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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성’스러운 여성이 되지 않겠다
『‘성’스러운 국민(2017)』 -홍양희 외 7명 저/서해문집-
2017년 09월 19일 (화) 19:03:39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오늘날 대한민국에 발을 딛고 있는 이들 중 ‘여성 혐오’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국정 과제로도 떠오른 본 사안은 나이, 지역, 학력 등을 불문하고 외적 모습이 여성이라는 성별로 규정되는 모든 이가 처한 위험 그 자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여성 혐오는 어떤 경로를 통해 이뤄졌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지금껏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규정했는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근대 국가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근대에는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이 다양하게 작동해 젠더 관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자행됐다. 이러한 근대 국가의 제도적 장치에 주목한『‘성’스러운 국민』의 저자들은 근대의 법과 과학 속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가 어떻게 다뤄졌는지 탐구함으로써, 젠더 관계가 구축되는 사회·정치적 맥락에 대한 성찰적 시각을 제시한다. 
 
식민지시기를 벗어난 지 몇 해 지나지 않은 1948년, 비로써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선언하게 된다. 이에 모든 법이 민주주의 이념에 맞춰 개정되기 시작했고 그 중 가족법에 명시된 여성의 위치는 가장 문제적 사안이었다. 여성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걸 가장 크게 저해했던 ‘처의 행위능력’ 조항은 1921년 일본이 조선민사령 제11조를 개정하며 효력을 발휘했다. 본래 조선에서 처의 행위능력은 사건마다 다르게 적용됐지만, 이를 간과한 일본 정부는 조선의 관습을 근거로 결혼한 여성을 법적 무능력자로 만들었다.
 
현대의 관점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소유한 정치 주체에게 성별을 이유로 법률행위 권한을 박탈시킨 행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하지만 당시 사회는 광복 후에도 처의 행위능력을 인정한다는 1947년 대법원 판례가 도마 위에 오를 정도로 가부장 사고가 점철된 상태였다. 실제로 “부부 생활의 화합을 위해 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큰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김증한 교수와 같은 반대 진영의 반발이 거셌다. 이는 1958년에 공포된 민법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될 때까지 지속됐다. 
 
이후에도 여성은 호주제를 비롯한 가부장적 조항이 가족법에 남아있는 탓에 자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법적 근거가 없는 등 평등한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 입법 주체의 대다수가 여전히 여성을 전통과 관습이 계승돼야 하는 공간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시 사회는 처의 행위능력을 인정한 일련의 조치를 민주주의의 지표로 상징화함으로써 이 같은 젠더 차별을 은폐시켰다. 
 
그렇다면 비교적 시대가 변화됐다고 일컬어지는 시기에 국가는 여성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우리는 2005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황우석 사건의 이면 아래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본 사건은 불명예스러운 논문 조작으로 갖은 질타를 받았지만, 그전에 연구팀의 비윤리적인 난자 수집이 문제가 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실제로 MBC <PD수첩>은 황우석 연구팀이 자발적으로 난자 기증을 받았다는 본래 입장과 달리, 많은 수의 난자를 매매했을 뿐만 아니라 강압적인 방식으로 여성 연구원에게 난자를 받아냈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만약 줄기세포 연구만 성공했다면 문젯거리가 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해당 문제는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여성에게 짊어졌던 이타주의라는 이름의 시민적 의무는 난자 채취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가볍게 만들었다. “줄기세포에 메이드 인 코리아를 새기고 싶다”라는 황우석 박사의 일념 아래 우리 사회는 연구의 성패가 질병 치료 외에도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한 최대 과제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 심리는 난자가 획득된 경로를 문제 삼을 시 “국익을 훼손하는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라는 이유로 논란이 묻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난자를 채취하는 건 배란촉진 호르몬을 투여한 후 초음파 검사와 전신마취, 외과적 수술 등의 과정이 동반돼 당사자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 실험에 난자를 제공한 대다수의 여성은 호르몬과 수술이 어떤 후유증을 야기할 수 있는지 제대로 된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개중에는 적극적으로 연구에 관심을 두고 난자를 기증한 여성도 있었지만, 사회는 개인의 몸을 제공하는 일이 마치 전체의 복지를 위한 의무인양 둔갑시켰다. 결국, 이로 인해 여성의 몸은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국가 자원으로만 뭉뚱그려져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위협받아야 했다. 
 
사실상 가족법과 난자 채취라는 예시 외에도 여성이 객체화됐던 사례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이처럼 비가시화 됐던 여성의 삶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있기에 더는 여성이 국가의 이미지에 속박되는 행태가 반복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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