 받고 해적이 되었다. 해적 활동을 하면서 이름을 떨친 그는 약탈한 보물을 영국 정부에 헌납하는 동시에,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바다의 영역을 누빌 수 있다는 이유로 영국 국민들의 여망을 받았으며 후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다.
  이쯤에서 또 궁금한 게 생긴다. 고대 호메로스의 기록에서부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나 『보물섬』같은 문학작품, 소말리아 해적 사건 전부 서구의 해적 이야기이다. 과연 동양에도 해적이 있었을까? 19세기 중국의 정을이라는 해적은 해적연합을 만들고 600척의 선박을 몰고, 3만 여명의 선원들을 지휘했을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고 전해진다.
  바다와 늘 함께 있기 때문에 해적은 ‘바다의 형제’라고 불린다. 바다가 없다면 존재하지 못하는 그들은 땅을 밟는 순간 모두의 적이 된다. 넓디넓은 바다가 형제인 그들. 그렇지만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바다밖에 없다는 점에서 해적은 외로운 존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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